4년마다 한 번씩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한데볼' 핸드볼 경기. 4강에 오르지 못했다고 벌써 TV 생중계 편성이 한 방송사만으로 줄어들었다.

똑같은 경기를 세 방송사 모두가 생중계하는 것보다는 전파 낭비를 막고 다양한 종목을 내보낸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지만, 만 하루도 안 되어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경기가 열리는 국가체육관의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도 장내 아나운서가 유도해야 간혹 터져나올 정도였다.

이 경기를 국내에 생중계하던 KBS 최승돈 아나운서는 "비교적 조용한 이 경기 분위기가 우리 선수들에게 더 익숙한 국내 핸드볼 경기장의 분위기가 아닐까"라는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기도 했다.

김태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우리 남자핸드볼대표팀은 22일 낮 베이징에 있는 국가체육관에서 벌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5~8위 순위결정전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맞아 분전했지만 힘과 높이에서 한계를 느끼며 26-29(전반 14-15)로 밀리며 7·8위 결정전으로 내려갔다.

핸드볼 코트의 궂은 일꾼 '피벗'

양팀 선수들은 지난 7월29일 인천 도원실내체육관에서 올림픽 본선을 대비한 공개 평가전을 한 차례 치렀다. 그 때 우리 선수들은 상대 폴란드가 2007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팀이었지만 주눅들지 않고 뛰어 33-27로 이기면서 유럽 팀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베이징에 입성한 바 있다.

8강 토너먼트에서 나란히 스페인과 아이슬란드에 밀려나 5~8위 순위 결정전으로 내려온 두 팀은 모두 예상했던 대로 맥이 조금 풀린 경기를 펼쳤지만 집중력 면에서 앞선 폴란드가 전반전 중반 이후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 차이는 핸드볼 경기에서 가장 힘든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 '피벗' 자리에서 갈렸다. 여자 경기에 비해 남자 경기에서는 체격 조건이 좋은 피벗 플레이어를 절대적으로 필요로하기 때문에 우리 대표팀의 박중규 혼자서는 역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190㎝의 키에 100㎏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듬직한 박중규가 있지만 유럽 선수들 속에 세워두면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경기에서 한 골을 보태 이번 대회에서 모두 열 골을 터뜨린 박중규에 비해 폴란드의 피벗 플레이어들은 성공률 100%의 순도 높은 득점력을 자랑했다.

이들 피벗 플레이어들(바르토츠 유레츠키 6득점, 시오드미아크 2득점)의 득점 기록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이 6m 라인 바로 앞에서 성공시킨 것 말고도 각각 1득점씩 속공에 의한 득점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역습 순간의 선수 위치에 따라 누구나가 다 속공이 가능해야 하겠지만 이들 육중한 체구의 피벗 플레이어들이 이처럼 높은 득점 성공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든든한 피벗 재목감 키워내는 것이 남자 핸드볼 숙제

이들과 외롭게 몸싸움을 벌인 우리팀의 박중규도 피벗 위치에서 1개의 슛을 시도하여 1골을 넣었으니 성공률은 똑같이 100%에 이르지만 팀 득점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져봐도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단순히 피벗 플레이어 한 선수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부동의 라이트백 윤경신처럼 2m가 넘을 정도로 좋은 체격 조건을 갖춘 대형 피벗 플레이어를 길러내야 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스물 셋 동갑내기 세 선수(정수영·정의경·고경수)가 형들을 제치고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유럽의 두 강호(아이슬란드·덴마크)를 이길 수 있었지만 피벗 플레이어의 맞대결 기록은 그야말로 초라할 뿐이었다.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잡히거나 밀려 넘어져 온몸에 멍이 들 수밖에 없는 자리, 권투 선수도 아닌데 마우스피스까지 끼워야 할 정도로 위험한 자리이기 때문에 핸드볼을 배우는 어린 선수들이 가장 꺼리는 포지션이지만 보다 멀리 내다보고 핸드볼의 참맛을 널리 알리면서 든든한 재목감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 우리 남자핸드볼계의 숙제 중 하나다.

이번 대회에 우리 선수단은 박중규 말고 그 대역을 맡을 박찬용도 데리고 왔지만 얼굴이 수척해질 정도로 나쁜 컨디션 때문에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대회 마지막 날 아침에 덴마크와 7~8위 결정전을 치르게 되었다. 지난 12일 B그룹 조별리그에서 이룬 한 골 차의 짜릿한 승리를 다시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덴마크의 피벗 뇌데스보와 박중규가 펼치는 멋진 맞대결을 상상해본다.

덧붙이는 글 ※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5~8위 순위결정전 경기 결과, 22일 국립 실내 경기장

★ 한국 26-29(전반 14-15) 폴란드

◎ 한국 선수들의 득점 / 선방 기록
정의경 4득점, 정수영 4득점, 박중규 1득점, 윤경신 6득점, 조치효 2득점, 이태영 3득점, 이재우 3득점, 윤경민 3득점
문지기 한경태 슛 39개 중 선방 13개(방어율 33%)
박중규 윤경신 남자핸드볼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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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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