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감독은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놓고 작전 시간을 요청했다. T자가 그려져 있는 표지를 조금 늦게 집어든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더 늦으면 그야말로 손도 못 써보고 물러날 판이었다.

 

그리고 선수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지금부터 맨투맨이야, 끝까지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체격 조건에서 거의 머리 하나의 크기 이상 차이가 나는 스페인의 거구들을 상대로 실제로 경기에 뛴 시간만 50분이었다. 우리 선수들이 지칠대로 지친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일곱 골(17-24)의 격차는 마음 먹은 만큼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김태훈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우리 남자핸드볼 대표팀은 20일 밤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벌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8강 토너먼트에서 A그룹 4위로 올라온 유럽의 강호 스페인에게 24-29(전반 13-14)로 아쉽게 패하며 5~8위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후반전 초반, 승부의 고비를 못 넘고...

 

'13-14' 전반전 결과만 놓고 보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상대로 보였다. 하지만 10전 10패라는 상대 전적이 말해 주듯 2미터가 넘는 피벗 플레이어들(가라바야, 프리에토)이 버틴 스페인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37분, 우리의 레프트백 백원철이 여섯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점수판을 17-17까지 만들어놓았다. 선수의 개인 득점 기록(전반 3골, 후반 3골)과 그 당시까지의 점수만 놓고 보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성립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 선수들의 공격 양상은 가운데 쪽에서 던지는 롱슛(9미터) 말고는 특별히 잘 먹혀든 것이 없었다. 그나마 순간 동작이 빼어난 백원철이 상대 수비수들의 겨드랑이 사이를 노려 득점한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후반전 중반부터 간판 윤경신이 공격에 본격적으로 가담했지만 성공률은 0%(슛 3개 시도, 득점 없음)였다. 축구판에서나 통용되는 골대 불운이 우리 선수들의 앞을 가리기도 했다.

 

우리 선수들은 38분 이후 스페인의 오른쪽 날개 로카스에게 연거푸 세 골을 내주는 등 12분 동안 무득점으로 끌려다니면서 그 갈림길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 팀의 자랑 중 하나인 빠른 역습이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이 공격의 단조로움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속공으로 득점한 것이 겨우 두 개(전반전 김태완, 후반전 정의경)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치효, 윤경신, 백원철, 이태영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스물 셋 동갑내기 세 선수(정의경, 고경수, 정수영)가 알토란처럼 활약해 주었다는 점이다. 체격 조건이 조치효나 윤경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센터백, 날개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재목이라는 점이 우리 남자핸드볼의 미래에 또 하나의 희망을 걸게 하고 있다.

 

올림픽 4강이라는 높은 벽을 실감한 우리 선수들은 이제 22일(금) 낮 3시 15분부터 장소를 국립 실내 체육관으로 옮겨 아이슬란드에 진 폴란드와 5-6위전 진출권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다.

덧붙이는 글 | ※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8강 토너먼트 결과, 20일 올림픽스포츠센터

★ 한국 24-29(전반 13-14) 스페인

◎ 한국 선수들의 득점 / 선방 기록
정의경 7득점, 김태완 3득점, 정수영 5득점, 이태영 1득점, 이재우 2득점, 백원철 6득점
문지기 한경태 슛 30개 중 선방 9개(방어율 30%), 강일구 슛 9개 중 선방 1개(방어율 11%)

★ 프랑스 27-24 러시아
★ 아이슬란드 32-30 폴란드
★ 크로아티아 26-24 덴마크

◇ 5~8위 결정전(22일)
☆ 한국 - 폴란드
☆ 러시아 - 덴마크

2008.08.21 00:3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8강 토너먼트 결과, 20일 올림픽스포츠센터

★ 한국 24-29(전반 13-14) 스페인

◎ 한국 선수들의 득점 / 선방 기록
정의경 7득점, 김태완 3득점, 정수영 5득점, 이태영 1득점, 이재우 2득점, 백원철 6득점
문지기 한경태 슛 30개 중 선방 9개(방어율 30%), 강일구 슛 9개 중 선방 1개(방어율 11%)

★ 프랑스 27-24 러시아
★ 아이슬란드 32-30 폴란드
★ 크로아티아 26-24 덴마크

◇ 5~8위 결정전(22일)
☆ 한국 - 폴란드
☆ 러시아 - 덴마크
윤경신 강일구 남자핸드볼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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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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