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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객관적인 정보

.. 대중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할 매체를 그렇게 아무런 소신도 없이 장악한다는 사실이 ..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오봉옥, 두리,1992) 121쪽

‘제공(提供)해 주어야’는 ‘주어야’로 다듬어 줍니다. ‘소신(所信)’은 ‘믿음’이나 ‘생각’으로 손보고, ‘장악(掌握)한다’는 ‘거머쥐다’나 ‘차지하다’나 ‘붙잡다’나 ‘움켜쥐다’나 ‘사로잡다’로 손봅니다.

 ┌ 객관적(客觀的)
 │  (1)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   - 객관적 시각 / 객관적인 사고 /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다
 │  (2) 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   - 객관적 대상 / 객관적인 사실
 ├ 객관(客觀)
 │  (1)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함
 │
 ├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1)→ 객관성 있는 정보를 주어야
 │(2)→ 치우치지 않은 정보를 주어야
 │(2)→ 여러 눈길로 보는 정보를 주어야
 │(3)→ 고른(골고루) 정보를 주어야
 │(3)→ 알뜰한(알뜰히) 정보를 주어야
 └ …

‘객관적-주관적’은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자 ‘객관’이나 ‘주관’만 살리고 ‘-적’을 덜어서 (1)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또한 (2)처럼 ‘객관’을 ‘치우치지 않음’이나 ‘여러 눈길로 봄’으로 풀어내면서 뜻과 느낌을 또렷하게 살릴 수 있어요. (3)처럼 ‘고르다’나 ‘알뜰하다’를 넣으면서 새롭게 써 보아도 됩니다.

 ┌ 객관적 시각 → 고른 눈
 ├ 객관적인 사고 → 치우치지 않은 생각
 └ 객관적으로 판단하다 → (이리 기울거나 저리 휩쓸리지 않고) 올바르게 생각하다

‘주관’이란 “내 눈”입니다. ‘객관’이란 “남 눈”입니다. “내 눈으로만 보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남 눈으로도 보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언제나 ‘한 사람 눈은 치우치게 된다’고 할 수 없고 ‘여러 사람 눈이라고 고르게 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말뜻으로 살필 때, ‘주관 → 한 사람 눈’으로 담아내고, ‘객관 → 여러 사람 눈’으로 담아낼 뿐입니다.

 ┌ 여럿이 보는 눈 / 여러 눈길
 └ 혼자서 보는 눈 / 외 눈길

생각해 보면, ‘주관-객관’이라고 적는 우리들은 이 낱말이 무엇을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가를 또렷이 알고 있지는 못하면서 어렴풋이 헤아리는지 모릅니다. ‘주관적-객관적’이라는 말투를 쓰는 우리들은 이 말투로 어떤 모습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를 똑똑히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어영부영 지나치는지 모릅니다.

뜻을 한 번 풀어내고 쓰임새를 한 번 걸러내면서, 올바르면서 알맞게 쓸 말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맑으면서 환하게 느낄 말을 생각하면서 써야지 싶습니다.

ㄴ. 객관적으로 옳아야 한다

.. 우리 노동자의 입장에서 옳다고 하여 반드시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려면 객관적으로 옳아야 한다 ..  <참된 삶을 위하여>(채희석, 현장문학사,1989) 17쪽

“우리 노동자의 입장(立場)”은 “우리 노동자 생각”이나 “우리 노동자 형편”으로 다듬어 줍니다. ‘인정(認定)하는’은 ‘받아들이는’으로 고쳐씁니다.

 ┌ 객관적으로 옳아야 한다
 │
 │→ 누가 보아도 옳아야 한다
 │→ 누가 보더라도 옳아야 한다
 │→ 누가 생각해도 옳아야 한다
 └ …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생각이라면 ‘모두가 보기에’ 옳아야겠지요. ‘어느 누가 보아도’ 옳으며 ‘여러 사람한테 골고루’ 옳아야 할 테고요. 몇몇이 아닌 ‘많은 사람들한테’ 옳을 수 있어야 할 테며, ‘어떤 자리에서 살펴도’ 옳아야지 싶습니다.

 ┌ 내가 생각하기에는
 ├ 내 상각으로는
 │
 └ 주관적으로 (x)

내 생각을 말할 때, 또는 몇몇 사람들 생각을 말할 때, 또는 어떤 사람 눈길에서 말할 때 ‘주관적’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냥 ‘내 생각’이라고, ‘한두 사람 생각’이라고, ‘몇몇 사람 생각’이라고 하면 어떨는지요.

 ┌ 여럿이 보기에
 └ 한둘이 보기에

보는 눈길이 ‘여럿’이냐 ‘한둘’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생각도 달라지고 일감도 달라지고 움직임도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우리 말을, 우리 삶을, 우리 이야기를,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할 일이 달라집니다. 우리 할 일은 한결 나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는 한편, 얄궂은 쪽으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객관적-주관적’을 쓴다고 해서 굳이 나쁠 일이 없다고, 많은 이들이 잘 알아듣지 않느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말로 많은 이들한테 익숙한 ‘객관적-주관적’일는지, 또 우리가 이런 말로 우리 생각과 눈길을 이야기하는 일이 좋은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모든 어린이한테, 젊은이한테 이런 말을 가르치고 들려주고 쓰도록 하는 일이 좋은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이 우리 삶이 아닌 것으로 자꾸 바뀌고 꺾이고 흔들린다고 해도, 서양 해바라기로 흐르면서 우리 줏대와 줄기와 뿌리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고이 지키면서 가꿀 우리 말이 있고 우리 삶이 있으며 우리 얼과 넋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적, #우리말, #우리 말, #적的, #객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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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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