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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노암갤러리 입구에 붙은 진성근전 포스터
 인사동 노암갤러리 입구에 붙은 진성근전 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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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근-칼로 그린 소나무전'이 오는 8월 15일까지 인사동 '노암갤러리'에서 열린다. 소나무 그림을 대하니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산바람이나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시원한 소나무 밭이 연상돼 더위에 지친 관객들 마음을 좀 식혀주는 것 같다.

캐나다인에게 단풍나무와 그 시럽은 삶과 떼놓을 수 없듯이, 십장생 중 하나인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이고 지조나 정절 등 한국인의 정서나 기질과 맞는다. 하지만 그만큼 이런 기풍을 그림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전에 선보이는 50여 점은 그냥 산수화가 아니고 목판에 칼로 새긴 채색화다. 나무에 새긴 그림이라 관객 입장에서는 좋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작가의 설명으로는 나무가 제대로 마르지 않으면 종종 벌어지고 깨지고 갈라져 주의를 요한단다. 

자라는 소나무처럼 그 움직임이 절절해

'경주-102' 나무를 파고 채색 101×210cm 2006
 '경주-102' 나무를 파고 채색 101×210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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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들쑥날쑥 키가 다른 목판에 경관 좋기로 소문이 난 경주의 소나무 밭을 병풍처럼 두르며 작업을 했다. 양식적 파격의 효과도 주며 목판 속에서 수려한 곡선의 소나무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나무의 물성도 더 실감나게 살아나고 그 운동감도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

작가는 원래 서양화 전공자라 유화나 아크릴 물감에 능숙하다. 그런 기법을 오히려 한국화에 맞게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서양화에서 보는 것 같은 색다른 원근효과를 주며 우리에게 친근한 소나무에 그만의 혼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청나라의 시인 이방응은 소나무의 껍질을 '범 발톱', '용 비늘'로 비유하기도 했는데 소나무껍질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질감이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그림 앞에 서면 소나무가 무슨 선생이나 된 듯 그 위력을 발휘하며 옷깃을 여미게도 한다. 

푸른빛 발하며 하늘로 치솟는 낙락장송

'남산-40' 나무를 파고 채색 60×101cm 2006
 '남산-40' 나무를 파고 채색 60×101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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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경주의 남산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남산의 삼릉 소나무 숲 근처쯤 되는가. 언젠가 밤 열차를 타고 동틀 무렵 경주에 내려, 석빙고를 지나 계림과 멀리 대릉과 첨성대를 보며 천년왕국의 꿈을 품은 것 같은 소나무 향이 코끝에 닿을 때 느껴지는 그 상쾌함이 기억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경주의 소나무가 역시 좋고 이에 못지않게 충남 태안군 안면도 소나무도 좋단다. 태양처럼 붉게 타는 황톳길에서 푸른빛을 발하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 같은 정읍의 소나무는 어떠냐고 물으니 그곳은 황토가 참 붉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처음엔 정통 채색으로 처리했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아크릴 물감으로 한 번 더 덧칠을 한 것이다. 색채의 퓨전이라 할 수 있는데 색다른 맛이 나고 정감이 흐른다.

소나무는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있으면 자라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단다. 그만큼 각별한 구석이 있어 다른 나무보다 손길과 양질의 양분이 더 필요한가 보다. 하긴 일부 보호수 소나무는 링거주사까지 맞지 않는가. 그만큼의 기품과 위엄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정의 메마름 속 소나무의 멋과 정겨움 되찾기

'가마-47' 나무를 파고 채색 63×135cm 2006
 '가마-47' 나무를 파고 채색 63×135cm 2006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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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47' 소나무 숲이 청정하게 보인다. 혼탁해진 한국인의 혼을 살려낼 생명나무 같다.

멀리 뒤로 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숲과 언덕과 논밭이 있고 그리고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소나무 숲은 그림 속에 우리네 이상향도 담겨 있는 것 같다. 하긴 우리 산수화는 현장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여기에 또한 꿈과 낙원을 담는 것이 그 특징이다.

소나무는 그 꾸불꾸불한 선으로 인해 미묘한 멋을 낸다. 우려곡절이 많은 우리네 삶과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를 닮아 더 사랑받는 것 같다. 그리고 소나무의 격과 인품은 우리네 정서나 문화코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요즘처럼 정보다는 돈이 앞서는 사회가 되다 보면 삶의 재미와 인간적 매력을 잃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소나무그림이 가지고 있는 기개와 정신을 살려내어 삶의 활력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고인격을 갖춘 성인(聖人) 같은 적송(赤松)

'춘양-51' 나무를 파고 채색 99×96cm 2005
 '춘양-51' 나무를 파고 채색 99×96cm 2005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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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소나무가 좋기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는 적송(赤松)의 나무껍질이 유난히 붉게 보인다. 하늘에서 훨훨 타는 듯한 태양이나 황톳빛 같은 소나무, 이런 소나무는 난세에도 그 시련과 고난을 너끈히 이겨내고 절개를 지켜온 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소나무는 장수나무로 세월이 갈수록 그 빛을 더하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소나무를 보면 왠지 마음이 정화가 되고 속에 쌓인 먼지도 말끔히 털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심신을 다스려주기에 최고의 인격을 갖춘 성인(聖人)으로 비유되지 않았던가.

하여간 미학자 박순영은 산수화란 원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나 감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경(實景)과 함께 이상경(理想景)도 담게 마련인데 이 작가는 그런 요소와 함께 '흥과 쾌 같은 서정성'을 가미하여 사실적 기풍으로 묘사한 점이 그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땀과 숨결을 목판 나무결에 새기다 

'금산-40' 나무를 파고 채색 60×90cm 2006
 '금산-40' 나무를 파고 채색 60×90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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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마치 경남 남해군 상주면 금산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목판 나뭇결에 작가의 숨결도 담긴 것 같다. 그리고 한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생생한 입체감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작품 하나 완성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린다는 작가의 말처럼 목판 하나하나에 작가의 땀과 정성이 서려 있다.

여기 다 소개 못한 많은 작품명을 보면, 그가 안거를 끝내고 만행(漫行)을 떠나는 선승처럼 전국을 누비며 안 다닌 곳이 없다. 강화, 문경, 원주, 횡성, 태백, 안동, 예천, 청평, 진도, 홍천, 함양, 해남 등 군과 시는 물론 태백산,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한계령, 대관령, 문수봉, 피아골 등 산과 고개도 포함된다. 그런데 맘에 썩 드는 송림(松林)은 적었나 보다.

작가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밑작업을 하기에 디테일하고 현장감이 높다. 이를 다시 그리고 칼질을 하면서 그 완성도를 높여가지만 뭔가 마음에 차지 않고 소나무의 강인한 기상이 뜻대로 잘 살아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앞으론 더 과감하게 배경을 생략하거나 여백을 주는 기법을 도입하고 싶다고 의지도 보인다.

이젠 지구촌사람과의 소통에도 관심 있는 듯

'담양-36' 나무를 파고 채색 60×90m 2008
 '담양-36' 나무를 파고 채색 60×90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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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시원한 대나무 밭이 눈에 선한 '담양-36'을 보자. 산천은 유유하고 나무들은 평화롭다. 이런 작품은 한국미의 근간이 되는 가공적인 것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멋을 내는 것과 함께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가닿은 실험과 모험도 요구되는 것 같다.

사진작가 배병우가 소나무 사진으로 겸재와 산수화 같은 장엄한 여백미를 낳아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적 서정으로 진한 감동을 주었듯이 그도 앞으로 지구촌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교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여간 작가는 40대 후반을 넘어 50대 완숙기를 맞고 있다. 동양적 덕(德)과 도(道)의 구현과 함께 서양적 미(美)의 성취도 포용되는 한국미술, 그래서 기존의 감각과 정신을 과감히 해체시킨 추상의 전환 등 차원 높은 단순화 작업이 실험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노암갤러리 종로구 인사동 133. www.noamgallery.com 02 2235-6
작가소개 | 1960년 서울 생. 경원대학교 서양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5회.
2004년에는 한전플라자갤러리에 전관초대를 받음



태그:#진성근, #소나무그림, #박순영, #산수화, #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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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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