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겉표지
▲ <창조주의 지도> 겉표지
ⓒ 북스토리

관련사진보기

그리스도교에서 성물(聖物)로 취급하는 물건들은 많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사용했다는 성배,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 예수가 썼던 가시관 등이 모두 성물로 분류된다.

범위를 단지 예수에게로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성물은 더욱 많아진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 가롯 유다가 예수를 넘기고 받은 은화 30냥 등도 모두 성물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물건들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창조주가 직접 인간과 접촉해서 내린 물건일 것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았다는 '언약의 궤'와 그 안에 들어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스페인 작가 에밀리오 칼데론의 2006년 작품 <창조주의 지도>는 제목처럼 창조주가 직접 만든 지도를 소재로 한다. 이런 지도가 실제로 발견되고 진품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아마 세상이 발칵 뒤집힐 대단한 사건이 될 것이다.

신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비밀의 지도

작품에서 묘사하는 이 지도는 이집트 파피루스에 그려진 것이다. 지도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렴풋이 짐작하기로는, 페르시아에서 이집트로 건너왔다가 그곳에서 한 로마 장군이 그것을 손에 넣는다. 그 이후로 지도는 로마의 어느 장소에 묻힌 채로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그 지도는 신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그 안에는 세상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기나긴 인류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특정한 산을 신성시해왔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포스 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시나이 산, 티베트 불교도들에게는 칸첸중가 산이 바로 그런 장소다.

이런 산들은 실제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성스러운 장소이며, 우주적인 힘을 유도하는 힘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창조주의 지도에는 이런 우주적인 에너지의 이동 경로가 담겨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 지도를 차지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창조주의 지도>의 배경도 1930년대의 후반이다. 스페인에서는 내전이 일어났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전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직전이다.

지도의 행방을 추적하는 사람들

작품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로마, 이곳에는 스페인 내전을 피해서 머물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로마에 있는 스페인 역사예술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스페인 내전 때문에 아카데미의 예산과 운영도 점점 어려워진다. 이 아카데미에서 근무하는 20대의 직원 '호세 마리아'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아카데미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적들 일부를 매각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호세 마리아는 몇 권의 책을 들고 서적상으로 향한다. 그 중에는 1556년에 출간된 <상형문자, 혹은 이집트와 다른 민족의 성스러운 문자에 관한 주석>이라는 책이 있다. 서적상은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고객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 그 고객은 엄청난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고, 이때부터 호세 마리아의 운명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그 책에 바로 창조주의 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도의 진품 여부와는 관계없이 많은 단체에서 이 지도에 관심을 갖는다. 독일 나치는 유럽을 집어삼킬 야망을 가지고 이 지도에 눈독을 들이고,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비밀결사는 이를 막기 위해서 지도를 추적한다. 로마 교황청은 또 나름대로의 이유로 지도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지도에 대해 알고있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목숨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간직하게 된 호세 마리아도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그런 음모와 혼란은 전쟁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가는데….

2차대전을 배경으로 성물을 다룬 작품

작품에 등장하는 한 성직자는 "그런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못박는다. 그 이유는 성서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가 없고, 창조주가 지도를 만들었다면 파피루스를 사용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파피루스는 상대적으로 파손되기 쉬운 물질이다. 십계명을 돌판에 새긴 것 처럼, 신이 지도를 만들었다면 파괴되지 않도록 단단한 재질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논란은 창조주의 지도뿐 아니라 모든 성물들에 따라다닌다. 성물들을 둘러싼 문제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은 이 물건들이 과연 진품인가 하는 것이다. 작품 속 성직자의 말에 의하면, 유럽에는 세례 요한의 손가락이라고 여겨지는 손가락이 60개가 넘게 보관되고 있다.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은 은화도 세계 곳곳에 200여 개가 존재한다.

지도의 행방을 찾는 나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진품이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지도를 손에 넣는 일이,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을 침략하기 위한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나치의 횡포도 점점 거세질 것이고, 어쩌면 그 명분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늘어날지 모른다. 다른 방향에서 지도를 쫓던 비밀결사도 바로 이런 점을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지도>는 요즘 유행하는 팩션(Fact+Fiction)답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었다. 작품의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시작이 1937년이고 끝은 1953년이다. 그 시간 동안 여러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스페인 내전의 진행상황,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탈리아와 독일의 동맹, 연합군의 이탈리아 진입작전 등.

색다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소설이면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볼 수 있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참혹한 전쟁에 휘말린 로마 시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도를 둘러싼 음모보다는 이 부분에 더 많은 눈길이 가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창조주의 지도> 에밀리오 칼데론 지음 / 김수진 옮김. 북스토리 펴냄.



창조주의 지도

에밀리오 칼데론 지음, 김수진 옮김, 북스토리(2008)


태그:#창조주의 지도, #성물, #스페인내전, #나치, #스릴러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