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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사람 사진을 찍을 때, 어른은 찍기 어려우나 어린이는 찍기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제법 가까이에서 찍어도, 또 ‘사진 한 장 찍어 줄까?’ 하고 물어도 선선히 그러마 하고 대꾸해 준다. 다만, 애써 잘 찍힌 아이들한테 사진을 찾아 주고 싶어도, 이 아이가 부모 따라서 다시 헌책방에 찾아와야 사진을 건네줄 수 있을 텐데.
▲ 책읽는 어린이 헌책방에서 사람 사진을 찍을 때, 어른은 찍기 어려우나 어린이는 찍기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제법 가까이에서 찍어도, 또 ‘사진 한 장 찍어 줄까?’ 하고 물어도 선선히 그러마 하고 대꾸해 준다. 다만, 애써 잘 찍힌 아이들한테 사진을 찾아 주고 싶어도, 이 아이가 부모 따라서 다시 헌책방에 찾아와야 사진을 건네줄 수 있을 텐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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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헌책방에서 사진 찍기

나는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헌책방 사진을 찍지 않는다. 더구나 헌책방 임자한테 줄 생각으로 찍지도 않는다. 헌책방 임자는 나보고 "아이고, 그렇게 어지러운 모습 좀 찍지 말아요"하면서 웃는다. 말로는 찍지 말라지만, 입으로는 웃는다. "아, 좀 정리가 된 다음에 찍어야 하는데"는 두 번째로 자주 듣는 말이다. "아유, 나는 찍지 말아요"는 세 번째로 흔히 듣는 말이다. "헌책방 찍어서 뭐해요? 필름만 아깝죠"는 네 번째로 듣는 말. "그렇게 찍고도 또 찍어요? 아직도 찍을 게 있어요?"는 다섯 번째로 듣는 말. 자, 그러면 나는 이 헌책방에서 그동안 무엇을 찍었는가.

글쎄, 나한테 무슨 사진을 왜 찍느냐고 하면 그냥 "헌책방을 기록으로 남기려고요"하고 말한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곳이 이런 모습으로 있었다고 뒷사람들한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하고도 말한다.

그래,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 찍었기에 그동안 그나마 그럭저럭 괜찮은 사진이었다고 하겠는데, 바로 다음 대목 '보여주고 싶어요'가 걸린다. 아무래도 이 대목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 사진감을 붙잡으며 애쓰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제멋, 제길, 제힘이 없다는 소리를 함께 듣는다. 나도 느낀다.

오늘 찾아간 헌책방에서는 필름 한 통 반쯤 찍는다. 오늘은 아주 흐뭇하게 찍는다. 그동안 헌책방 사진을 찍으며 오늘처럼 흐뭇한 적이 많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에 들어오는 헌책방 모습을 구석구석 책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찍어 보았을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닌 헌책방이 아니라, 책을 보러 찾아간 헌책방이었기에, 책을 보는 틈틈이 이 모습을 담고 저 모습을 담을 뿐이었다.

헌책방 임자이든 책손이든 따로 마음쓰지 않는다. 사진기를 숨기거나 가리지도 않으나 따로 내보이지도 않는다. 헌책방에서 헌책방 사진을 찍는 나는, 책손인 한편 헌책방 모습 가운데 하나다. 내가 손에 든 사진기는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과 마찬가지다. 헌책방 모습 가운데 하나로 스며들 뿐이다. 볼펜을 꺼내 책에 몇 마디 끄적이듯, 사진기를 들고 단추 몇 번 누르면서 몇 가지 모습을 필름에 새길 뿐이다.

오늘은 책방 안쪽에서 1/20초와 1/30초로 두 번씩 찍었고, 나머지는 1/15초, 1/10초로 찍었지 싶다. 1/8초로도 많이 찍었고 1/6초와 1/4초로도 제법 찍었다. 더구나 오늘은 1/2초와 1/1초마저도 찍었다. 여느 때에는 이런 사진 찍기 참 힘들다. 손이 조금만 떨리거나 살짝 삐끗해도 흔들려서 버리는 사진이 되고 만다. 나중에 필름을 찾고 스캐너로 긁어 보아야 알겠지만, 오늘 찍은 사진은 거의 흔들림 없이 잘 찍었다 싶다. 느낌이 좋았다. 아주 어려운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연스러웠고, 찍는 내 얼굴에서도 웃음이 묻어났다.

기자가 되어 낯선 사람 모습을 그럴싸하게 담아내는 일도 고달프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가운 사람이든 귀찮은 사람이든, 사진기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얼른 찍혀 주려고(그래야 저도 덜 고단하니까) 애쓰곤 한다. 저를 취재하는 분이 찍어 준 모습.
▲ 사진 찍히기 기자가 되어 낯선 사람 모습을 그럴싸하게 담아내는 일도 고달프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반가운 사람이든 귀찮은 사람이든, 사진기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얼른 찍혀 주려고(그래야 저도 덜 고단하니까) 애쓰곤 한다. 저를 취재하는 분이 찍어 준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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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진을 찍다가 사진에 찍히노라면

사진을 찍는 자리에만 있다가 사진기에 찍히면 멋쩍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능글맞아진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앞으로는 찍으면 찍고 안 찍으면 말고 할 테지. 가끔은 슬쩍 웃어 주기도 하는데, 어느 때는 '나를 찍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찍은 그 사진은 그 사람 마음에 얼마나 들고 좋아할 만할까, 저 사람이 찍는 사진에서 나는 배경이 될까 주인이 될까, 저 사람 사진에 꼭 내가 어느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까' 하는 여러 생각도 든다.

자전거모임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아무 거리낌이 없다. 다른 모임도 마찬가지가 될 텐데, 서로 좋아하거나 아끼는 사람들이라 한다면, 찬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식 웃으며 브이 자를 그릴 수 있고, 비에 젖어 후줄근해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도 멋진 훈장으로 여기지 않을까 싶다.
▲ 비오는 날 자전거 자전거모임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아무 거리낌이 없다. 다른 모임도 마찬가지가 될 텐데, 서로 좋아하거나 아끼는 사람들이라 한다면, 찬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식 웃으며 브이 자를 그릴 수 있고, 비에 젖어 후줄근해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도 멋진 훈장으로 여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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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내가 찍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 번 사진을 찍고 다시는 안 볼 사람을 찍는가? 언제나 한식구로 살아가는 사람을 찍는가? 어쩌다가 한 번 마주치는 옛동무를 찍는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짝꿍을 찍는가? 술자리에서 만나는 술벗을 찍는가? 딱딱한 선배를 찍는지, 따스한 선배를 찍는지, 보기 싫은 후배를 찍는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후배를 찍는지, 아니면 멋모르는 꼬마를 찍는지, 알 것 다 아는 애늙은이를 찍는지 생각할 일이다. 내가 찍는 사람은 누구인가, 참말로 누구인가?

서울 신촌 나들이를 할 때면 으레 찾아가는 단골술집 아저씨도 사진기를 좋아한다. 술에 취해서 길에서 쓰러져 자다가 사진기를 잃어버리기도 했다는 아저씨인데, 당신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사진으로 담아낸 다음, 나중에 또 오면 사진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단골술집 아저씨도 필름사진을 좋아한다.
▲ 사진 좋아하는 사람 서울 신촌 나들이를 할 때면 으레 찾아가는 단골술집 아저씨도 사진기를 좋아한다. 술에 취해서 길에서 쓰러져 자다가 사진기를 잃어버리기도 했다는 아저씨인데, 당신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사진으로 담아낸 다음, 나중에 또 오면 사진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단골술집 아저씨도 필름사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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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는 끊임없이 쏟아지는데

화소수가 높아지고 값도 얼추 낮아지면서 보기에도 깔끔하고 성능도 빼어난 디지털사진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아마 앞으로는 새로운 필름사진기는 거의 안 나오겠구나 싶다. 이에 따라 필름도 적게 만들 테고, 필름사진기는 어쩔 수 없이 쓰기도 힘들겠구나 싶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사진기가 쏟아지고 있어도 디지털사진기로는 옮겨가고픈 마음이 아직 없다.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를 보면 '성능은 참 훌륭하다'고 느끼지만, '사진을 왜 찍는가' 하는 물음을 채워 줄 만한 기계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장이야 다루는 사람이 하기 나름이고,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법이란 없다. 그렇지만 목수가 안 쓰는 연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장 좋은 연장은, 그 연장 하나가 한 가지 구실을 하도록 만든 연장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두어 가지 구실을 하거나 열 가지 구실을 하도록 만든 연장은 외려 그 열 몇 가지가 되는 구실 가운데 한 곳에도 제대로 못 쓰이기 마련이지 않던가. 사진기는 그 사진기를 들고 우리 눈에 들어오는 '자기 마음에 맞고 즐거운' 모습을 찍는 연장이다(2006년 가을에 디지털사진기를 처음으로 장만해서 꾸준히 쓰고 있지만, 지금도 중요한 사진은 꼭 필름으로만 찍고, 제 사진감인 헌책방도 필름으로만 찍는다).

신문사에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사진기자로 일한 전민조 님은, 은퇴한 뒤에도, 당신이 젊을 적부터 꿈꾸었던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사람 삶을 사진에 담기’를 이어가고 있다. 낫과 호미가 아닌 사진기를 들었기 때문에 두꺼웠던 손가락도 가늘어지셨다지만, 늘 무겁고 딱딱한 사진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다녀야 했을 사진쟁이였기에, 마디가 굵고 억세다.
▲ 사진쟁이 손 신문사에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사진기자로 일한 전민조 님은, 은퇴한 뒤에도, 당신이 젊을 적부터 꿈꾸었던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사람 삶을 사진에 담기’를 이어가고 있다. 낫과 호미가 아닌 사진기를 들었기 때문에 두꺼웠던 손가락도 가늘어지셨다지만, 늘 무겁고 딱딱한 사진장비를 잔뜩 짊어지고 다녀야 했을 사진쟁이였기에, 마디가 굵고 억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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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에 말을 걸다, #사진찍기, #사진, #사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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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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