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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단속인원은 수십명도 안되는데 다음달부터 적용되는 원산지 표시단속 지침은 '쇠고기를 쓰는 모든 식당, 급식소를 단속한다'는 것이어서 한숨만 나옵니다"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경남지원 부산출장소 관계자에게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단속에 대해 묻자 그가 내뱉은 첫 마디다.

 

개정된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사실상 쇠고기를 쓰는 모든 음식점과 급식소가 단속대상이 됐지만 농관원 경남지원 부산출장소에서 단속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직원은 10명(5개반) 뿐이다.

 

부산식품의약품안전청이나 부산시와 일선 구군, 명예감시원까지 모두 동원해도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수준의 단속은 꿈도 못꾸는 현실이다.

 

◇단속인원 없어 30분 짜리 육안검사로 끝 =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부산출장소 측이 파악한 부산지역의 원산지 표시제 단속대상은 대략 6만여 곳. 이마저 쇠고기를 쓰는 모든 식당과 급식소로 단속대상이 확대되면 훨씬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여러 기관에서 인원을 보충받는다 해도 실제 단속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은 수십명에 지나지 않는다.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원산지 표시제 단속은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제한된 인원으로 많은 곳을 단속하다 보니 보통 한 식당에서 30분이면 단속이 끝난다.

 

한 단속반원은 "대개 메뉴판에 표시돼 있는 육류의 원산지와 업소 냉장고에 있는 육류의 원산지를 비교하는 수준에서 단속을 끝낼 수 밖에 없다. 의심이 가면 정육거래명세서나 축산물등급판정서까지 살펴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30분 이상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우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단속반원의 '눈'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전자(DNA) 검사를 하려면 수십만원이 들고 검사결과가 나오는 데 최소 1주일 이상 걸려 짧은 시간 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업소를 돌아야 하는 현실에선 꿈도 못 꾼다.

 

원산지 표시제 단속에 참여했던 부산의 한 구청 직원은 "우리 구에만 단속 업소가 4천여 곳이 넘는데 언제 단속을 다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어떤 방법으로 단속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더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반업소 단속해도 처리는 '산 넘어 산' = 농관원과 부산식약청은 최근 부산 부산진구의 한 음식점을 원산지 표시제 위반으로 적발해 원산지 표시제 위반 확인서를 받았다.

 

이 음식점에서는 뉴질랜드산과 멕시코산 쇠고기를 호주산과 미국산으로 표시했으며 일부 쇠고기는 아예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았다 적발됐다.

 

단속반원은 메뉴판과 냉장고에 있는 고기의 원산지, 식당의 거래내역서까지 비교해 어렵게 단속했지만 업주의 반응은 황당했다.

 

이 업주는 '같은 외국산 쇠고기끼리 원산지를 바꿔 표시하는 것도 위반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단속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번만 봐 달라'고 애원하다 나중엔 '다른 식당도 다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 집에만 와서 난리를 치느냐'며 단속반원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어렵게 원산지 표시제 위반업소를 적발하면 업주를 불러 수사를 한 다음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위반사항이 경미하면 해당 지자체에 행정처벌을 통보하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위반정도가 크면 업주에 대한 면밀한 수사를 거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구속사건으로 분류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직원 한 사람이 꼬박 매달려도 최소 1달 정도가 걸린다. 현장 단속에 나설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는 형편이다.

 

한 지자체 소속 단속반원은 "단속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즉흥적인 조치로 원산지 표시제 단속은 흉내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단속 이전에 업소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업주 스스로 어느 정도 원산지 표시제를 지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태그:#원산지표시제,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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