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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가는 기차

여행의 가장 큰 동반자가 돼주었다. 같은 곳을 방문한 다른 여행자들이 내는 탄성조차도 추억으로 담고 싶었다.
▲ 캠코더 여행의 가장 큰 동반자가 돼주었다. 같은 곳을 방문한 다른 여행자들이 내는 탄성조차도 추억으로 담고 싶었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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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면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떤 사람을 만날까 은근히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피렌체-피사 구간은 한산해서 별 일이 없이 지나갈 것 같았다. 혼자 가다보니 지루했고, 이내 졸음이 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가격이 저렴해서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싼 기차표를 사서 느리게 달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중간 쯤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탔다. 한 무리 학생들이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객차에는 앉을 자리가 남지 않았다. 학생들 무리 중에서 몇 명은 서 있어야 했다. 머리 위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신나게 떠드는 10대 아이들의 수다에 머리가 아파왔다.

설사 언어가 통해서 그들의 대화에 끼고자 시도한다 해도 타인이 낄 자리가 없는 사이로 보였다. 다시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들의 대화를 끊고 싶은 마음 조금, 차라리 대화에 끼고 싶은 마음 조금, 어서 내리고 싶은 마음 조금, 해서 말을 걸었다. '피사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냐'고.

그들은 다급한 표정으로 "이번 역이니 빨리 내리라"고 했다. 어? 역의 이름이 '피사'가 아닌데? 어서 내리라며 마치 기차가 금세 떠날 것이라도 되는 듯 다급한 표정을 짓는다. 급하게 짐을 챙겨 내렸는데,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역이 너무 한산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피사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한다. 다시 기차를 타라고 한다. 객차에서는 그 학생들이 웃고 있다. 당했다. 이걸 다시 타야하나? 챙피하니까 다음 차 탈까? 순간 고민이 됐다. 꿀밤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으로 열차에 다시 올랐지만, 그냥 이런일도 있구나. 재미있네하며 좋게 넘어가기로 했다. 어린 사람들 장난을 센스있고 유머있게 넘기지는 못할 망정, 화를 내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마냥 당하고만 사는 성격이 아니라 나름의 압박을 했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섰다. 학생들 머리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 봤다. 아까의 수다와 웃음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덕분에 피사까지 조용하게 갈 수 있었다.

피사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풀렸지만 바닥은 젖어있었다. 피사의 사탑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야 했다. 노선표를 보다 한눈을 파는 바람에 물웅덩이에 발을 빠뜨렸다. 축축해진 신발을 끌고 버스를 찾아탔다. 기차역에서 코인 락카를 찾지 못해 짐을 전부 지고 다니려니 좁은 버스에 젖은 신발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낯설었던 것은 성곽으로 둘러싸여있다는 점이었다. 도시가 성곽 안에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성당이 그렇다는 것은 영 어색했다. 좋게 말하자면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이탈리아는 어쩜 도시마다 이리도 개성이 있는지.

다른 성당들이 광장에 있어서 성곽의 존재가 애매하거나, 혹은 있더라도 테가 잘 나지 않게 존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성곽 안에는 본당, 세례당, 종탑 등 성당이 갖추어야 할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피사의 사탑 떠받치는 포즈로 사진찍는 사람들, 세계는 하나

성곽 안에는 온통 사진 찍는 사람들 뿐이었다. 모두 다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피사의 사탑'을 떠받치는 포즈다. 나는 그런 식상한 행위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웹사이트나 개인 페이지에서 봐오던 질린 구도의 사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그런 것 같다.

관광지에서 얼굴을 찍어 '증명사진'으로 남기자니 쑥쓰럽기도 하고, 그러기에는 캠코더의 배터리가 차라리 아까웠다. 또 낯선 사람에게 찍어달라기에는 내가 갖고 다니던 캠코더는 다루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물건이다.

그보다 젖은 신발을 말리는 것이 더 급했다. 성당 한 켠에 자리잡고 앉아 젖은 신발을 말리며 피사의 사탑을 감상했다. 신발이 신을 수 있을 정도로 마를 때까지 오래, 먼발치에서 감상하게 됐다. 한참을 바라보다 긴 여행을 함께 할 여행의 동반자인 '배낭'과 '캠코더'를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과도 같은 이 장비들이 나를 대신해서 증명사진의 모델이 돼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등산배낭 제조·판매업을 하는 친구에게, 유럽여행 가는데 배낭 좀 협찬해 줄 생각 없냐고 제안했었다. 여행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러 기업에 기획서를 제출해 협찬 요청을 했는데 몇 개는 성공해서 지원을 받고, 몇 개는 실패했던 터였다.

가끔 그 친구 만나면 어떻게 하면 배낭을 잘 팔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생각하는 배낭 마케팅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했고, 나는 다른 일을 했지만 그의 일이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 주변에서 배낭 살 사람이 있으면 그 친구를 소개해주곤 했었다.

어깨를 짖누르는 무게를 몇 번이고 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버리는데 익숙하지 못 했다. 못 버리는 성격과 늘어가는 기념품들 때문에 점점 커지기만 했다. 가장 짐스러웠던 동반자.
▲ 100일간의 여행을 함께 할 배낭과 캠코더. 어깨를 짖누르는 무게를 몇 번이고 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버리는데 익숙하지 못 했다. 못 버리는 성격과 늘어가는 기념품들 때문에 점점 커지기만 했다. 가장 짐스러웠던 동반자.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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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배낭을 슬쩍 건네며, 피사의 사탑과 파리 에펠탑, 런던 브리지를 배경으로 배낭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피사, 파리, 런던 중 어느 도시도 여행할 계획이 없으니 받기가 곤란하다며 거절했다. 또 사진기도 두고가고, 대신 캠코더를 가지고 가니 사진도 좀 어려울 거 같다고 고사했다.

그러자 꼭 그 도시가 아니어도 좋고, 사진이 아니어도 좋은데, 자기들 배낭이 전 세계를 방문하면 좋겠다고 했다. 가보고 좋은데 있으면, 꼭 배낭과 함께 소개해달라고 했다. 즉 배낭이 가는 곳이 곧 자신들이 가는 곳이라는 생각하는 점. 나는 그 친구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고, 또 그 회사의 그런 경영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캠코더의 스틸사진 기능이 있으니 화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하며, 기쁜 마음으로 배낭을 지원 받았다.

그 친구의 요청은 요청이 아니라 예언이었을까. 내가 그 친구의 손바닥 안에 있었을까. 아니면 녀석의 요청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약속을 지키려고 굳이 배낭사진을 찍으러 이곳까지 찾아왔을까.

뭐래도 좋다. 친구의 말대로 나는 계획도 없던 피사에 왔다. 이곳에서 배낭 사진을 찍기로 했다. 지금 내 행동을 미리 얘기한 친구의 선지에 감탄하며, 그리고 그의 도움에 감사하며, 찰칵!

사탑은 삐딱하게 볼 때 제대로 보인다

사탑은 신기한 면도 있었지만 보면 볼 수록 실망스러웠는데, 왜 실망스럽게 다가올까 그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보니 사탑을 잡아 당기고 있는 와이어 때문이었다. 탑이 무너지지 못 하도록 와이어로 묶어 하중을 감당하고 있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동양에서 온 여행객의 눈으로 볼 때, 굳이 와이어까지 써가며 탑을 무리하게 잡아당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애초에 세로 구도로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무리스러워 보이고, 무리하게 올리다 무너졌다던 바벨탑이야기가 생각나서 무모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사탑은 언제 무너져도 무너질 것이란 연상으로 이어졌다. 기왕 언젠가 무너질 거면 무너지는 모습을 나도 좀 직접 봤으면 좋겠다는, '돌 맞을지도 모르는'생각도 꾸역꾸역 올라왔다.

때문에 거꾸로 우리의 전통 건축의 훌륭한 점들이 생각났다. 나는 아직 한국의 전통 건축중에서 무너질까 걱정스러워 와이어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홀로 불국사를 여행 했을 때의 감동과 비한다해도 이곳에서 느끼는 부자연스러움은 거부감에 가까웠다. 둘 다 종교건축물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두 문화권의 극단적인 대비를 볼 수 있었다.

불국사의 사찰을 보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알 수 있었고 나는 그것에서 감동을 느꼈었다. 유려한 지붕을 내려다 보면 마치 바다나 강을 보는 것처럼 '흐르는' 느낌이 시원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따라 지붕이 흐르며, 풍경이 깃발처럼 나부낄 것만 같았다.

한국 사찰에 '종'은 있고, '탑'은 있어도 '종탑'은 없다. 종을 굳이 높은 곳까지 올리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성당들처럼 도시 한가운데를 점령하고, 일과를 알려준다거나, 시민들을 불러모으는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찰의 탑들은 직선적으로 하늘을 향해 뻗지 않고, 대체로 안정된 삼각형 구도로 올라가기 때문에 피사의 사탑처럼 불안함을 주지는 않는다.

불국사를 방문했을 때 떨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기억이 하나 있는데, 석굴암의 방탄 유리였다. 일제가 콩크리트로 보수공사를 했었는데 그 뒤로 결로 현상이 생겼다고 한다. 유리벽은 제습을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 유리벽이야 말로 한국 건축이 습도 관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설치'라 생각하면, 우리 전통 건축은 이곳에서도 자랑할만 가치가 있다.

그러니 '사탑'과 '사탑을 이용한 관광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와이어가 위태로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탑은 눕고자해서 문제가 생겼고, 한국의 전통 건축은 이미 누워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중력을 거부하고자 끊임없이 도약하는 발레와 중력에 순응하는 한국무용의 차이처럼, 와이어 액션의 할리우드풍의 영화와 리얼 액션 풍의 한국영화처럼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사탑에 와이어를 설치하는 건 좀 아니다

한편으로는 '사탑이 무너지면 다시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간접적으로 접했던 것이 정서를 형성하는데 악영향을 미쳤던 것이었으리라. 그때 무너졌던 다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 돼 이용되고 있고, 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다. 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니 두렵다.

자라온 환경과 문화적 뿌리는 한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난 시절 서울에서의 삶의 터전이 모조리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는 경험을 했던 나에게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이 돼있었다. 서울이란 곳에서의 성장은 그만큼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것은 아닐까 한다. 한 개인의 성장이 하는데 그만큼 이중적인 기준이 적용됐던 것이고. 나 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져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런 험악한 시절을 알기나 할까? 그들이 기억할 수 있을 만한 단서는 이제 현실에 없다. 역사책 속 사진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탑이라는 존재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을 유지하는 태도가 부럽기도 했고, 한편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도 비춰져 불편했다. 

탑 공사 초반에는 지반 공사를 시도하거나 무게중심을 수정해가며 탑을 올렸다고 하던데, 잘못 돼 가는 과정을 수정해보고자 하는 노력까지는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제와서 와이어 설치는 좀 아니다.

사탑은 만들 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데, 정말 오랜시간을 중력과 인간, 그리고 사탑이 투쟁하고 있는 셈이다. 지을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다면 문제가 발생한 시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정해가며 지었으면 됐던 것 아닌가.


태그:#이탈리아여행, #피사의 사탑, #배낭 여행, #동영상 여행,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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