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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기 위해 물대포가 등장했다. 불 끄는 사람들은 소방수가 아닌 경찰이다. 그들이 소방호스를 들이댄 곳은 화재현장이 아닌 거리의 촛불이고, 촛불을 든 사람들의 입이다.

 

20세기 말미까지 거리시위 현장에는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진동을 했다. 21세기에는 최루탄 냄새대신 몸뚱아리를 저만치 밀어내는 물대포의 수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찰이 지키려한 것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아니다. 청와대 정문이다. 경찰이 막으려 한 것은 귀 어두운 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한 시민들의 외침이다.

 

밤낮 경찰에 쫓기는 시민들이 찾는 것은 희망의 끈이다. 청와대에 갇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는 이명박 대통령도 돌파구라는 희망을 찾고 있을 게다.

 

최근 출간된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출판사 '철수와 영희')은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과 그 안에 갇혀 사는 이명박 정부 모두에게 '촛불'일 수 있다.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속에는 리영희· 손호철· 김삼웅· 이이화· 안병욱· 홍세화· 유초하씨 육성이 담겨있다.

 

'국민'말고 '시민'이 되자

 

엮은이는 민교협 공동의장을 지낸 박상환씨다. 그에 따르면 "일곱 선생님들이 지난 2003년부터 2년간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현재 시점에서 저자들의 확인을 받아 재구성"했다.

 

리영희 선생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촛불정국을 예상한 말들로 들린다. 그는 "국민이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며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 권력, 힘을 상징하는 국가라는 상위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개개인을 국민이라는 정치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이란 어떤 권위나 권력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평등 사회인 시민 사회속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말합니다"

 

그는 "대한민국은 주권국가가 아닌 미국의 예속국가"라며 "세계에 이 따위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한미방위조약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의 생존 틀인 영토, 영해, 영공을 미국에게 무조건 무상으로 시간에 제한없이 무기한 양도하도록 하고 있다"며 "조약에 의해 미국이 한국에서 군대를 마음대로 움직여도 우리는 간섭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강연 말미는 이 대통령에게 더욱 실랄하게 들릴 수 있다.

 

"미국과 관계에 있어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도 독립국가도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쌍하고 창피한 인종들이며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만도 못합니다. 제 정신 하나도 없는 머릿속에서 그저 미국숭배나 외치니 이래 가지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정신 없이...그저 미국숭배나 외치고 있으니..."

 

손호철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틀렸다 하더라'라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민주주의를 최소한으로 정의하는 흐름에 따르더라도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손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름으로 오히려 자유민주주의가 압살돼 왔다"며 신자유주의 정책이 부른 사회적 양극화와 대안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발언록은 남북한과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리영희· 김삼웅), 소수자 인권(홍세화), 주체적 학문 정립(유초하), 사회 경제 정치의 민주화(손호철), 역사바로세우기(이이화· 안병욱) 등 한국사회 전반을 지적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구어체로 풀어쓴 각 강연록 뒤에는 청중과의 질의응답을 그대로 옮겨 생생함을 더했다.

 

리영희 선생은 이 책에서 "내 책이 읽히지 않고 읽을 필요가 없는, 그래서 팔릴 필요가 없는 사회를 소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7명의 발언록은 21세기 첫 십년을 맞는 한국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있고 그래서 팔릴 필요가 있는 책'이다.


태그:#7인의 발언록 , #철수와 영희,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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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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