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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방귀 만세
- 글ㆍ그림 : 후쿠다 이와오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아이세움(2001.4.10.)
- 책값 : 7500원

(1) 방귀

방귀 뀐 이야기로 펼쳐 나가는 그림책 <방귀 만세>
▲ 겉그림 방귀 뀐 이야기로 펼쳐 나가는 그림책 <방귀 만세>
ⓒ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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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부를 하고 있던 1학년 3반 교실에 뿌웅 하는 소리가 납니다. 방귀 뀐 아이를 놀리고 싶어하는 짝꿍은 벌떡 일어서서 아무개가 뀌었다고 일러바칩니다. 아이들은 웅성웅성 이 말 저 말 나옵니다.

선생님은 "얘들아, 조용히 해야지. 방귀 좀 뀌면 어때서?"하다가는 "방귀는 건강하다는 증거다. 소리가 큰 것도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야"하고 말합니다만, 방귀 뀐 아이는 그예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렇게 되면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 말마따나 "방귀 좀 뀌면 어떠냐" 싶지만, 정작 자기도 모르게 방귀를 뀌게 된 사람이나, 둘레에서 수군수군거리는 사람, 그리고 일러바친 사람한테는 이와 같은 말이 얼마나 씨가 먹힐는지요.

할아버지도 뀌는 방귀요, 어머니도 뀌는 방귀요, 고양이도 뀌는 방귀입니다. 배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하니까 나오는 방귀입니다. 보리밥을 먹으면 보리 방귀를, 고구마를 먹으면 고구마 방귀를, 감자를 먹으면 감자 방귀를 뀝니다. 고기를 먹은 사람한테는 고기 방귀가 나옵니다.

저마다 먹은 대로 방귀가 나오고, 저마다 몸에서 삭여지는 대로 냄새가 납니다. 소리는 큰데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방귀가 있고, 소리는 없는 듯한데 냄새가 구린 방귀가 있습니다. 혼자 뀌면 아무 일이 없으나, 여럿이 있는 자리라면 크게 달라지는 방귀입니다. 혼자라면 마음 놓고 뀔 터이나, 혼자가 아니면 속이 끓어도 참고 또 참아서 답답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밖에서 밥을 자주 사먹으니 방귀도 자주 뀌고 냄새도 많이 납니다. 시골집에서 손수 일군 밥을 해먹는 사람이라면 방귀도 그다지 나오지 않으나, 나온다 한들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도 느끼지만, 배가 아닌 혀에 달콤한 밥을 잔뜩 먹게 되면 언제나 구린 방귀가 나옵니다. 누런 쌀과 콩으로 지은 밥에다가 푸성귀를 반찬 삼아서 알맞춤하게 먹으면 방귀가 거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끔 나와도 냄새를 못 느낍니다.

(2) 학교

한 아이가 방귀를 뀌면 교실은 공부를 하기 힘들어집니다. 냄새가 난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법석이 되기 일쑤이고, 방귀 뀐 아이를 놀려대느라, 잘못해서 방귀를 뀐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선생님으로서도 차분하게 아이들을 다스리기 쉽지 않습니다.

글쎄, 우리 나라 수십만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어떻게 마주하실는지요. 제가 초중고등학교 때 겪은 교사들 가운데, 방귀 소리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서로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눈 분들이 있었나 떠올려 봅니다. 거의 우격다짐으로 우리를 내리눌렀는데, 그런 가운데에도 몇몇 분들은 뜻있는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거나 이야기를 건네려 했습니다.

그러나 뜻있는 말을 들려주어도 곧이듣거나 새겨듣는 동무가 많지 않았다고 떠오릅니다. 장난으로 방귀 뀐 아이는 반죽음이 되도록 몽둥이찜질이 되었고, 장난 아닌 방귀를 뀐 아이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 "선생님 집에 미키라고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 녀석도 방귀를 뀐단다." "에, 정말요?" "거짓말이죠?" "고양이가 어떻게요?" 싱긋싱긋 웃는 선생님의 눈이 가늘게 붙어 버렸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다들 방귀를 뀌는 거야. 방귀에 관한 결론이다. 다들 알았냐?" 선생님은 뿌듯해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렸습니다... (21쪽)

그림책 <방귀 만세>에 나오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한테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억지스럽게 짓누르거나 억누르거나 다그치는 목소리가 없습니다. 일러바친 아이는 짓궂었지만, 속으로까지 얄궂지 않습니다.

문득,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학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 우리네 교실도 이처럼 살아숨쉬거나 싱싱한 기운이 넘쳐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방귀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자, 아이들과 함께 '방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거리낌없이 주고받은 다음, "방귀를 글감 삼아 글 하나 써 보자"고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러한 선생님 말을 고이 받아들여서 즐겁게 글쓰기를 합니다.

[일러바친 아이 글 : 방귀 조회]

어제 아침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긴긴 얘기를 듣고 있는데
방귀가 나왔다.
엉덩이도
심심했나 보다.
끝.

이제는 대학교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도 글쓰기를 한다고 그럽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열거나 나누면서 세상 보는 눈을 기르는 글쓰기는 자취를 감춥니다. 마음을 살찌우거나 가꾸면서 아이들 삶도 살찌우거나 가꾸게 되는 글쓰기도 차츰 사라집니다.

오로지 논리와 이론을 담아 쓰는 글인 '논술'만 판칩니다. 글 잘 쓰는 법을 다루는 책이 나오기는 하나, 글을 왜 잘 써야 하는가를 헤아리거나 돌아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거의 안 담기거나 한두 줄 잠깐 다루고 그칠 뿐입니다.

[방귀 뀐 아이 글 : 꽃 방귀]

선생님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방귀를 뀐다고 했다.
그렇다면 풀이나 나무나
꽃도 방귀를 뀔까?
물푸레나무의 맛있는
꽃향기는 꽃이 뀐
방귀 냄새일까?

일본은 초중고등학교 글쓰기 역사가 백 해가 넘었습니다. 일찍부터 아이들한테 자기 삶을 담은 글을 쓰도록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끌었습니다. 꾸밈이나 치레가 아닌 자기 속생각을 있는 그대로 담도록 이끌었습니다. 대학교 입시 때문에 하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이리하여 교사들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이 어떤 형편에서 살고,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는가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고, 아이들도 쉬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앓이를 속시원하게 쏟아낼 수 있습니다.

<방귀 만세>라고 하는 그림책에서 이러한 일본 글쓰기 문화를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끄는 길을 잘 따르는 한편, 저희들 나름대로 자기 길을 새롭게 열거나 찾아나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한 고비를 겪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여태껏 살아오면서도 미처 못 느끼거나 못 본 대목을 아이들한테 배우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3) 아쉬움 한 가지

그림책 <방귀 만세>를 보면, 아이들이 자기 집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 시중을 들고,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며 앉은 자리에서 밥상을 받고, 옆에는 아들이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만 따로 나온 그림에서도 어머니는 '집에서만 있는 사람'인 듯 그려집니다. 이와 같은 그림결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까요. 아니, 이렇게 그려야만 우리 삶을 담아내는 셈일까요.

집안일이야 아버지가 할 수도 있고 어머니가 할 수도 있습니다. 바깥일이야 둘 모두 할 수 있고 어느 한쪽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일이 더 높지 않고 어느 일이 더 낮지 않습니다. 다만, 한쪽으로만 굳어지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성평등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이러한 그림결은 곰곰이 살피면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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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이와오 지음, 김난주 옮김, 아이세움(2001)


태그:#그림책, #방귀 만세, #후쿠다 이와오, #방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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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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