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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의 마을에는 그만의 행사가 있다. 가족 축제 기간에 5천 마리의 비둘기를 차례로 풀어놓는다. 남자들은 총을 들고 그것을 사냥한다. 그 가운데서 명사수를 뽑는데 그것이 되면 그야말로 영웅 취급을 받는다.

 

어른들이 이렇게 하는 사이 아이들은 ‘링어’가 된다. 링어는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아이다. 잔인한 일이지만, 그 마을에서는 아이들에게 그것이 옳다고 설명한다. 총에 맞아서 고통스러워하는 비둘기가 있으면 얼른 달려가서 좀 더 빨리 죽게 해주는 것, 그것이 비둘기를 위한 것이라고 알려준다.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명사수로 뽑힌 적 있는 아버지를 둔 파머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곧 링어로서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야 하는 파머는 도저히 그 논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고통스럽다고 해서 빨리 죽이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자신이 아플 때 약을 주면서 치료해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이가 어리지만, 파머는 그 정도 분별력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축제를 하면서 버는 돈으로 공원 등을 발전시킬 수 있으니 좋은 사업이라 여기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그것을 ‘강한’ 남성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비둘기가 좋다고 하는 것, 링어가 싫다고 하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겠다고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파머는 그것이 두렵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두렵고 그로 인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무섭다. 파머는 억지로 링어가 되는 것을 꿈꾸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자신도 친구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잃어야 했던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에게 잘해주던 이웃집 여자아이를 괴롭히고 마음에 안 드는 일까지 해야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말할 수 없어서 혼자 끙끙거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파머의 방에 비둘기가 찾아온다. 친구들이 본다면 링어를 운운하며 당장 잡아서 목을 비틀어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파머는 비둘기를 쫓아 보내려 하지만 비둘기는 계속해서 온다.

 

파머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비둘기가 바로 자신이 원했던 친구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인정할 때,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 할 때 감당해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파머는 그걸 해낼 수 있을까?

 

남자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아이들의 세계는 천진난만한 것 같지만 냉혹한 면도 있다. 또래와 다르면 괴롭힘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왕따의 경우라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남을 왕따 시키는데 앞장 서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질 만큼 두려운 일이다.

 

또래들과 다른 것만 해도 그런데 파머가 겪어야 하는 건 더 심각하다. 마을 전체가 어떤 열기에 휩싸여 있다. 그 열기는 매해 반복됐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거의 모두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파머가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행동하는 것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그런 그에게 열기는 ‘폭력’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제리 스피넬리는 파머의 고민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 묘사가 수준급이라 파머의 마음을 눈으로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친구가 되기 위해 억지로 나쁜 짓을 해야 하는 속상함, 비둘기와 친구가 된 대가로 매순간 긴장해야 하는 불안함, 세상이 모두 자신을 비난할 것만 같은 두려움 등 파머의 마음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만큼 그 또래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많은 것들을 가깝게 지켜볼 수 있으리라.

 

소재는 확실히 남의 나라 것이다. 하지만 파머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하는 그 문제는 남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폭력에 맞서야 하는 순수한 아이의 이야기가 담긴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국내에서 이런 소설을 소개됐다는 것이 반갑기만 하다.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제리 스피넬리 지음, 최지현 옮김, 메타포(2008)


태그:#제리 스피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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