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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마님>
 <아현동 마님>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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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TV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식구들이 선호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보게된 드라마 중 하나가 바로 <아현동 마님>입니다.

12년 연상의 수석검사인 백시향(여)과 초임검사 부길라(남)의 러브스토리를 위주로 전개되는 드라마입니다. 연령차가 많은 커플, 재혼으로 이뤄진 커플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그린 점은 평가할만한 요소라고 봅니다. 가족의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사회상에 맞춰 시청자의 편견을 희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며 몇까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여검사인 백시향과 두명의 뚱뚱한 여동생의 관계 설정이 그 중 하나입니다. 또 백시향이 부길라와 결혼 후 자신의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후배인 남편을 내조하고 가정생활을 하게 된 점이 또 하나입니다.

세번째는 백시향의 시집살이 과정에서 부딛치게 되는 14살이나 어린 손위 동서의 횡포와 가부장적 사고에 대한 문제입니다. 네번째는 횡포를 부리며 얄밉게 구는 큰며느리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점입니다.

첫째, 큰언니인 수석검사 백시향은 외모도 빼어나고 마음씨도 매우 착하게 등장합니다. 반면 두 여동생은 뚱뚱한 외모를 지녔을 뿐 아니라 게으르고 나태하며 심성도 매우 못된 캐릭터로 묘사되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뚱뚱한 외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위험성이 높았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뇌리에 저절로 뚱뚱한 여성들은 심성이 못되고 비뚤어진 것으로 각인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모가 예쁜 여성은 심성이 곱고 부지런할 뿐 아니라 능력있는 모습으로 각인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편견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던 여성이 12살 연하의 남자후배와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포기합니다. 연하남에 대한 우월성을 인식시킬 가능성과 함께 여성은 남성을 위한 내조자라는 가부장적 질서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실 수석검사와 초임검사가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이 모두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한사람은 변호사 개업을 하며 사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집에 눌러앉아 살림을 배우고 있는 설정은 오래된 가부장적 질서의 위력을 부각시킨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성역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소지가 있습니다.

<아현동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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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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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백시향이 결혼 후 손윗 동서인 그 집의 큰며느리와 갈등을 합니다. 문제는 그 갈등의 전개과정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14살 아래인 큰며느리가 14살 위인 작은 며느리에게 말을 놓습니다. 14살이나 많은 작은 며느리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받고 말이죠. 뿐만 아니라 12살 아래인 남편에게 반 말을 한다며 핀잔까지 합니다.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집의 할머니까지 그러한 큰며느리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조선시대에도 동등한 위치였습니다. 촌수도 없는 같은 항렬이었습니다. 또 손아래 사람이라도 손윗사람이 얼마든지 존대할 수가 있습니다. 손아래 사람이 하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손윗사람이 스스로 존대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매우 가부장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조선시대에도 부부는 동등한 관계이고, 손윗사람이 손아래에게 반드시 하대하도록 강요된 바가 없습니다. 뭔가 내용이 억지스럽습니다. 나이가 어린 삼촌이 나이가 많은 조카에게 '조카님'이라 하며 존대한 일도 흔하게 있었던 일입니다. 부부가 함께 존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부부는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큰며느리의 주장은 억지입니다.

넷째, 큰며느리가 사실 밉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시비할 생각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특정지역 출신에 대한 반감을 자극할 의도가 아니라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이 그렇게 얄미울 이유는 없었다고 봅니다. 과거 독재시절에 대형 형사사건의 범인이 주로 호남출신으로 보도된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타지역민에게 호남출신에 대한 반감을 증폭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조폭도 항상 전라도 사투리를 썼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조폭이 처음 등장한 영화 '친구'가 신선하게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특정지역에 대한 좋지않은 묘사는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고향을 밝히면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라디오 범죄드라마에서 저의 출신지역이 부각된 때문입니다. 모라디오에 '법창야화'라는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 제 1화가 바로 '강진 갈갈이 사건'이었고 제가 전남 강진 출신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작가나 연출자들은 그런 파급에 항상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특정한 캐릭터와 관련된 종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가치관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아닌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시청률이 높아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드라마라면 더더욱 엉뚱한 편견을 만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은 밉상스럽다.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다. 손윗 사람은 반드시 손아래 사람에게 하대를 해야한다. 특정지역 출신은 심성이 나쁘다." 등등…. 하나의 드라마에 이렇게 다양한 편견의 장치를 심어둘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극의 재미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장치인 경우도 있을지 모르나 이 드라마의 경우 그러한 필수성이 느껴지는 장치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부디 미디어의 영향력을 인식하여 관련자들이 사려깊게 생각하고, 그런 배려가 배어나는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아현동 마님, #백시향, #부길라, #전라도 사투리, #하대와 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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