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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노라면 새삼스럽게

정시에 도착하는 기차가

썩 드물다는 걸 깨닫곤 한다

왜 기다리는 건 늘

제때에 오지 않는 걸까

왜 때를 맞춰 오지 않는 걸까

하지만 세상에 늦게 도착하는 게 어디 기차뿐이랴  

봄꽃 다 지고 난 뒤

커튼콜 받는 가수라도 되는 듯이

뒤늦게 홀로 피어나는 꽃도 있다

하나의 사랑이 다녀간 후

폐허가 된 빈터에

어느 날 문득 기적소리를 울리며 찾아오는

그렇게 더딘 사랑도 있다


송용억가 큰 사랑채 뒤안

만성(晩成)을 꿈꾸며

이제야 피어난 고려영산홍을 바라보면서 문득

꽃이 핀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꽃은 피는 게 아니라

나무의 몸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나오는 뿔이 아닐지.  

사물에게 가장 약한 자리란

대개 가장 절실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꽃이 핀다는 건

제가 가진 간절함으로

또 다른 간절함을 뚫는 것이 아닐지.

희망·사랑·꿈 같은

소중한 꽃들은

하나같이 뿔을 가졌다

늦게 도착한 것들을 살짝 끌어안으면  

그것들이 가진 뾰족한 뿔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태그:#꽃 ,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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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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