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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취임 후 처음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통미봉남은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확인해보자.

 

"싱가포르 합의사항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미국도 발표도 안했으나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은 한국을 제끼고 미국과 한다는 북한 전략은 성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면서, '통미봉남'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근거로 "전통적 동맹관계인 미국과 대북 핵문제 전략을 함께 풀어나갈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역시나 드러난 것은 구체적인 전략의 부재다. 이미,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는 '북핵 포기' 자체에 대한 전략이 부재돼 있음이 드러난 상황이다. 대통령이 직접 '통미봉남'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이번에도 구체적인 전략은 간단하게라도 언급하지 않아 '역시나'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북한은 '통미봉남'으로 쏠쏠한 이득을 얻었던 적이 있다. '서울 불바다'를 거론해 우리 국민들의 '라면 사재기 열풍'을 일으킨 상황에서, 미국과의 직접 대화로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경수로 비용으로 얻었던 김영삼 정권 시절을 기억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남북한의 대결이 '체제 우위의 대결'이라면, 그 결과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10여 년 전의 그 '서울 불바다' 발언과 '라면 사재기 열풍'으로 직접 깨달았을 것이다.

 

남북 대화는, 체제 우위의 위치를 선점한 가운데 직접적인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 전략도 장기적인 그림과 함께 임기응변의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입체성을 띠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 불바다' 발언과 '라면 사재기 열풍'을 일으켜 극한의 분위기를 유발한 상황에서도, 2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비용을 얻어낸 북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그런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을 관광지로 열었다는 자체를 돌아보라. 퍼주기로 보이는가? 그럼 김영삼 정권 시절에 제공한 경수로비용 20억 달러는 '훈장'이란 말인가? 그것도 명백한 '퍼주기'다. 실리도 뭣도 아무것도 못챙긴 '그냥 퍼주기'였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공조로 '통미봉남' 자체를 성립시킬 수 없겠다고 하지만, 선언 그대로의 생각을 스스로도 하고 있다면 이는 대북정책에 대한 전략 자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써 꽁꽁 얼어 닫혀진 체제를 녹여가며 열어젖힐 전략을 세웠고, '주한미군의 평양 주둔'으로써 '한미공조'와 '남북대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통미봉남'을 '한미공조'로써 막겠다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후쿠다의 우왕좌왕, 고이즈미의 '총리 방북' 주문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 속에서 지지율 하락의 쓴맛을 보고 있다. 취임과 함께 아베 신조식의 대북 강경 기조로부터 벗어날 것을 선언했지만, 북일 관계 교착의 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도전'을 피하고 '현실'을 선택했다. 지난 13일에 기한이 만료된 일본의 '독자적 대북 경제제재(북한 선박 전면 입항 금지와 24개 사치품 수출금지)를 연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나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과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응이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이유와 똑같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독자적 대북 경제제재'의 연장은 후쿠다 내각의 뚜렷한 소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황 논리'에 따른 결과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앞서 이야기했듯이, 후쿠다 내각은 '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이다.

 

'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에서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적극적으로 나서 돌파구를 직접 열어갈 계기를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무기력한 그 상황에서 하려던 바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후쿠다 내각은 한마디로 후자를 선택한 것.

 

그런 의미에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말은 대외적인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 일단 그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에 대한 북한과 미국 자체의 입장 차이가 크다. 북한 외무성은 '견해일치'를 이야기했지만, 미국 측은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싱가포르 합의 이후의 '눈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부시 행정부답지 않은 '미적거림'이라는 것.

 

지난해 10월 3일에 있었던 '북핵 불능화 신고' 당시에도 표현 상의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일부 표현의 조정을 실현시켰던 전적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핵'에 관해 미국도 대단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마지막으로 건질 수 있는 '업적'은 '북한과의 대화'밖에 없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상, 부시 행정부가 늘 '용가리 통뼈'일 수는 없는 입장이다.

 

결국, 일본의 입장도 북미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극단적인 강경책으로 일관했던 아베 신조의 경우,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에서 변화를 포기해버린 인상을 주는 후쿠다 내각으로서는 특히나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후쿠다 야스오 총리를 향해 "총리가 결말을 내야 한다"면서 "나는 더이상 북한에 갈 수 없으니 총리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의 일반 국민들도 알아듣기 쉽게 '돌파구'를 주문한 것이다. 그 자신 역시 '북일 수교'를 외교적 역작으로 삼으려 했기에 할 수 있었던 발언일 듯하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를 성립시킨다면 지지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언급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관한 언론 보도를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바라본 독자라면 만성적인 경기불황의 주범으로 몰린 부시 행정부로서는 마지막으로 건질 수 있는 것이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 외엔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이명박식 실용외교?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서 뭘 느낄 수 있을까? 미국이나 일본과 '스킨십'을 쌓거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북한의 '통미봉남'을 막아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 이는 외교를 대단히 순진하게 판단했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이명박 대통령만 '실용외교'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도, 후쿠다 야스오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네들로서는 '북한과의 대화' 자체가 외교의 실용이고, 정권의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스킨십'이 국민들로부터도 직접적으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외교적 실용'보다 우선일 리가 없다. 실용외교한다면서 왜 타국 정부수반의 '실용'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실용'을 이야기하면서 '인정'에 호소하고 있다. '인정'에 호소하는 것이 이명박식 실용외교의 본질인가? '인정'이 실용이라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다. '실용'이란 이해관계자들 모두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다.

 

'아프간 재파병'이 이명박 정권이 줄 수 있는 '이익'일 수도 있지만, 그건 이미 '좌파 정권' 노무현 정권도 다각도로 실천해준 것이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새삼스러운 이익이 아니며 후쿠다 내각을 움직일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한국이라면 당연히"라고 생각하고 있을, 뻔한 일일 뿐이다. 북한의 '통미봉남'을 '한미공조'와 '한일공조'로써 막겠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그네들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화로 판단해보는 '이명박식 대북정책'

 

쉽게 이야기하려면, 학창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같은 반 친구가 있다. 주머니 사정이 몹시 궁한 친구지만, 다른 친구들을 괴롭힐 수 있는 안좋은 무기가 있어 '맞짱'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분위기가 싸늘하든 어쨌든, 일단 '대화'로 앙금을 풀어야 하는 친구다.

 

여기서, 당신은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을 동원하고 싶어진다. 주머니 사정 궁한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만 대화하면서, 당신은 아는 체도 안한다. "더이상 나 협박 안하면 너희 집 어려운 사정 해결해주겠다"는 당신의 제안에도 코웃음만 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PC방도 가고 떡볶이나 햄버거도 같이 사먹으면서 무조건 친하게 지내면 그 녀석하고만 놀지는 않을 것"을, 그 녀석의 당신에 대한 무시와 협박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전국민에게 제시한 꼴이다. 쉽게 풀이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황당하지 않은가? 학창시절로 돌아가보자. 소위 말하던 '일진'이라는 녀석들이 이렇게 허술한 아이들일까? 힘도 더 세고 돈도 더 많은 '다른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지원'도 받는 그 주머니 사정 궁한 친구가 과연 당신에 대한 무시를 그만둘 수 있을까?

 

게다가, '다른 친구들'도 지금 당장은 당신과는 친하게 지낼지는 몰라도, 그들에게도 학급에서의 입지가 있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도 살펴봐야 하는 형편이다. 당신만을 위한 '정의의 사도'로 지속적으로 남을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 중 가장 돈 많고 힘센 친구는 당신에게는 뭐가 어떻게 돼가는지 이야기도 잘 안하면서, 이미 그 주머니 사정 궁한 친구와 뭔가를 '합의'를 한다. 그러면서 레스토랑에서 그가 비싼 경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돈을 내라는 주문을 했고, 실제로 당신은 그 돈을 제공한 적도 있다. 현실 속의 이야기로 보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다.

 

어려운 이야기는 가끔씩 일상의 이야기로 풀어낼 필요도 있다. 그렇게 한다면, 쉽게 풀이된다. '이명박식 대북정책'을 학창시절의 친구들과의 긴장관계로 비유하면,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가 도출된다.

 

'햇볕정책'은 주머니 사정 궁한 친구를 금전적으로 도와가면서, 그 친구가 감춰두고 싶어하는 부끄러움의 문을 열어젖히는 정책이다. '주한미군 평양 주둔 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도 고려해가면서 다양한 각도를 고려하는 정책이다.

 

이런 정책을 포기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PC방도 가고 떡볶이나 햄버거도 같이 사먹으면서 무조건 친하게 지내면 그 녀석하고만 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식의 정책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주머니 사정 궁한 친구를 싫어하면서,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주머니 사정 궁한 그 친구의 편이라고 간편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지지층 환심사기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는 지금이라도 그만하라. 이명박 대통령의 선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미 아무 소리도 못하고 "주머니 사정 궁한 친구가 먹은 비싼 경양식"에 대해 '아야' 소리 못하고 지불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하고 싶은건 아닐 것이라 믿겠다. '실용'을 하겠다면 '실용'을 하라. 통하지도 않을 '인정'에 호소하지는 말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미봉남, #이명박 기자회견,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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