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대 보수화는 '현상'이 아니라 '구조'

 

일단, 18대 총선에서 대한민국의 20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알아보자.

 

* 투표율-19%

* 한나라당 지지율-53.1%(이 수치는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와 함께 지난 7일에 전국의 성인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른 결과다.)

 

18대 총선에서 드러난 20대의 정치적 의식은 여러 언론의 언급대로 부재하고 있으며, 그나마 관심이 있는 치들도 '보수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18대 총선은 전체유권자 중 54%에 이르는 유권자, 그중에서도 19%의 투표율을 지지했으며, 그나마도 그 19% 중에서 절반 이상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을 20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단순히 20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낮은 투표율에서 드러나는 20대의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그속에서 드러나는 '보수화'의 문제는 단순히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구조'로 굳혀져가고 있다.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담론 형성이 쉽지 않을 것이다.

 

20대의 정치적 무관심, 알고 보면 놀랄 이유 없다

 

이쯤해서 생각나는 글이 있다면, 홍세화씨의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다. 이 글을 통해 20대가 평균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자.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 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보라. 그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 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 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후략)"

 

20대가 살아온 지난 삶의 평균치를, 홍세화씨가 간략하게 돌아본 부분이다. 매학년마다 선생님들은 "너희들의 학습 실력은 선배들에 비해 한참 모자라다"고 비판했지만, 한국의 학생들처럼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 공부는 "왜"라는 질문이 부재된 공부라는 것이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야 하며 그를 위해 앞부분을 차지해야만 하는, 토끼몰이 당하듯 부모와 교육시스템에 의해 치도곤을 당하다시피 하던 공부라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대학을 못가거나, 혹은 아예 못가는 사람은 '낙오자'로 치부되거나 '공장 인생'이라는 비아냥 속에서 무시되기 일쑤다.

 

개인적으로, 대학입시에 몰입하며 그 자체만이 교육시스템의 운용목적으로 돌변해버린 한국식 교육, 자신의 사고를 자유롭게 펼치는 논술마저도 대학입시의 일부분으로 변질돼 학습당하듯이 답안지 표본마냥 찍어내는 교육은 민주사회의 교육시스템으로서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위정자들과 엘리트들이,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을 방지하며 그 지배력을 반영구적으로 굳힐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에 대해 모 거물 정치인이 "그것 참 올바른 일"이라고 답변했다는 점에서 위정자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사실, 20대 투표율 19%는 놀랄 필요가 없는 현상이다. 그들은 그렇게 길들여졌다. "왜"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으며, 그럴 기회와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부모들 역시 이런 교육시스템이 자녀들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에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왜?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돈 잘 벌면서 좋은 집안이나 돈 많은 집안의 이성을 만나 결혼하는데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보수적 시스템일수록 순응하는 자에게 맛 좋은 당근을 보장한다.

 

부모들은 그에 발맞춰,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도 잘 모른 채, 남이 시킨다거나 남에게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쳇바퀴 돌리듯 돈을 뿌려가며 자녀들에게 '공부 노가다'를 강요한다. 젖병 빠는 아이에게 영어 단어를 읊어주는 부모를 보셨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두드러졌을 뿐, 대한민국 부모의 평균적인 인식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자라난 사람들에게 "왜"에 대한 고민을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참여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핀트가 어긋난 일이다. 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다.

 

공부에 치여가면서도 그걸 피하면 '사회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아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투표가 아니라, 토익과 토플, 그리고 그 시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온라인 게임과 TV 연예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바야흐로 이것은 구조로 굳혀져가고 있다.

 

그 구조는 결국,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에 직접 나선 소수의 용감한 20대와 높은 등록금에 푸념하면서도 정작 사학재단 고위관계자들과 '스킨십'을 나누며 그 기득권을 나누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20대로 구분시킨다. 냉소적인 눈으로 본다면, 이 꼴은 표현 그대로 '코미디'다.

 

20대를 알고 싶다면 50대를 보라

 

상당수의 20대는 핵가족화 구조의 가정에서 자라왔다. 핵가족화된 가정에서의 부모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게다가 한국의 부모들이 어떤 부모들인가. 역사적으로도 '치맛바람'이니 하는 표현에서부터 알 수 있다. 돈을 뿌려가며 쳇바퀴 굴리듯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을 '교육'이라고 알고 있으며, 좋은 성적을 받아 특목고에 진학시켜 명문대에 보내는 것 외의 가치는 무시해버리는 부모들이다.

 

그런 구조 아래에서 20대의 세상 보는 눈은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뉴타운'이라는 말 한마디에 선거출마자의 이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정치행위를 일삼는 부모, 그리고 '땅값'이나 '집값'이라는 말만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는 돌아보지 않는 부모들이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과보호'와 '과도한 사교육'이라는 2개의 테마 속에서 자라난 20대들의 정치적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워진다. 참고로 50대의 한나라당 추정지지율은 56.7%, 앞서 언급한 20대의 53.7%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치다.

 

20대를 보려면 50대를 보라. 부모가 본 보수신문을 옆에서 따라 본 세대들이며, 보수언론의 부록 논술지면을 보며 논술공부를 답안지 외우듯 공부한 세대들이다. 한나라당 지지율 53.7% 역시 놀라운 수치가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문제는 '뉴타운'이나 '집값' 혹은 '땅값'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부모들에게서 자녀들이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당선된 것 자체에서도 알 수 있지만, 한국 사회는 점차적으로 "돈을 벌든 뭘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며 남을 돌아볼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법칙마냥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속에서 20대와 자라나는 10대가 받아들일 것은 "나 외엔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에 대한 총괄적인 고려와 '더불어'라는 단어도 깊이 판단해야 할 투표행위에 있어 투표율 19%와 한나라당 지지율 53.7%가 나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렇듯 사회의 시민이자 구성원이라는 연대의식이 찢어지면, 득을 볼 사람들은 소수의 위정자들밖에 없다. 사회의 불합리를 시민의 힘으로 직접 고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연대의식'이다.

 

그런데 그게 부재돼간다. 그네들이 즐겨하는 온라인 게임 자체도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TV 연예 프로그램 시청 역시 마찬가지다. 앞에 '사람'을 앉혀놓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TV가 제공하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연예인들의 들으나 마나 한 연애담을 그대로 흡수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연대의식'이 싹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20대가 '연대의식'을 가장 필요로 할 때는 술 마실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면, 혹시 지나친 생각일까.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수언론의 방송 진출

 

20대의 이러한 평균적인 의식구조와 취미생활을 감안할 때, 가장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일은 '신문과 방송의 겸업'이라는 사안이다.

 

이 사안이 법제화될 경우, 보수언론이 당파성을 위해 그동안 신문에서 서슴없이 저질렀던 사실 왜곡과 이데올로기 주입을 영상매체로 시도한다면, 그리고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연애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의 수단까지 동원해 시도할 경우를 상상해보자.

 

"높은 등록금에 푸념하면서도 등록금 인상을 누구보다 원하는 사학재단과 친분이 두터운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행위"라는 아이러니가 보다 업그레이드돼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한민국 사회의 '빅 브라더'들은 신이 난다. 그 지배력에 해가 될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창조한 교육시스템과 사회운용 시스템에 순응하며 착하게 순응한 자만 받아들여 기득권층에 편입시켜 '기득권의 화려함'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어떤 사람들은 "20대가 원하는 것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변화"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도 그 말은 20대를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봤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라는 것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지나치게 강한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변화가 아니라, 온라인 게임과 TV 연애 프로그램을 원하며, '작업(연애)'과 '돈'을 원한다. 보수 기득권층이 맛보기로 보여주는 화려함, 그리고 연예인의 화려함을 동경하며 닮길 원할 뿐, '사회 변화' 따위는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이 점도 일일연속극의 자극적인 소재에 지나치게 동화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수다의 소재로 삼는 그네들의 어머니들과 많이 닮은 것 같지는 않나. "우리 어머니는 안그러신다"고 항변하지는 말아달라. 나는 그저 '평균적인 수치'를 집어내 이야기했을 뿐이니까.

 

어쨌든, '캥거루' 같은 20대가 19%의 투표율과 53.7%의 한나라당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것,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은 미쳐돌아가는 사회의 교육시스템, 그리고 부실한 근현대사, 그나마도 부족해 '대안교과서'를 만들어낸 뉴라이트(근현대사)와 전경련(경제), 방송업계 진출을 노리는 보수언론이다. 20대와 자라나는 10대가 지금보다 더 엄혹한 세상을 만들도록 유혹할 아주 위험한 소재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대 투표, #의회권력 교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