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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정선군 임계면을 가는 길에 삽당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 사이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백두대간 18구간 원방재~백복령~석병산과 19구간 닭목령~고루포기산~대관령의 분기점이다.

 

25년전 이 고개를 넘어 할아버지 댁에 갈 때에는 비포장 도로에 흙먼지가 뽀얗게 날리고 덜커덩 거리던 완행버스를 탔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내려서 버스를 밀기도 하고 길가의 흙을 파서 도로에 뿌리기도 했다. 추위를 던다고 히터를 돌리면 버스 특유의 냄새에 멀미도 심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추억만으로 남은 고향. 그래도 가끔 차를 몰고 이 고개를 오르면 옛 생각이 난다. 강릉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강을 끼고 오르면 봄에는 새싹이 나무 꽃처럼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이 고와 탄성이 절로나는 곳. 산굽이를 돌아 마루에 서면 외갓집 할머니처럼 반겨주는 주막. 올해 여든살의 송순난 할머니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한 지 24년째다. 삽당령 임계쪽에 대를 이어 살아온 집안에 시집 와서 작년에 남편을 먼저 가시라 했단다.

 

이 집의 별미는 갓전병과 막걸리 그리고 생칡즙이다. 메밀전을 얇게 부쳐서 가을에 담가 놓은 매운 갓김치를 넣어 둥글게 말아놓은 전병. 옥수수로 만든 동동주는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자랑한다.

 

친구들과 여유있는 점심시간에 한바퀴 돌아가면 두 시간 거리. 술을 할 줄 모르는 이가 함께 가면 차 키를 맡기고 한 병으론 모자란다고 거푸 주문을 한다.

 

"남의 마누라 남의 남편하고 오는 것들이 많다"고 세태를 나무라면서 "강릉색시들이 참하다"고 한다. 마흔 넘긴 막내아들 장가를 들였다더니 며느리가 강릉 사람인가?

 

 

천막으로 둘러쳐진 주막에는 한켠에는 산신이 모셔져 있다. 한지를 접어두고 초를 꽂아둔 초라한 신단이지만 등산을 하는 이나 나물, 송이채취꾼들이 촛불을 켜고 치성을 올린다. 만원짜리라도 놓여지면 모아뒀다가 운수업을 하는 이들이 오면 기름값을 하라고 준다. 안전 운행은 물론 사업이 잘 되라는 기원에서다.

 

술기운이 덜 가신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그거 줘요" 한다. 냉장고에 손이 가려다 "얼린 것 줄까?"하고 구석의 냉동고로 간다. 생칡즙이다. 숙취해소에 좋단다. 페트병 하나에 1만5천원. 전병 하나를 놓고 젓가락질 하는 나를 보고 막걸리가 좋다고 권하더니 칡즙으로 화제를 옮긴다.

 

"일꾼 둘을 사야 돼. 세렉스를 하나 빌리면 15만원. 품하나에 8만원. 그래 가지고 산에 올라가서 칡을 캐야 돼. 점심은 잘 준비해야 돼 닭도 한 마리 삶고. 새순이 나오기 전에 캐야 약이 돼. 순이 한발만 빠지면 못써 약효가 없거든. 플라스틱 솔로 닦는다는 건 거짓말이야 짚으로 새끼를 꼬면서 물로 씻어야 해. 그리고 작두, 옛날에 거름 썰던 작두로 썰고 떡메로 내리쳐야 즙이 제대로 나와. 150만원 주고 산 기계에 넣고 돌리면 잘게 썰어져."

 

칡즙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눈에 선하다. 한병 달랬더니 3일 만에 먹으란다. 더 두면 상한다고. 추석을 전후에 성황제를 올린다고 한다. 여성황을 모셨기에 황소를 잡아서 제를 올리고 주변의 마을 사람들과 단골들을 불러 잔치를 연다. 날짜를 자신이 잡으니 전화를 한댄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관상을 보고 '아는 소리'를 했다. 복채로 5천원을 더 냈다.

 

"어떤 시대적 변화가 있더라도 사람은 사람이어야 한다. 흔한 것일수록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하라."

 

달력 뒷장에 매직으로 쓴 글이 붙어 있다. 올 때마다 머리를 끄덕이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잠시 집을 나서니 세상이 이처럼 여유롭다.

 

덧붙이는 글 | 최원석 기자는 자전거포(http://www.bike1004.com)를 운영하며 강원 영동지방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삽당령#주막#갓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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