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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의 세월이 흐른 거 같다. 당시 난 울산에서 회사에 다니며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했다.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전국 노동자 대회 때가 아니었나 싶다. 서울의 어느 대학교 내에서 1박 2일 집회가 진행중이었는데 집회 장소에서 우연히 '빈들의 소리'라는 작은 책자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난 갓 노동운동이란 것에 눈뜨고 있었고 그와 관련해 많이 알고 싶어 하던 때였다.

 

'빈들의 소리'를 뒤척이니 마음에 와닿는 의미있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성수 목사?'

'빈들의 소리' 발행인을 보고 그 작은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분이 서울 어느 교회 목사님 임을 알게 되었다.

 

'빈들의 소리' 내용은 대부분 소외계층에 대한 글들이었다. 또한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리는 글도 있었다. 난 몇 쪽 안되는 그 작은 책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지성수 목사님께 매달 보내 달라고 전화로 주문했다. 그 이후 매달 발행되는 '빈들의 소리'를 집에서 받아 볼수 있었다.

 

나는 가끔 살면서 느낀 점을 글로 보냈는데 목사님은 마음에 드셨는지 빈들의 소리에 소개해 주셨다.

 

그러다가 지성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벌써 15년이 지난 일이라 가물거리지만 사정은 이랬다.

 

어느날 아침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괴성이 들렸다. 가보니 나보다 어린 노동자가 위 아래 로울러 작업기계 속으로 팔이 밀려 들어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신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다른 작업자가 얼른 기계를 끄고 롤러 사이를 벌려 팔을 꺼냈다.

 

손바닥부터 팔목까지 근육이 으깨어져 튀어 나오고 뼈가 으스러졌는지 손가락과 손바닥이 흐느적거렸다. 그 기계는 얇은 합판을 두개 포갠 사이에 접착제를 붙이고 압력을 가해 두개의 얇은 합판을 접착하는데 쓰이는 기계였다. 만약 롤러 사이에 끼여 들어가면 양쪽이 고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힘으로 뺄 수가 없다.

 

그 젊은 노동자는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에 대해 알아보니 참 불쌍한 처지였다. 그는 고아였고 다른 친인척도 아무도 없었다. 몇 개월 후 그가 다시 출근을 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현장에서 일을 할 처지가 못되었다. 오른 손가락이 모두 쫙 펴진 채 전혀 구부려지지 않았다.

 

회사는 노동력이 상실된 것을 알고는 내쫓으려 했다.

 

'이 상태로 나가서 뭘 해먹고 산단 말인가'

 

난 그를 돕고 싶었다. 노조와 사측이 협상하여 보상금이 제시되었지만 젊은 나이에 노동력을 상실한 채 작은 보상 금액으로 살 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서울에 계신 지성수 목사님을 찾아 뵈었다. 목사님은 우리 이야기를 들은 후 법률로 해결해보자며 노동문제 전문 변호사님을 소개해 주셨다.

 

우린 목사님이 소개해 준 변호사님을 찾아갔다. 그 변호사는 우리가 준비해간 서류와 우리 이야기를 들은 후 법률 해석과 함께 어찌해야 하는지 길을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그때 기억으론 변호사님이 하신 말씀이 이랬던 거 같다.

 

"이런 경우 회사 안 대로 하는 게 좋을듯 합니다. 산재가 날 경우 장애 등급에 따라 보상금이 주어지는데 의사가 내린 장애 등급 판정이 낮아 법률적 보상이 별로 높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린 별 소득없이 내려오긴 했지만 친절하게 우릴 대해 준 지성수 목사님에 대해 깊은 인상이 남았다. 그 후 난 사느라 바빠 지성수 목사님을 잊고 지냈다.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나곤 했다.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으나 서울에 갈 기회가 있어 갔다가 우연하게 지성수 목사님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 분도 누구에게 전해 들었다며 "지성수 목사님이 오래 전에 외국으로 이민가셨다"고 말해주었다.

 

'이젠 만날 기약이 없는건가?'

 

마음에 남는 분이었고 가까이 지내고 싶은 분이었는데… 아쉬웠다.

 

그런데 며칠 전 '오마이뉴스' 쪽지함을 열어보니 '지성수'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와 있었다.

 

"종합목재 다니던 변창기 맞소? 반갑소. 난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소. 자주 연락합시다."

 

어머나! 지성수? 그 목사님? 나도 무지 반갑다며 답장을 보냈다. 고마운 분, 마음에 뚜렷이 남아있는 이름. 그 지성수 목사님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다시 뵈다니 정말 감개 무량하지 않을수 없었다.

 

시드니에서도 '오마이뉴스'를 보는 분이 있구나 싶어 우리나라를 넘어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지성인들로부터도 '오마이뉴스'가 좋은 연결 매체로 각광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오마이뉴스'가 아닐 수 없다.

 

"오마이뉴스,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에 '오마이뉴스'와 같은 자율 언론이 있다는 게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지성수 목사님은 상당히 지혜롭고 심성이 고우며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 언제나 발벗고 나서는 분으로 기억한다. 시드니로 왜 이민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비정규 인생이라 주장하시며 찬밥신세 인생, 주류로부터 소외된 비정규 인생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고 계신 것 같다. 지성수 목사님에 대한 소식은 카페 http://cafe.daum.net/emptymyself 로 가보면 된다.


태그:#오마이뉴스, #자유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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