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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염원하는 티베트인의 유혈 시위가 발생한 라싸와 중국 내 티베트인 거주 지역엔 여전히 폭풍 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티베트 본토와 중국 성내 티베트인 자치주는 계엄 상황과 다름없는 통제 및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지속되고 있다. 쓰촨성 청두에 나가있는 모종혁 통신원이 현지 분위기와 티베트인의 육성을 전해왔다. [편집자말]
시위대와 특수경찰의 공방전 후 화염에 휩싸인 라싸 거리. 현 티베트 상황은 군부쿠데타에 맞서 항거한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연상케 한다.
 시위대와 특수경찰의 공방전 후 화염에 휩싸인 라싸 거리. 현 티베트 상황은 군부쿠데타에 맞서 항거한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연상케 한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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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거리(民族街)는 삼엄한 중국 공안의 순찰과 검문검색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평소 티베트인과 라마승, 관광객으로 분주하던 민족거리는 적지 않은 상점이 셔터 문을 내린 채 한적했다.

몇몇 라마승이 종교 제기를 사러 오곤 하지만 공안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의식하듯 경직된 표정이었다. 민족거리를 순찰하는 공안은 기자 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을 제지하며 신분증 제시까지 요구했다. 티베트인 학생들의 시위를 염려해서인지 시난(西南)민족대학 후문과 민족거리 사방에는 공안 차량이 진을 치고 있다.

제갈량 사당으로 유명한 우허우츠(武候祠) 맞은편에 위치한 민족거리는 2차선 도로를 따라 시난민족대학 후문까지 걸쳐있는 티베트인의 집중 거주지다. 민족거리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종교제기, 토산품, 장신구, 고산약재 등을 팔거나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는 라마불교사원이 별로 없지만, 칭짱(靑藏)철도 개통 전까지 티베트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쓰촨성 면적은 48.8만㎢으로, 중국 총면적의 5.1%, 남한의 4.9배에 달한다. 2004년 현재 인구는 8724만 명으로, 그 중 4.5%는 티베트인·이(彝)족·창(羌)족 등 소수민족이다.

쓰촨성 동부는 중국 4대 분지이자, 중국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다. 이에 비해 서부는 해발 3500~4000m의 험준한 고원지역으로 인구가 희박하다. 산지와 고원으로 된 쓰촨 서부는 칭짱고원으로 이어지는데, 티베트인이 주로 거주하면서 한족과 전혀 다른 전통·문화·생활방식 등을 유지하고 있다.

간쯔(甘孜)자치주, 아바(阿壩)자치주는 티베트인 밀집거주지로, 쓰촨성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한다. 청두는 티베트 본토와 간쯔·아바로 향하는 길목이자, 티베트인이 중국 각지로 나가는 허브도시다. 금세기 전까지 티베트 수도인 라싸(拉薩)로 향하는 항공노선을 개설한 도시는 청두 밖에 없었다.

민족거리에서 장신구 가게를 운영하는 티베트인 쌍나(여)는 "청두는 티베트인에게 각별한 도시"고 말했다. 라싸 출신은 그는 "칭짱철도 개통 이전 티베트 본토로 들어가는 중국 물자의 대부분은 청두를 통해 들어갔다"면서 "태국·인도 등 남아시아로 출국하려는 티베트인에게 청두는 꼭 거쳐나가야 했던 통로였다"고 전했다.

18일 현재 쓰촨성에서 정식 절차로 티베트에 들어가기란 힘들어졌다. 이번 유혈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청두와 충칭(重慶)에선 하루 각각 6편, 3편의 항공편이 라싸로 향했다. 청두와 충칭은 중국 내 다른 4개 도시와 함께 칭짱철도의 주요 출발지였다. 외국인은 티베트로의 여행허가서 발급 뿐만 아니라 항공권과 기차표의 구입마저 불가능하다.

캄파의 한 사가파 불교학교에서 경전 공부를 하는 라마 수련승들. 이번 티베트 각지에서 일어난 시위는 젊은 라마승과 10, 20대 청년들이 주축을 이뤘다.
 캄파의 한 사가파 불교학교에서 경전 공부를 하는 라마 수련승들. 이번 티베트 각지에서 일어난 시위는 젊은 라마승과 10, 20대 청년들이 주축을 이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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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주동자 색출에 나선 중국 공안의 검거 열풍

17일 중국정부가 밝힌 시위대의 투항 시한이 넘어가면서 라싸는 외견상 평온을 되찾았다. 대테러 진압 임무를 맡기 위해 창설된 중국 특수경찰은 장갑차를 앞세운 채 도시 전체를 완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시위 주동자 검거를 위해 티베트인과 라마승 색출에 나서고 있다. 라싸에 거주하는 천위(가명)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공안이 티베트인 집단 거주지를 집집마다 돌면서 수색하고 있다"면서 "라마사원에서도 젊은 승려들을 잡아가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고 전했다.

쓰촨성 출신 한족인 천위는 "14일 라싸 시내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력시위로 정부청사, 상점, 경찰차량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천은 "10일부터 산발적인 도로 점거시위가 있었지만 평화적인 방식이었다"면서 "특수경찰의 진압방식이 거칠어지면서 시위대는 폭도로 변해 길을 가는 한족도 무차별 구타했다"고 밝혔다.

천은 "시위대의 주축은 라싸 원주민이 아닌 타지에서 온 순례자들이었다"면서 "티베트 서북부 창탕(羌塘)과 쓰촨 서북부 캄파(康巴) 출신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은 "티베트에서도 산세가 거칠고 생존환경이 열악한 지방 출신인데다 라마불교 원리주의에 심취한 이들이라 시위 양상도 격렬했다"고 전했다.

소강상태에 빠진 라싸와 달리 중국 내 티베트인 거주 지역에선 동조시위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16일 쓰촨성 아바자치주에서 티베트 승려와 주민 1000여 명이 시위를 일으켜 공안과 충돌했다. 아바자치주는 간쯔자치주와 더불어 대표적인 캄파 티베트 지역이다.

간쑤(甘肅)성 샤허(夏河)의 라마불교 3대 학교 라부랑사(拉卜楞寺)에서 수련하는 라마승 3000~4000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자유티베트캠페인(FTC)이 발표했다. 자유티베트캠페인은 "마추(瑪曲)에서도 시위대가 가두시위를 벌이며 정부 청사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고 전했다.

17일 밤에는 베이징시 중앙민족대학 국제교육대 건물 앞마당에서 티베트인 학생 50~60명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공안의 포위망 속에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벌이다 기숙사로 돌아갔다. 중국 수도의 한복판에서 티베트인의 연좌시위를 벌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간쯔자치주 써다(色達)현에 거주하는 한 티베트인은 기자에게 "티베트 최대 불교학교인 라롱가르(五明佛學院)는 타지에서 몰려온 인민해방군으로 포위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3만 명이 넘는 라마승이 거주하는 라룽가르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충격파가 커서인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 때문에 5월 예정인 청두-간쯔 간 항공편도 예정대로 개통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윈난성 샹글리라의 간덴 쑴첼링사(松贊林寺). 파괴된 현장 위에 현재의 본당과 사찰을 중건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윈난성 샹글리라의 간덴 쑴첼링사(松贊林寺). 파괴된 현장 위에 현재의 본당과 사찰을 중건한 것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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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정책, 한족이주, 빈부격차 등에 티베트인 불만 폭발

1989년 1월 라마불교의 2인자인 판첸 라마 10세가 입적한 뒤 라싸에서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일어났었다. 20년 만에 최악의 유혈시위가 다시 발생한 데에는 중국정부의 지속적인 동화정책과 한족이주정책, 서부대개발 시행과 칭짱철도 개통 후 경제발전 속에 커지는 빈부격차 등에 대한 티베트인의 불만이 잠복해있기 때문이다.

중국 서남부와 인도·네팔 북쪽에 위치한 티베트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를 포함, 영토 대부분이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7세기 초 당나라와 인도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이래 티베트 전통신앙과 융합한 라마불교는 티베트인의 정신세계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달라이 라마는 라마불교 지도자이자 세속세계의 최고 지도자로 티베트를 이끌어왔다. 라마불교는 '티베트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독특한 철학체계를 지니고 있고 언어·풍습·사회체계 등도 중국과 전혀 다르다.

중국은 티베트가 원나라와 군사적, 물질적 지원을 받는 '최왼' 관계를 맺은 사실을 근거로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티베트 망명정부는 1720년 청나라의 무력 침공을 받아 중국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긴 했지만, 1913년 북인도 삼라에서 맺은 중-영국-티베트 간의 조약으로 독립국가의 지위를 얻었음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 청나라조차 티베트를 점령한 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만 알고 청조는 모른다'는 최소한의 간섭만을 200년 가까이 해왔다. 1951년 티베트 전역을 강제 점령한 사회주의정권도 달라이 라마 14세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부위원장에 앉히고, 라마승과 세습귀족의 신분을 보장하는 등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

1956년 중국의 전면적인 사회개조운동과 반우파투쟁은 티베트에도 불어 닥쳤다. 라마승은 귀족과 함께 봉건체제의 원흉이 됐다. 전통적인 사회질서가 붕괴되면서 달라이 라마의 지위도 흔들렸다. 1959년 3월 대규모 무장독립투쟁이 발발하고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하면서 중국의 티베트 정책은 강경책으로 일관됐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티베트는 종교와 문화 기반이 철저히 파괴됐다. 문혁 전 6500여 개에 달하던 라마사원은 10년 후 13개만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티베트 본토와 중국 내 티베트 거주지에 세워진 불교사찰은 대부분 1980~90년대에 중건된 것이다. 중국은 수십만 명에 달했던 라마승을 강제로 파계시켰고, 이를 거부하는 승려는 투옥시키거나 살해했다.

개혁개방정책 후 중국은 라마사원을 재건하고 티베트 귀족과 라마승을 복권했다. 중국에 협력한 귀족층과 일부 승려, 군경에 투신한 농노 출신은 전인대를 비롯해 정관계에 진출하면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한족을 티베트 본토로 이주시키는 중국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줄이어 라싸 인구의 절반은 한족으로 채워진 상태다.

중국정부가 내세운 판첸 라마 11세 기알첸 노르부가 참석한 윈난성의 한 라마불교 법회. 치에키 니마를 대신한 그는 중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내세운 판첸 라마 11세 기알첸 노르부가 참석한 윈난성의 한 라마불교 법회. 치에키 니마를 대신한 그는 중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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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성과는 한족 차지... 달라이 라마 15세, 치에키 니마 꼴 난다"

오늘날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 변모한 주자이거우(九寨溝) 일대 라마사원 주지인 딴진은 "관광산업 진흥으로 티베트인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소수에 해당할 뿐"이라며 "물질문명이 티베트인의 영혼을 흔드는데 지역개발의 성과는 외지 한족들이 다 차지하니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반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윈난성 샹글리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공부자시(가명)도 "중국이 티베트를 해방시키고 가난한 티베트인에게 고도의 문명생활을 가져다줬다고 하지만 이 땅에서 거둬간 자원과 재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고 비판했다.

공부자시는 "중국이 도로·철도·공항 등 인프라 건설에 열을 올리는 것은 개발의 미명을 앞세워 약탈의 도구를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며 "중국정부에 협력하는 티베트인을 늘리기 위해 여러 선심정책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난민족대학의 티베트인 교수는 "달라이 라마 사후가 문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벌써 희수(77세)를 넘긴 현 달라이 라마 14세가 죽으면 중국정부는 다음 15세를 독자적으로 임명할 것"이라며 "중국정부는 자신들이 내세운 달라이 라마에 위한 대대적인 선전선동을 벌여 제2의 기알첸 노르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 중국은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 10세의 환생으로 지목한 치에키 니마를 거부하고 기알첸 노르부(18)를 판첸 라마 11세로 내세웠다. 중국정부의 관리 속에 자라난 기알첸 노르부는 2005년 말부터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6년 세계불교포럼에서 "중국은 불교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중국정부를 옹호하던 기알첸 노르부는 16일 시위 사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기알첸 노르부는 "이번 폭동이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이자 불교 정신에도 어긋난 것"이라며 "국가의 화합을 저해하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범죄를 비난한다"고 말했다.

딴진은 "서구언론의 보도처럼 티베트 민중이 기알첸 노르부를 가짜 판첸 라마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절반의 사실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언론매체의 왜곡 보도와 지속적인 사상교육 덕분에 기알첸 노르부는 판첸 라마 11세로 일정한 지위와 존경을 얻었다"면서 "치에키 니마 문제는 라마승도 극소수만 그 존재를 알 뿐"이라 말했다.

청두에서는 인민해방군 청두군구에 속한 공수부대가 진압작전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티베트 분리독립의 움직임을 완전히 꺾을 기세다. 문제는 티베트인의 투쟁 의지까지 잠재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폭압적인 동화정책과 역사왜곡이 지속되고 빈부격차, 청년실업, 민족이질감 등이 사회문제에 눈을 감는다면 중국정부의 목표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포탈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벌이는 한 티베트 여성. 티베트인은 하루빨리 달라이 라마가 돌아와 지금의 혼란을 종식하길 염원하고 있다.
 포탈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벌이는 한 티베트 여성. 티베트인은 하루빨리 달라이 라마가 돌아와 지금의 혼란을 종식하길 염원하고 있다.
ⓒ 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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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티베트, #독립시위, #달라이 라마, #동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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