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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친정 엄마였다. 별일 없느냐고 하신다.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데, 꼭 엄마 전화를 받고 나서야 후회한다.

 

거실에서 베란다 쪽에 놓여있는 진한 회색빛의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꽤 오래 우리 식구 곁에 있던 물건이다. 더구나 이 전화기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건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였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시숙이 하는 한약방에서 우리 가족이 살던 때가 있었다. 젖을 갓 뗀 작은애를 업고 한약방에 들어섰을 때, 여기 저기 널려있던 내 살림살이가 얼마나 서럽던지 나는 한약 냄새를 핑계로 밖에 나와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한약방 옆 건물 지하 다방이었는데 그 컴컴하고 냄새 나는 계단 구석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한약방에서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시숙의 일을 거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가게 청소와 약물을 내린 약통을 닦아주는 일이었다. 전화로 주문을 받고 손님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시숙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통에 붙어 있었다.

 

 

시집간 딸이 시숙네 가게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던 친정엄마는 속만 탔다. 그래서 사돈(시숙)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시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가 하시는 말씀은 늘 한결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네가 나이 먹으면 그게 다 약이겠거니 하고 살아라."

 

시간이 지나 큰애 초등학교 입학으로 우린 시숙의 가게에서 나왔다. 어렵고도 어려운 관계가 시숙과 제수씨라는데 잘 참고 견딘 것 같았다. 어쩌면 시숙이 철없는 제수씨를 더 참아주었을 것이다. 그때 한약방에서 쓰던 전화기가 어떻게 내 살림에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기어 다니던 작은애가 이제 중학생이고 큰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숙이 쓰던 투박하고 촌스런 전화기를 볼 때마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오늘을 감사하게 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려움을 함께 겪은 전화기는 오늘도 우리 식구들의 소식통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태그:#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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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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