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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 십장생도전 오프닝행사 참석한 김남조시인 등 귀빈들. 아래는 오승우화백의 인사말을 하는 모습
 오승우 십장생도전 오프닝행사 참석한 김남조시인 등 귀빈들. 아래는 오승우화백의 인사말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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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3월 10일까지 오승우(78·예술원회원) 화백의 십장생도(十長生圖)전이 열린다. 십장생도는 우리 고유의 장르화로 한국인의 마음과 이상을 품은 작품이다. 이런 그림이 그의 현란한 색채와 변화무쌍한 구도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이번 전을 보면서 예술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느낀다. 예술의 경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도 생각하게 된다. 뉴욕 필의 평양공연이 로린 마젤과 그 단원은 물론 남북한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듯이 그의 작품도 그렇다. 마치 선경(仙景)의 세계를 보는 듯하고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놀랍게도 100호 크기의 대작 십장생도 100여 점이 그 넓은 한가람 미술관을 가득 채웠다. 작품의 일련번호를 보니 아직 반은 전시가 안 된 셈이다.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주고 남과 북 그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이런 그림이라면 서울에서 전시되지 않은 작품은 평양에서 전시회가 되었다면 참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14시간씩 20년 하면 준천재 된다고..."

'십장생도(5)' 캔버스에 유화 162×162cm 2006. 우리 마음속 이상향을 이렇게 오색찬란한 색채와 정겨운 형상으로 그릴 수 있다니 놀랍다
 '십장생도(5)' 캔버스에 유화 162×162cm 2006. 우리 마음속 이상향을 이렇게 오색찬란한 색채와 정겨운 형상으로 그릴 수 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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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행사엔 초대받은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중에는 그의 그림을 보고 전율을 느낀 김남조 시인의 축시 낭송도 있었고, 오광수 미술평론가의 농축된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아트라는 영어의 뜻이 그렇듯 미술이 왜 예술의 예술인지 알 듯싶다.

작가의 인사말 중 인상적인 한 토막을 여기 옮긴다.

"일본의 한 평론가가 '예술은 천재가 하는 것이지만 천재가 아니더라도 하루도 14시간씩 20년을 하면 준천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난 그 말만 믿고 지금까지 그림만 열심히 그렸다."

그는 그럴 시간도 없었겠지만 실제로 골프나 낚시나 바둑이나 화투 등을 전혀 못한다.

'십장생도(30)'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3. 이런 그림을 보고 시를 짓고 싶지 않는 시인이 또 있을까
 '십장생도(30)' 캔버스에 유화 162×130cm 2003. 이런 그림을 보고 시를 짓고 싶지 않는 시인이 또 있을까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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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그의 십장생도를 둘러보면서 말이 없다. 그저 그림을 바라볼 뿐이다. 사실 그림 같은 조형언어를 문자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 아니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시인 김남조는 그의 그림에 심취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 안개, 아지랑이부터 들어오고/ 하늘, 산, 바위, 소나무, 대나무/ 학과 사슴, 물과 거북이 뒤따르고/ 해와 달, 구름들 들어와 저마다 편히 앉는다… 해는 아련한 복사꽃 빛깔로/ 달은 청과일빛 푸른 색조로/ 사슴은 햇병아리의 노란색, 거북은 수묵빛으로… 전통과 현대의 두 혈액에서 뽑은/ 몽상의 축제여라/ 미학의 극치여라 ('오승우의 십장생' 중)

평생, 한국적인 미 추구

'십장생도(35)'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3. 이 그림은 더 샤갈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십장생도(35)'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3. 이 그림은 더 샤갈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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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 긴 여정을 거쳤다. 70년대 파리 체류 및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두루 여행했고, 또한 여러 실험과 탐색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속놀이, 한국의 산과 사찰, 고(古)건축물 등을 주제로 10년 간격으로 그려왔다. 2천 년에 들어와선 십장생도로 돌아왔다. 그런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건 바로 '한국적인 미'이다.

사실 그는 화가로서 혹독한 시련기도 있었다. 선천적인 망막기형으로 시력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독일에 사는 여동생의 도움으로 7차례의 눈 수술 끝에 다시 그림을 그리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짙은 안경을 쓰는 건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53세 때에는 심장질환으로 그림을 영영 못 그리나 싶었으나 의사의 충고에 따라 즐겨피우던 담배도 끊고 아침마다 1킬로미터씩 수영을 하며 건강을 다져왔다. 이제 팔순이 다 된 그의 모습은 가까이 뵈니 믿기 힘들 정도로 힘차고 창작욕으로 넘쳐 있다.

'십장생도(46)' 캔버스에 유화 145×145cm 2004. '불로초의 향기에 취한 사슴'이 보이는 이런 이미지는 한국미술의 원형인지 모른다
 '십장생도(46)' 캔버스에 유화 145×145cm 2004. '불로초의 향기에 취한 사슴'이 보이는 이런 이미지는 한국미술의 원형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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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한국적 인상파를 이끌어낸 거장 오지호(1905~1982, 예술원회원) 화백, 그의 동생은 오승윤(1939~2006) 화백,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역시 동양화가요 조각가다. 우리나라에 이런 미술명문가는 드물 것이다.

그의 부친이 자녀들에게 남긴 유산은 그림의 기법이 아니라 먼저 독서와 견문을 통해 지적 교양을 쌓고 폭넓은 인문적 인간이 되라는 점을 강조하셨고, 특이한 점은 한문 공부를 강조하셨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을 실제로 보면 더 큰 감동이 온다. 도록에선 불길처럼 타오르는 호흡과 거친 숨소리를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흔히 그림을 무생물의 정신화라고도 하지만 그의 그림이 주는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맛을 보려면 직접 봐야 더 좋을 것이다.

그의 현대판 십장생도가 재미있는 건 구상화적 요소와 추상화적 형태가 적절히 뒤섞여 있기 때문이고, 자유분방한 한국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되어 우리 눈을 휘둥그러지게 할 정도로 구성이나 색채에서 광풍처럼 질주하는 기운 생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자연친화 속에 추구한 이상세계

'십장생도(138)'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7. 작가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거침없는 붓질에 일체가 춤추는 듯하다
 '십장생도(138)'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7. 작가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거침없는 붓질에 일체가 춤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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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색조는 서양미술사에서도 최전위였던 프랑스의 야수파나 독일의 표현파 못지 않다. 노랑, 빨강, 파랑, 주황, 보라가 환상적으로 조합되어 세련미가 넘친다. 특히 다양한 보랏빛이 압권이다. 따뜻한 색감은 우리의 정서와 잘 맞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좋다.

학과 사슴과 거북이, 산과 해와 달, 불로초와 소나무 등 불로장생의 이미지가 담긴 10개의 아이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배치하여 그림마다 다른 특색을 살렸다. 개울처럼 꾸불꾸불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삼각형 내지 사각형의 산등에는
꿈틀대는 기운이 철철 넘친다.

이번 전 팸플릿에 '십장생도'를 영어로 직역하여 'Ten symbols of longevity'라고 번역했지만 실은 그냥 오래 산다는 수적 개념이나 잘 산다는 물적 개념 그 이상으로 자연친화 속에 질적인 삶의 깊이와 정신적 높이를 추구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십장생도(124)'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7
 '십장생도(124)' 캔버스에 유화 112×112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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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너무 물질숭배에 빠져 자신을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살고 있는데 그의 십장생도는 바로 이런 관객들에게 자연과 소통도 시도해 보면서 잃어버린 꿈의 회복을 통해 삶의 기쁨도 되찾고 진정한 행복도 뒤쫓아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오승우 화백의 가장 큰 공적을 들라면 뭐니뭐니해도 조선시대에 꽃피운 고품격 민화인 십장생도를 독창적인 관점으로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환상적이고 풍부한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빼어난 한국적 조형미를 창조적으로 현대적으로 계승했다는 점이리라.

'십장생도(36)' 캔버스에 유화 145×145cm 2003. 푸른 산과 바다, 소나무와 학과 사슴과 거북이가 공존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이보다 더하랴
 '십장생도(36)' 캔버스에 유화 145×145cm 2003. 푸른 산과 바다, 소나무와 학과 사슴과 거북이가 공존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이보다 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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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그의 그림에 대한 총괄적 평가를 미술평론가 오광수의 글로 대신할까 한다.

"십장생도는 역시 거대한 스케일과 장대한 구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동양의 원형에서 보여주었던 넘치는 활력과 강력한 원색의 조화로 인해 화면은 감동적인 물결로 넘쳐난다. 붓질이 힘차면서도 때론 거칠다. 경쾌한 속도감이 이미지를 부단히 앞질러 화면을 누빈다. 생을 노래 부르는 환희의 가락이 간단없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덧붙이는 글 | [전시안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화번호 (02)580-1300
[작가소개] 오승우 홈페이지 http://www.kcaf.or.kr/art500/ohseungwoo/index.htm
1930 전남 동북출생 조선대예술과 졸업 1957~1960 국전6,7,8,9회 특선 1961~1980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1974 도불 1993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피선 1998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수상. 2000 명예철학박사수여(원광대학교)



태그:#오승우, #십장생도, #오지호 , #오승윤,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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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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