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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간에서 만난 사람들 - 꿈을 찾는 사람들

방안에 그리고 내 몸에 밤이 딱지처럼 달라붙어있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 순간 비로소 아침이 온다. 신선한 공기, 청명한 새들의 지저귐, 수묵화 같은 히말라야의 풍경과 고요, 이런 것들이 아침이다. 이런 아침을 창가에 앉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즈음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당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힘은 없지만,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힘이 있습니다.”           -<인생수업>에서
         

샌디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옆방에 샌디는 호주에서 온 아름다운 아가씨. 그녀는 이곳에 혼자 체류한 지 3개월째로 인도춤에 매료되어 매일 박수나트 쪽으로 춤 레슨 받으러 다니고 있다. 그녀는 베란다에 나와 춤 연습을 한다.  치치엔의 파파는 하늘거리는 인도의상에 버드나무 잎처럼 늘어진 머플러를 걸치고 춤추는 그녀의 춤사위가 가볍게 나는 나비 같다고 했다. 약간 느릿한 4분의 3박의 춤을 추는 동안 온몸에서 흐르는 곡선이 부드럽게 순간순간 달라지는데 비해, 손끝과 발끝에서 마지막으로 강렬하게 휘어지는 순간적인 절도와 힘은 매혹적이었다.

무용을 전공한 학생도 아니라는 샌디. 그녀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인도춤이 좋아서 하는 거라 했다. 춤추고 있을 때 샌디는 황홀한 듯 무척 행복해보였다. 돌아가서 여기에서 배운 인도 춤을 써먹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노트에 빼곡히 적힌 힌디어와 박자 표시들. 자주 해질 무렵이면 이곳에 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노트를 악보삼아 흥얼거리곤 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 노트가 너덜너덜해질 무렵 그녀는 이곳을 떠나리라.

빠산

샹글리라에서 모모(만두)와 짜이 한 잔을 주문하고 산비탈 아래를 내려다보며 햇살을 즐기는 동안 짜이가 먼저 나왔다. 쌉쌀하고 텁텁하다. 빠산의 짜이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는데. 돌아가는 길에 잠시 빠산을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칼상이 기념품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혼자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지금 나처럼.

빠산은 집을 덩그러이 지키고 있었다.

“빠산! 빠산은 뭐가 되고 싶어요? 꿈같은 거?”
“글쎄요...으음...그런 거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하지만,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요? 무슨 요리?”
“티벳요리도 좋아하지만, 인도요리도 좋아요...”
“그렇구나. 이곳 티파에서도 요리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가 뭘....”


하며 연신 도리질한다. 하지만 그녀는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음식을 지을 줄 안다. 아마 그녀는 뛰어난 요리사가 되지 못할지라도 곁에 누구라도 배고프게 하지 않을 것이고, 지나는 뜨내기 같은 사람에게도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줄 것을 안다. 늘 수줍어하는 그녀의 천진한 모습이 왜 이리 좋은지.. 나도 모르게 그녀가 자꾸 좋아진다.

"참, 빠산의 짜이를 마시고 싶어요... 한 잔 줄래요?“

아만다

아만다는 거구의 젊은 미혼 미국여성이다. 한국인 여행자들과 친하게 지냈었는지 '예은‘이라는 한국이름도 있었다. 현재 그녀는 티파로드의 한 창고를 빌려서 무료영어강습(9:30~10:30am)을 열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지 3년째라고 하는데, 물론 처음엔 그녀 역시 평범한 여행자였다. 그러다 1년, 2년, 3년째 지내다보니 정착이란 단어가 자연스러워지고 말았단다. 

강습소에는 티벳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티벳승들도 격 없이 섞여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승과 속이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섞여있는지. 이곳 ‘스님들은 부처 닮은 중생 같고, 이곳 중생들은 속으로 귀의한 스님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아만다에게는 모두 사랑스럽고 순진한 학생들일 뿐이다.

영어수업은 급하지도 늘어지지도 않고 웃음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어제는 borrow란 동사를 배웠던 모양이다. 숙제가 있었는데, 뭔가를 직접 빌려보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숙제를 해온 학생들이 도무지 없다. 다소 실망한 아만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곤 질문을 던졌다.

그 카메라 빌린 거예요?"
"넷!" 그는 자신만만하게 답한다.
“Oh! 좋아욧! 굳! 자, 질문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빌렸습니까?"
"나는 카메라를 빌렸습니다."
"굳! 그 카메라는 누구의 것입니까?"
"나요!"
"넷? 이것이 당신의 카메라예요?"
"넷!"
“저런!....(잠시 침묵) 풋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에 맞춰 모두들 까르르 한바탕 웃고 말았다. 티벳남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뭘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았다는 듯이 머쓱해져 고개가 쏙 들어간다. 비록 이런 식의 대화 수업이지만, 아만다는 이곳 티벳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나보다. 그녀는 이곳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언어를 넣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수업하는 동안 그녀의 표정은 무척 밝고 행복해보였다.

 * 맥간에서 무료영어강습을 받을 수 있는 곳
   도깨비식당 맞은 편에 무료영어강습소
   템플로드 ‘라’ 유료영어강습소(저렴하고 수업의 질이 좋다고 소문나있음.)
 
탱화 화가 Tashi

티파로드를 거의 다 빠져나올 때 쯤, 집들이 들어서있는 길가에 광고지 하나가 눈을 끈다.  'Shanka Painting?' 무슨 그림을 가르쳐준다는 걸까? 호기심에 찾아올라갔다. 탱화(불화)였다. 맥간은 거리에 붙여있는 광고지만 읽어보아도 이곳에서 무얼할 지 고민하지 않고도 할 만한 일들을 찾을 수 있다. Indian cooking lesson, Indian Dancing lesson, Massage, Music Concert, Yoga, Meditation Class. English Class 등등.

비좁은 방에 한 티벳 젊은이가 탱화를 그리고 있다. 벽에는 대형 탱화들이 걸려있었는데, 이젤에 제작 중인 탱화가 눈에 띄었다. 연꽃위에 부처상을 그릴 예정이라는데 사방팔방 연필선이 정교하게 분할되어있는 일종의 설계도면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 선들의 정교한 세밀함엔 누구나 질려버릴 정도! 그의 그림들은 색으로 가기 전에 이미 선 하나 하나에 정성과 엄격함으로 지글지글 달궈져 있었다. 며칠 배워서 그림 한 점 그린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다.

Tashi 라는 이름의 이 젊은 탱화 화가는 자신의 탱화가 특집으로 소개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티벳어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티벳불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티벳인들은 삶의 세 가지 목표가 있다했다. 깨어나기(To be englightmental), 열반(Nivana), 즉 어떤 집착도 없고, 부정적인 마음 상태에서 벗어난 열반을 성취하는 것. 부처님의 법(Dharma 다르마)을 실천할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설명 같았다. 그는 여러 번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을 꼭 읽어보라 했다.

화가인 그에게서 세련된 예술가의 위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의 화가답게 궁색한 살림살이가 엿보였고, 지나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정성을 읽었다. 그의 꿈은 자비로운 부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타시가 ‘그린 카라’의 사진 한 장을 샀다.

록빠 앞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 혜원씨

록빠(Rogpa)를 찾아 나섰다. 찾는 길이 쉽지 않았다. 도중에 한 한국여성을 만났는데, 록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녀가 여행 중인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여행 왔다가 티벳남자와 사랑에 빠진 후 결혼해서 다음달이면 아기엄마가 된단다.

이곳에서는 저와 같이 티벳남자와 결혼해서 커플이 제법 있어요.”
“지내기는 어때요?”
“네...옷장사를 하는데요, 잘 안돼서 그게 걱정이지만, 궁핍하단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이곳의 풍습을 사랑해요. 그리고, 저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요. 이곳을 저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드는 것이 제 꿈이죠.”
하며 연신 아랫배를 쓰담으며 행복해했다.

그녀는 시간 나는 데로 록빠에서 일을 돕는다고 한다. 록빠는 티벳어로서, ‘trusted friends and helpers'의 의미란다. 2004년에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후 계속 한국인이 운영하는 티벳 아동 탁아소라고. 티벳 난민들인 이들 부모들이 일터로 나가있는 동안 무료로 맡아서 아기들을 돌보아주는 일을 한단다.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난민이 유입해오는 상황에서 우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인데, 막상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이 아기들을 맘 편히 맡길 곳이 당장 시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라고.

록빠의 궁극의 목표는 단순한 자선행위가 아니라 티벳탄들이 문화적 자존과 경제적 자립, 정치적 자치능력을 키우는데 일조하는 데 있다고 한다. 만일 록빠에서 아기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원한다면 최소 15일간 아기를 맡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게 되면 아기에게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란다. 아기를 돌보는 것 이외 록빠를 통해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        
· 의류, 아기용품, 장난감, 후원금 등 록빠에서 필요한 물품을 기증할 수 있다.
· 매년 록빠에서 주최하는 후원금 모집을 위한 축제준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그밖에 티벳난민들의 실정을 주변에 알리는 홍보일 역시 중요하다.


rogpa2004@yahoo.com / www.rogpa.com
ph:+91-09816659549

최경민씨

샹글리라에 들어섰다. 변함없는 냄새, 구석에 앉아 있는데 한 한국인이 동석을 청한다. 최경민씨 남인도에서 워크캠프(www.iwo.co.kr)에서 그곳 참가하여 원주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후 계속 북진해서 이곳까지 올라온 대학생이었다.

“올 초 군에서 제대한 후 진로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어요. 교사가 될지, 아니면 일반 회사에 취직해야할지..이번에 여행을 떠나온 것도 실은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워크캠프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그곳에서 경민씨 자신은 행복했나요?”
“반반이었어요. 아이들과 지내는 건 좋았는데 제가 가진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음엔 뭔가 제 나름의 캐릭터를 준비해서 만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럼,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면 돼요. 어떻게 만나느냐는 다음 문제라고 봐요.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그것이 가장 큰 동기가 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훌륭한 교사는 없을 거에요. 아이들과 행복하게 만나고 싶은 거요.”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는데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요. 그분은 늘 지식보단 당신의 재밌는 경험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죠. 참 재밌었어요. 너희들은 경험을 통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잇다는 걸 강조하셨댔죠. 그래서 저도 교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그 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가끔 다른 선생님들이 그러셨어요. 너희 담임선생님께서 또 교장실로 불려가셨다고. 그럼 저희들은 모두 숙연해지고, 기분이 짠했어요.”

“경민씨는 교사로서 자질이 충분해요. 필 받아서 이곳에 오셨댔죠? 한 번도 일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곳에 오고 싶은 필을 받아 일정을 바꾼 거라고요. 그렇다면 마음속에 필을 받는 안테나가 녹슬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네요. 또 자신에게 솔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잇은 의지도 있구요.”
“아! 네 그런 거 같아요..하하..”
“암튼 이번 여행을 통해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기 바래요..그런데요..꼭 이번 여행 중에 해결되지 않으면 또 어때요? 계속 생각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확신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 필을 받는 안테나만 지금처럼 잘만 작동한다면 말이예요..”

성진 비구니 스님

 “괜찮으면 우리 걸어갈까요?”

우리는 전날, 아침에 티벳도서관에서 열리는 설법에 함께 참석하기로 했었다. 티벳도서관까지는 걸어 40여분 거리. 스님은 티벳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티벳어강좌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티파로드를 벗어나니 한적한 시골 산길이다. 흙냄새, 풀냄새, 바람 냄새가 친근하다.

“스님, 요즘 한국비구니스님들이 이곳에 많이들 오시나봐요?”

“네, 그렇죠. 단순관광은 아니구요. 공부하기 위해서죠. 나 역시 이 나이에 3년간이나 외국어를 배워 언제 써먹겠나? 이번 여행하면서 내내 생각하고 있었어요. 묻고 또 물어도 왠지 자신이 없고 구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회의스런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어제 길에서 이곳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생각했죠. 그리곤 결심했어요. 비록 지금 곧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3년간 티벳어를 익히고 티벳불교를 배워서 부처님의 말씀이 쓰여진 한권의 경전이라도 내 힘으로 직접 읽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쁨이 아닐까?  티벳어는 산스크리트어의 직계어 쯤 돼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언어 중 산스크리트어에 제일 가까운 언어인 셈이예요. 다른 사람들의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읽어볼 수 있단 것만도 은총이죠.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더군요.”

“네...그러셨군요. 좋은 말씀이세요..제게도 이제는 몸이 부치니깐, 생각의 힘이 중요한 때인 거 같아요.”
“혼자 여행 떠나왔을 땐 뭔가가 있었을 거 같은데.”
“오해받지 않고 흔한 말로 표현하자면 오춘기? 하하..”
“오춘기보단 사추기란 말이 낫겠어요..하하...”

“思秋期요? 정말 그 말이 맞아요...앞으로 이 단어를 자주 써먹어야겠어요..예전에 한 여선생님께서 여성들의 ‘폐경’을 ‘완경’이란 말로 바꾸셔서 방송에 인터뷰까지 하신 분이 있었어요.”
"으음....그럴 듯해요...그분 지금 뭐하세요?“
“살사댄스 추세요..하하..물론 아직 교단을 떠나시진 않았지만요..”
“살사댄스? 하하하...”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으니 스님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도 자연이 없었어요. 스님 말씀 들으면 참 재미나요. 그리고 몰랐던 건데요. 아, 스님들도 중생들처럼 인간적인 고민을 참 많이 하시는구나. 라는 걸 알았어요. 어제만 첨 뵈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좀 대하기 어려웠어요..스님들의 생각은 어떤지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하하....이제는 좀 만만해보여요?”
“하하..스님들은 이런 말투는 쓰지 않으실 줄 알았거등요...하하...”
  
우리 앞쪽으로 두 남녀가 지나가는데 여자 쪽에서만 스님을 향해 눈인사를 보내온다.

“저 가시네는 남정네를 너무 자주 바꾸고 있어. 국적도 다양하네. 나랑 여행 코스가 같은 가 봐요. 다음엔 물어봐야겠어. 벌써 몇 번째 만나는 건지 모르겄네. 이젠 저도 모른 척 할 수 없어 저리 인사를 하는 게지....하하하..”

뭐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스님이셨다.

어느 티벳 아낙

티벳 아낙들은 모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에, 짙은 검은색 머리를 따서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올림머리에, 앞치마를 두른다. 결혼할 때 예물품목으로 꼭 끼는 것이 이 앞치마란다. 칼상은 남편의 유일한 예물이었던 가장자리가 곱게 수놓아진 이젠 세월 탓에 많이 낡은 앞치마를 보여주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아낙들은 아침에 티벳빵과 거리만두를 팔거나 주로 거리노점으로 악세서리를 만들어 그 자리에서 파는 일을 한다. 거리가 작업장이자 매장이고 친구와 수다 떠는 놀이터이자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열린 문인 셈이다. 그네들은 앉아서 노상 손을 움직이면서 지나는 인기척을 느끼면 가끔 고개를 들어 미소 짓는다. 한번은 멈춰서 작업하는 것을 들여다보니 씩 웃으며 살펴보기 좋게 자세를 바꿔주는데 그 작은 배려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목걸이를 하나 사고 싶어 가게와 노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보석류는 워낙에 비싼 데다 걸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러워 천연 돌에 눈이 갔다. 돌들의 종류, 모양 크기도 각양각색이었지만 저마다 금속장식들이 지나치게 파고들어와 있어 한참을 기웃거려보지만 선뜻 내 것이란 느낌의 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조그마한 가게에 파란색 돌 하나가 맘에 들었다. 문제는 돌에 고리가 끼워져 있지만 목걸이 줄이 없었다. 아저씨가 샤크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사크라에 대한 두꺼운 책을 꺼내 보여주셨다.

‘영석씨에게서 사크라에 대해 이야길 들었었는데...재밌네..’

인도사람들은 돌도 그 빛깔에 따라 특정한 에너지와 통한다고 생각해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라는 뜻인 차크라Chakra는 생명에너지가 모이는 7곳을 의미한답니다. 신체 아래 부분 부터 순서대로 제1차크라 골반(근본), 자궁(자애, 생명), 배꼽, 가슴(늙지 않음, 건강), 목(순수), 이마(권위, 무한한 힘), 그리고 제7차크라인 정수리(천개의 꽃잎)가 그것인데요...각각 무지개 빛과 대응해요. 사람마다 특히 에너지가 집중되는 부위가 다 달라요..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가슴에, 어떤 사람은 단전에 특히 에너지가 세다든가 하는 식이죠. 그래서 인도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에너지와 통하는 색깔의 돌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좋다고 믿는다는군요. 시내 내려가시면 맘에 드는 돌로 된 목걸이를 사서 다녀보세요.”

200루피에 사서 손에 꼭 쥐고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히죽이죽 좋아라하며 손바닥에 돌을 들고 다니는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노점을 하는 한 티벳여인이었다.

“이리 내 보우. 어디에서 왔수? 줄이 없네...이렇게 만들어 줄테니 하고 다닐라우? 코레아?” “공짜로요?”
“허허..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수? 내가 선행을 하면 언젠가 그 업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거라우. 코레아에 선행한 의미로다 오늘 하루 잘 지냈다 위로 할라우..”
“하지만...당장엔...장사도 잘 안돼셨다면서요?”
“티벳사람들은 오늘 하루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우.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라네....허허..”


짙은 갈색끈으로 엮어서 그 자리에서 목걸이 줄을 만들어 걸어준다. 그리고, 이제 저녁때가 되었으니 오늘 장사를 접어야겠다며 허헛한 웃음을 짓는다. 이 파란돌 샤크라 목걸이를 여행 내내 목에 걸고 다녔다.
 
김영석씨

박수나트 근처라 해서 잠시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한참을 산길을 따라 걷는 사이 어떻게 왔는지 되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동화에 나오는 깊은 산 속 통나무집 같은 아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나왔다. ‘닉의 이탈리안 키친’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초록과 붉은색 무늬가 새겨진 커튼이 드리워져있어 크리스마스의 흥을 내면서, 촛불모양의 전등불빛이 구석구석 그늘 속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어 실내분위기가 아늑하다.

“사실 저는 목사입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봐 사회사업가라고 소개해버리고 말죠. 이 전에 소샬 워커였으니 완전히 거짓은 아니지만요..”
“아! 그러셨군요?”
“모든 종교는 진리나 절대자에 다가가는 a way라고 생각해요...종교인이 자신이 선택한 길만이 진리하고 생각하고 the way를 고집하기 때문에 배타적이 되고 말죠. 사람의 생각을 사상을 가두는 종교는 더 이상 올바른 종교일 수 없다는 생각이예요...어떤 종교이든 그에 충실하다보면 궁극에 가서 서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개신교목사님이 인도여행을 하시며 요가를 하시고 비파산하명상도 하실 거고...재밌어요...깨잖아요..개념을요......”


체크무늬 테이블보 천조각의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한 물을 마시니 차갑게 떠도는 빗소리도 저만치 물러가는 듯했다. 비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비가 게인 그 자리에 오랜만에 햇살이 노란 물감처럼 번져간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저 역시 그렇고요..저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모든 일은 제가 예상한 데로 이뤄져야하고, 그것을 위해 늘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해지죠...그것도 일종의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인도여행은, 제가 가진 그런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얻기 위해서였죠. 인도여행은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잖아요..그런 점에서 인도는 제겐 좋은 기회의 땅이 되는 거죠...특히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책임져야하는 가족들의 안전과 함께 말이죠....네..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서 두려움과 부딪히고 그걸 이겨가는 힘과 유연함을 키우고 있어요.....하하...”

그리고...

안개비 자욱한 게스트하우스 앞에 서있다. 빗물이 고여 군데군데 웅덩이가 습지처럼 널려있어 한번만 헛디디면 물첨벙하기 일쑤다. 게스트하우스 인도주인이 키우는 애완용 흰비둘기들이 하늘에 허공을 가르며 빗속을 나른다. 멀리 히말라야는 이미 회색빛 비구름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없다. 깨끗이 지워져있다. 비둘기마저 주인집 처마로 들어가고 나니 이젠 완전히 정지된 화면 속에 갇힌 거 같았다.

천천히 방문을 잠그고 커튼을 걷어 양쪽 못에 고정시키고 덜그럭거리는 창문을 닫은 후 젖은 숄과 바지를 의자에 걸쳐놓고 샌달을 벗어 벽에 기대어 놓은 후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정좌한 자세로 앉아 얇은 이불을 어깨부터 감싸듯이 둘렀다. 이 일들을 침착하게 모두 끝내자.... 그리고 빗소리와 함께 하늘을 쪼갤 듯한 천둥소리. 아주 한참동안 천둥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땅거미 지는 저녁 무렵이 거의 다 되어서야 비는 그쳤다. 나뭇잎에 고인 빗방울들이 똑똑 떨어지고 전깃줄의 물방울이 매달려 있을 무렵, 흰비둘기들이 전깃줄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다 푸르르 히말라야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그 비둘기들은 밤이 되기 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태그:#인도여행, #맥그로드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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