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력한 대선후보의 홍보영상에 욕쟁이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경제는 꼭 살려라~잉'이다. 재벌그룹의 CEO 출신이라는 점을 경제전문가로 치환시켜 부각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 할머니가 '가짜'라는 논란은 접어두고 경제를 살리라는 메시지만 살펴본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경제를 살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다른 문제들은 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란 사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버거운 서민들에게 한국경제는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란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만을 말하는 용어는 아니다. 국가차원의 경제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국가경제가 전체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점점 궁핍해진다. 수출도 사상 최대의 성과를 내고 있고, 성장률도 그리 낮지는 않다. 기업들의 경영성과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런 현상을 빗대어 경제가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경제구조의 문제로 인하여 서민들에게는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본래적 특성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굴러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의 시장실패를 빚어내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시장실패의 현상이 바로 양극화이다.

 

경제가 죽었거나 경제가 죽어간다고 표현하려면 성장률이 나쁘고, 기업들의 성과도 좋지않아서 전체적으로 시장이 탄력을 상실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대외여건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경제는 잘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성장도 견조한 편이다. 지금은 경제가 죽은 것이 아니라 동맥경화에 걸린 셈이다.

 

동맥경화는 치료하지 않으면 물론 죽는다. 소득상위층에서 창출되는 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경직된 상태가 지금 한국경제의 병증이다. 치료를 하면 죽지 않는다.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할 것은 경제를 살리라는 막연한 요구가 아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동맥경화를 치료해서 한국 경제의 말단 부분까지 피가 잘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수는 죽고 수출만 살아서는 안된다. 지방은 죽고 대도시만 활력이 넘쳐서도 안된다. 중소기업은 죽고 대기업만 왕성한 상태도 안된다. 서민들은 죽고 부자들만 흥청망청해서도 안된다. 전체가 원활하게 순환해야 한다.

 

결국 성장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증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 사람의 몸처럼 살만 잔뜩 찌고 팔다리가 힘도 못쓰는 상태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성장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비정규직과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로 인하여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장만을 추구할 단계가 아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토목공사를 벌여서 임시처방하는 성장으로는 더더욱 안된다. 질나쁜 지방질만 잔뜩 섭취한 몸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처럼 후유증을 엄청나게 키울 토목공사형 성장은 경제를 죽일 뿐이다. 단백질과 여러가지 영양소를 함께 섭취해야 한다. 경제도 불균형 성장을 하면 비만에 걸린 사람처럼 될 것이다.

 

국민은 이제 더 이상 경제를 살리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아직 죽어가고 있지도 않고, 다만 불균형이 심각할 뿐이다. 균형된 성장과 분배시스템의 보완을 요구해야한다. 살리라고 막연한 요구를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상을 치료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제를 살리라는 요구는 부질없는 소리이다.

 

특정부위의 비만으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지방섭취를 늘려서 더욱 살을 찌우려는 의사는 돌팔이이다. 고통스럽더라도 다이어트를 시키고, 균형있는 처방을 해야 한다. 환자마다 증상이 다른 데 모두 영양실조로 판정하고 엉터리로 처방하는 의사는 퇴출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서구 선진국의 경제와 같은 처방으로 살아날 수가 없다. 환자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여 처방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은 성장이 아니라 분배시스템의 확충이다. 죽어가는 서민들을 살리면 저절로 한국경제는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서민경제, #민생문제, #분배시스템, #균형성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