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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이 4주 앞으로 다가왔다. 각종 범법행위로 만신창이가 된 한나라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1위를 질주한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후보사퇴는 물론이고 철창도 염두에 둬야 할 듯한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실종된 윤리와 도덕이 가장 큰 원인이다.

 

10년 전 바로 오늘 대한민국은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여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승승장구하던 나라가 졸지에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는 거지로 전락한 것일까. 여러 해답이 쏟아져 나왔지만, 명쾌한 설명은 여전히 결석하고 있다. 구제금융으로 한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고금리와 물가앙등으로 중산층은 몰락하였고, 도시빈민은 노숙자가 되었다. 기업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대기업은 대량해고를 일삼았다.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수많은 가정이 경제문제로 파탄 나고, 인간관계는 황폐화의 길을 걸었다. 1987년 이후 형성된 ‘87체제’의 최대위기였다.

 

지난 세월을 생각한다

 

종이신문이 만든 기막힌 어휘 ‘잃어버린 10년’이 언제부턴가 저잣거리를 떠돈다. 그들이 거기에 덧붙이는 수식어가 ‘좌파정권 종식’이다. 그들은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그것은 청와대 주인인 대통령 자리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대통령 자리가 늘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자들이다.

 

본래 권력이란 교체를 통하여 새롭게 물갈이되고 재충전된다. 너무도 익숙한 말이 있지 않은가.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고인 물이 썩듯이.” 그런데 보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통치가 30년 넘게 이어졌다. 그들 뒤를 이은 김영삼의 문민정부도 실제로는 공화당-민정당-민자당의 연속선 위에 성립했다.

 

대한민국에서 수평적 정권교체는 1997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40년 가까운 일당독주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주체가 남한 땅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사태에 직면하여 개혁다운 개혁은 생각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다만 6.15 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개선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끝없는 갈지자 행보로 지지자를 실망시켰다. 4대 개혁입법은 실종되고, 이라크 파병을 서둘러 결정하였으며, 미군기지 평택 확장이전을 추진하여 100억 달러에 이르는 이주비용 감당을 자임하였다.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키더니, 급기야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킬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서명하였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좌파정권’인가! (북한과 더불어 평화체제 출범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 하나는 평가할 만하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자리에서 이회창은 말한다. 나라 기강이 무너지고, 법치가 땅에 떨어졌으며, 돈만 벌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한다고. 무능한 좌파정권 종식에 앞장서겠다고 말이다. 하기야 청와대 비서관이 뇌물죄로 구속되고, 정책실장이 비슷한 죄목으로 재판받고 있으며, 청와대까지 삼성의 로비대상이었으니, 맞는 말이다.

 

그렇다. 나라의 기강은 무너졌으며, 법치는 실종되었다. 재벌 아버지는 얻어맞은 아들을 대신하여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고, 경찰은 그를 감싸느라 급급했다. 삼성이 그토록 많은 뇌물을 사회 곳곳에 뿌려댔으나, 거대언론과 청와대는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고 한다. 기강도 법치도 없다. 승자독식과 시장만능의 사회구조가 확고해진 탓이다.

 

삼성을 수사하겠다는 검찰 내부 도처에 돈 냄새가 진동한다. 생선가게를 고양이한테 맡기는 꼴 아닌가. 언젠가 노태우가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고 처절할 만큼 불쌍하게 뇌까린 말을 검찰에게 전해주고 싶다. 어째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대한민국 사람들 뇌리에 깊이 새겨진 절망과 한탕주의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논리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시간과 더불어 그런 생각은 고착화 과정을 거쳐 이제 ‘나만 잘 먹고 잘 살자 주의!’로 완전히 정착되었다. 가진 자들의 끝없는 아파트와 땅 투기는 지난 10년 동안 일상이 되었다. 못하는 놈이 바보가 되고, 투기해서 한몫 잡는 자가 영웅이 되는 비천한 노예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과 양심적인 국민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려는 소박한 꿈. 실직하지 않고 정년을 보장 받으려는 작은 바람. 어렵게 대학 간 아들딸이 취업했으면 하는 지극히 당연한 기대. 무한경쟁과 투쟁이 아니라, 이웃과 따뜻한 선린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인간적인 희망까지. 이제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희망사항을 두고 볼 것인가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자들은 오로지 최고 권력만 생각한다. 그들은 요즘 수권이후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부패하고 파렴치한 자들이 모여 있는 정당의 무리가 모여 곧 먹게 될 떡고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몰염치하며 후안무치하고 뻔뻔한 인간들이 다 된 떡을 두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몇 백억의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자들이 누구인가. 여기자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고, 골프장 노동자에게 술병을 던지고, 폭탄주 마시고 행악질한 자들이 또 누구인가. 아들과 딸을 위장취업 시키고, 운전기사 세금까지 떼먹은 자가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도덕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려 국위를 무차별적으로 선양한 자들은 또 누구인가.

 

지금 87체제를 이끌어낸 세력은 무기력과 한숨과 절망의 환각에 빠져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사루만의 마법에 걸려 정신이 혼미해진 ‘세오덴’ 왕처럼 사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87체제를 위하여 소리도 없이 사라져간 선배와 동료, 후배들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하겠는가. 그들의 땀과 피와 눈물을 우리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우리의 길

 

아직 늦지 않았다. 흩어진 대열을 정비하고, 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다수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나 대북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은 역사의 죄악이다. 2002년 11월 이맘때의 뜨거운 감동과 벅찬 기억을 떠올리면서 역사의 대의에 복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부터 깨어나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왔던,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키워나가고,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내야 한다. 평화와 민주와 개혁을 자부하는 각 정파들은 보다 커다란 깃발과 대의를 위하여 뭉쳐야 한다. 소소한 이해관계와 지분협상 따위의 치졸한 논의는 당신들을 지옥의 나락으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힘을 모아라.

 

밤이 가장 깊을 때 새벽의 여명은 시작한다. 한겨울 맹추위가 엄습할 때에도 천지만물은 약동할 봄날의 도래를 굳게 믿고 기다린다. 지금 다수 국민은 참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결정적인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가면서 국민들의 마음과 믿음을 얻어가야 한다. 지역과 정책과 인물들의 총집합과 총진군을 통하여 아름답고 따뜻한 2008년의 봄을 기다리자!

덧붙이는 글 | <논어>의 ‘자로 子路’ 편에 보면 “如有王者라도 必世以後 仁이니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정치가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한 세대, 즉 30년은 지나야 어진 정치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실망한 많은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모두가 조금은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세 또한 매우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꿈은 간직하는 사람들의 편이니까요.


태그:#잃어버린 10년, #대선, #87체제, #국제통화기금사태, #좌파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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