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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만큼 사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가 있었을까? SBS의 '연개소문', KBS의 '대조영'에 이어, 수·목요일의 MBC의 ‘태왕사신기’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통해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상을 일깨우는 드라마로 이 땅의 고대사를 화려하게 재조명하고 있다.

 

 사극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를 떠올리며 광개토대왕을 느낄 것이다. 강서고분벽화의 사신도의 의미를 되새기며 역사를 재미있게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재미는 드라마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요즘의 역사 드라마는 역사는 간데없고 이미지만 난무하는 판타지 세상이다.

 

사극은 사(史)+극(劇)이다. 대개 어떤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이렇게 사실과 픽션을 섞어 쓰는 구성방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다. 혹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시각을 느낄 수 있어서 괜찮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드라마를 역사적인 사실로 오해할 우려가 크다.

 

 사극은 그저 픽션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실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보는 사람들은 사극을 종종 역사적인 사실로 혼동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청소년의 경우는 그 폐해가 더 심각하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가 뭔가. 단지 과거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과거를 알고 잘된 일과 잘못된 일을 평가하여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교훈을 얻는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는 법이니까.

 

수백, 수천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오늘을 형성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뚝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소통되고 있는 과거다. 그래서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부단한 대화' 라고 했을 것이다.

 

요컨대, 사극 제작자는 재미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고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역사 드라마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에 임하는 건 기본이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어떤 픽션과 가공을 더해서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인지를 깊게 고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역사는 그 자체가 이야깃거리고 온통 드라마 천지다. 소수림왕이 후사가 없어 동생 고국양왕이 왕위를 이은 사연, 랴오둥의 모용씨를 토벌한 고국양왕이 남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 일, 그가 신라와 백제를 분리시켜 신라를 복속한 과정, 5년 전에 태자로 책봉된 아들 담덕이 열일곱 살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아 그가 불세출의 정복군주 광개토왕이 된 사연 등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역사의 뒤안길에는 굽이굽이 극적요소가 넘친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드라마고 드라마는 온전히 창작의 자유가 지배하는 영역이라는 주장도 이해한다. 그러나 단지 판타지만 난무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의미있는 드라마가 되려면 이런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극에 대한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만든 사극을 통해 우리가 역사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또한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동양일보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태그:#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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