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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교육 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교육인적자원부는 법학대학원 총 입학정원을 2000명으로 정하고 ‘법학대학원 설치인가 신청공고’를 발표했다. 어느 정도의 입학정원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교육부가 법학교육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발표한 심사기준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서만 토론해보겠다. 결론부터 말해서 엉터리 심사기준을 철회하고 공청회를 거쳐 원점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 것을 교육부에 제안한다.

 

1995년 문민정부에서 21세기 인재양성을 위한 장기적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5·31교육개혁안을 도입한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일관되게 이 정책의 실행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원래 의도했던 다양화, 특성화는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입시지옥과 양극화만 심해지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5·31교육개혁안은 미국의 교육제도와 대학 입시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미국교육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이라는 공공성 개념을 달랑 빼놓고 경쟁만 도입해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의 다양화, 특성화 교육이 한국에 들어와 학벌주의와 그로 인한 대학입시와 결합하면서 획일적 교육을 더욱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특성화고, 영재고 등 평준화를 벗어난 학교의 학생비율이 8.4%에 달하지만 이들 학교가 다양성 교육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입시교육을 부추김으로써 교육의 획일화에 앞장 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서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교육경쟁력이 높은 나라는 모두 중등학교가 평준화된 나라다. 미국의 사립학교 비율은 초·중·고 모두 포함해서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교는 모두 평준화된 공립학교다. 많은 이들이 평준화와 3불정책이 우리교육의 문제인양 주장하지만 그나마 평준화와 3불정책이 우리교육을 이 만큼이라도 지탱해준 힘이다.

 

우리는 미국보다도 비평준화가 심한 나라다(이에 대한 경험적 증거는 곧 출간될 책에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따라서 우리교육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학벌과 대학입시 완화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법대를 전문대학원으로 만든 것은 미국의 모델을 본뜬 것이니 대학입시나 사법고시 경쟁을 완화시킴으로써 전인적인 법률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취지라고 이해된다. 그동안 우리교육의 문제가 대학을 한 줄로 줄 세우는 학벌주의에서 비롯되었다면 법학전문대학원의 설립은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발표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심사기준을 보니 교육부가 학벌을 완화시키고 우리 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교육부가 대입에서 내신반영비율을 높이고 본고사를 금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학벌을 완화시킴으로써 우리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구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교육부의 모든 정책은 기존의 학벌을 완화하는 쪽으로 이루어져야지 강화하는 쪽은 곤란하다고 본다.

 

한 편으론 내신 실질비율을 높이지 않는 대학에 대해 징계 운운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학벌이 좋은 대학에 온갖 특혜를 몰아주는 이중성을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교육부가 철학이 없이 갈팡질팡하니까 욕을 먹는 것이다. 기존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학대학원을 설립하면서 기존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가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에 필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교육부에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려면 먼저 법대 학부를 폐지해야 한다. 법학대학원에 비법학과 학부 출신을 1/3 이상 선발하라는 것은 법학부를 지키겠다는 것인데, 절반 이상이 법대 나와서 법학대학원을 갈 것이라면 왜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드는가. 교육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를 신청한 학교는 선정이 되든 안 되든 장기적으로 현재의 교수들이 모두 은퇴하고 나면 법학과를 폐지한다는 서약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서 법대, 의대, 경영대, 행정대 등이 법학전문대로 운영되는 것은 불필요한 대학입시경쟁을 완화하고 다른 기초학과가 이들 응용학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의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 놓고 의대학부, 경영대학원을 만들고 경영학과를 존속시켰으며, 법학대학원을 만들어 놓고 법학부를 존속시키려 한다. 이러니 대학입시로 아이들은 골병들고 대학에서 학문은 사라지고 취업과 고시공부만 난무한다. 기득권자의 기득권을 완화하기 위해 만드는 전문대학원을 통해 기득권을 더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교육부는 전문대학원을 왜 만들려고 하는가.

 

둘째, 사법고시 합격자 비율과 수를 평가에 반영한 합리적 이유를 설명하라. 법학대학원 설치를 위한 평가 기준을 보면 이미 너무나 많은 항목이 기존의 명문대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대학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사법고시 합격비율에 적지 않은 배점을 주고 있다.

 

공정한 경쟁이란 앞서간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사람도 같은 출발 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안 그래도 명문대는 교수확보 비율, 외국인 교수확보, 국제화 등에서 이미 저만큼 앞서 있다. 이런 요인은 다른 대학도 노력하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사법고시 배출 실적은 신분과 같은 것인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란 말인가. 그 동안 사법고시 출신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슨 사회적 기여를 했기에 가산점을 주는지 교육부는 근거를 밝히기 바란다. 사시 배출이 명문대 프리미엄으로 가능했던 것이지 학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셋째, 평가에서 대학의 사회적 책무 배점을 높이기 바란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설치는 엄청난 특혜다. 정부가 특혜를 줄 때는 그 동안 대학이 해온 실적을 보고 믿을만할 때 주는 것이다. 실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 동안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배려했는지, 지역사회를 위해 얼마나 공헌했는지, 교육부의 입시 방침에 협조적이었는지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서울대를 비롯해서 소수 명문대는 카르텔을 형성해 집단적으로 교육부의 입시완화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사회적 책무는 방기한 채 입시경쟁만 부추겨 공공의 적이 된 대학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넷째, 졸업 후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법학대원생에게 장학금을 얼마나 지급하는지를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당찮은 일이므로 당장 항목에서 제외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법대나 의대 대학원에는 일체의 장학금이 없다고 들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국가에서 내주고 졸업 후, 공익변호사로 근무하도록 하면 된다. 대학의 장학금 비율을 평가점수에 반영한다고 하니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은 대학원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의 극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가뜩이나 기금이 부족한 대학들이 법학대학원 유치를 위해 장학금을 여기에 올인하면 결국 진짜 장학금이 필요한 일반 대학원이나 기초 학문은 죽으라는 말인가. 게다가 교육부가 장학금 경쟁을 부추기면 법학대학원은 사법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것이 뻔하다. 안 그래도 존경받는 대학총장이나 시민운동 출신 학장이 성적에 따른 장학금 차등지급을 주장하는 반교육적인 상황에서 나쁜 선례를 만들게 될 것이다. 미국은 성적에 따른 장학금은 극소수에게만 주고 대부분 장학금은 필요한 학생에게 준다. 집에 돈이 많아 과외 받아 공부 잘하고, 아르바이트도 안하고 공부만 하니 더 잘하고, 또 장학금 받아서 공부한 사람이 정의감이니 약자 보호니 하는 정신을 배울 틈이 있겠는가. 법학대학원의 핵심은 정의감 배양에 있음을 잊지 말자.

 

다섯째, 서울대는 원천적으로 법학대학원 선정에서 배제할 것을 제언한다. 그 동안 우리 교육병폐의 가장 큰 원인은 학벌주의와 입시지옥에 있다. 학벌주의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모든 대학을 한 줄 세우기 하는 견고한 피라미드구조에 의해 지켜졌다. 서울대의 영향력은 다른 명문대 모든 대학을 합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울대가 논술고사를 도입하면서 400여개의 학원이 새로 탄생했고 이 중 80%가 넘는 학원이 논술학원이라는 것이 그 증거다.

 

특권적인 서울대가 존재하는 한, 학벌완화는 불가능하다. 국립대는 사립대가 할 수 없는 기초학문에 투자하고, 평생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최고의 학생을 독점하고 돈 되는 사업은 다 해도 되는 문어발 기업인줄 알면 곤란해진다. 그 동안 교육부는 서울대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나마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의대를 제외한 전문대학원을 떼어내고 기초학문 일반대학원 중심으로 서울대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이 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서울대에 또 다른 특권의 혹을 달아줄 셈인가.

 

교육부는 이상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 해명이나 합당한 조치를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학대학원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


태그:#법학대학원, #교육부, #학벌주의, #장학금, #정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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