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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혼시즌이다. 사계절 중 춥지도 덥지도 않고 스산한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에 옆구리가 시린 청춘남녀가 평생 함께할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려고 결혼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10월은 거의 모든 가정이 4~5건의 결혼식에 가느라 분주한 줄 안다.

어제(21일) 친구 딸 결혼식에 다녀와서 요즘 세태에 대해 느낀 바가 있었다. 두 사람의 눈부신 결합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모두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막 결혼식을 끝내고 신부측 직계 가족이 사진을 찍는 순간 갑자기 신부 남동생(26)이 가까이 있던 애인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너무 경황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신부 부모의 표정이 묘하고 복잡하게 변했고 가족관계를 소상히 알고 있던 일부 하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약혼녀인가? 아니면 사촌동생?"
"아니죠. 아무리 약혼자라 해도 요즘에는 결혼 당일 깨지는 쌍도 있는데 만일  뒤에 결혼 안 하게 되면 그 일을 어쩔건데? "
"아마 부모가 반대하거나 그리 탐탁하지 않아 하니까 이 기회에 아들이 의도적으로 밀어 부친 것일 수도 있지. 그런다고 여자애가 앞뒤 분간도 못하고…. 둘다 철없기는…."

결혼이 어디 보통의 인연으로 되는 일인가?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한번 초대받은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가 아닌가? 결혼은 남녀 공동의 CEO가 사회속에서 서로 삶을 상호보완해 가는 협력관계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애인을 세우다니 말이 되는가? 경솔한 행동 같았다.

한 테이블에 앉은 친구가 얼마 전 3시간 전에 결혼식이 취소된  황당한 경우를 하객으로 당했노라고 얘기해 주었다. 7년간 사귄 두 전문직 남녀가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부화장을 곱게 끝내고 마지막으로 머리손질을 하려는데 예비 시어머니가 신부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예쁘게 해달라고 미용인에게 주문하자 신부는 "간섭이 너무 심하다. 이 결혼 못해!" 하며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갔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랬지만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이 그렇게 폭발한 것이리라. 신부는 결혼식 당일까지 방황하고 갈등했던 게 틀림없다. 아무리 작은 것도 참지 못하는 신세대라 할지라도 그건 너무한 일이다. 7년이란 교제가 무색하고 그래서 더욱 충격적인지도 모르지만.

양가 부모, 친척, 지인을 모시고 천생연분을 맺는 신성한 자리를 신부가 엉망진창으로 만든 식장에서 사회저명인사 반열에 드는 예비 시아버지는 축하객에게 머리숙여 백배 사죄하며 돌려보내는 큰 망신을 당했다고.

그러자 옆자리의 또 다른 사람이 자신도 얼마 전 일주일 앞두고 깨진 결혼식 취소사건을 얘기해 주었다. 둘다 유복한 집안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5년을 사귄 청춘남녀가 결혼 일주일 전에 파경을 맞았다. 그 이유인즉 남자가 유학중이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여자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깊은 관계까지 갔으나 조건 좋은 원래 약혼자를 속이고 결혼하려던 차에 상대 남자친구가 약혼자를 찾아와  "당신 아내될 사람과 여러번 잤다. 나도 결혼 안 할 거지만 당신도 하지마라"고 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을 곱게 보내고 싶지도 않고 못먹는 감, 재나 뿌리자며 덤벼드는 무서운 세태. 성을 쾌락의 도구로 여기고 조건을 더 중시하는 비뚤어진 결혼의 한 단면을 요지경처럼 비추고 있다. 그래도 건전한 의식의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요즘은  자녀들을 유학도 많이 보내고 세계화된 때문인지 예전보다 주위에서 국제결혼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신성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결혼의 필요 충분조건이 되길 바라며 오늘 새로 탄생한 부부에게 마음으로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다만 애인을 가족사진에 끼워넣는 장면에 좀 씁쓸한 기분으로 결혼식장을 나선다. 누군가 그걸 물어 보았는지 친구인 혼주의 볼멘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정말 속상해요. 내년에 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아직  아들은 공부중인데…."
첨부파일
P3210059.JPG


태그:#결혼식 , #애인, #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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