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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교통 혼잡·교통사고·주차난·에너지난 등 자동차 사용에 따른 피해는 엄청나다. 게다가 골목길까지 자동차가 점령하면서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어다닐 권리마저 사라진 상태다. 과연 대안은 없을까? 오래 전부터 생태공동체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성미산 마을이 10월 7일 마을 단위로는 국내서 처음 시작한 '자동차 두레(카 셰어링)'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 다섯 가구가 참여한 이 실험을 오마이뉴스가 4~5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말]
내 어린 시절 골목은 놀이터였다. 그 곳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구슬놀이를 했으며,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다. 여자아이들과 더불어 고무줄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야구나 축구도 골목에서 했다. 아주 가끔씩 승용차가 지나가면 그 때만 잠깐 벽 쪽으로 붙어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골목에서 그런 풍경은 사라졌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주차해있고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논다는 것은 '익스트림 스포츠(극한 운동경기)'나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그 위험한 놀이를 하게 내버려둘 리도 없거니와 노는 아이들도 도무지 흥을 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안전한 골목길을 내걸고 지난 10월 7일 시작한 '자동차 두레(카 셰어링, 자동차 함께 쓰기)'는 깜짝 놀랄 만한 시도다. '개인 승용차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승용차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는 사례기 때문이다.

마누라는 빌려줘도 차는 빌려주지 않는다는데...

마을 단위로는 국내서 처음 시작한 '자동차 두레'는 '카 셰어링'의 우리식 표현이다. 한 대 자동차를 여러 가구가 나눠타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스레 자동차 이용 감소 효과가 일어난다. 1985년 유럽에서 처음 시작된 '카 셰어링'이 생태공동체 실험에서 중요한 이유다.

성미산마을에선 모두 여섯 가구가 첫 실험에 참가했다. 이경란씨(45)가 자신의 95년식 승용차(아반떼)를 내놨다. 이경란씨 이름으로 돼있던 보험은 '사람과마을(성미산마을 운영 법인)' 이름으로 옮겼다. 단체 보험으로 옮기는 데 든 추가 비용은 7만원.

여섯 가구는 자신이 꼭 써야 할 날짜와 시간을 정해 모두에게 알린다. 날짜와 시간이 겹칠 경우에 대비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아이들이 많은 경우, 긴급한 경우 등이다. 차량수리비·보험 및 세금 등을 계산해 가구당 차량구입비는 40만원으로 정했다. 즉 240만 원짜리 차인 셈이다. 이경란씨에 따르면 이번에 차를 수리하면서 거의 새 차에 가깝게 만들어놓았단다.

성미산마을 자동차 두레 첫 운행은 10월 9일 저녁 8시에 있었다. 이날 첫 운행자인 이경란씨를 이날 저녁 7시 집 근처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틀 전 고사를 지내면서 부은 막걸리 때문에 여전히 곳곳에 얼룩이 남아있던 승용차 앞에서 말이다.

성미산 마을 주민 이경란씨가 내놓은 두레용 승용차
 성미산 마을 주민 이경란씨가 내놓은 두레용 승용차
ⓒ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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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반떼는 이틀 전만 해도 이경란씨 개인 소유였다. 하지만 이 자동차는 여섯 가구 공동 소유로 이경란씨는 이제 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똑같은 차를 타지만, 차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졌다. 운행 전 차를 꼼꼼히 청소했다. 다음에 탈 사람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자체가 개인 승용차에 익숙한 사람에겐 불편할 수 있다. 이경란씨는 "실제로 불편하다"고 했다. 쓰기 위해선 예약을 해야 하고, 타고 난 뒤엔 장부를 써야하는 등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불편'을 "신선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차를 쓸 때 "내가 정말 이 차를 타야 하는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오너 드라이버'를 포기하니, 신선한 불편이

자동차 두레에 참가한 여섯 가구 중 네 가구가 자동차 두레에 참여하면서 승용차를 없앴다. 두 집은 원래 차가 없었다. 모두 곰곰이 생각한 끝에 개인 승용차가 필요 없다고 결론내린 집안이다. 이미 아이들이 큰 집, 중요한 일을 가까운 데서 해결할 수 있는 집이다.

자동차 두레에 신청했다가 주변 권유로 포기한 세 집이 이 기준에서 '미달'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리거나 사는 곳이 성미산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다음, 꼭 묻고 싶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주위에서 "한국에서 자동차 두레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한 이유 중 하나였다.

- '마누라는 빌려줘도 차는 빌려주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청소·보험·사고 등 사람 간 충돌이 벌어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자동차 함께 쓰기가 과연 가능할까요?
"글쎄요.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가능하면 자동차를 적게 쓰자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좋다고 했어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 했죠. 별로 이견이 없었던 사안이었어요."

이경란씨.
 이경란씨.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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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은 공동체 의식이 매우 높은 곳이다. 90년대 중반부터 공동육아·마을라디오방송·차 공동수리·반찬 공동구매 등을 마을단위에서 해결하고 있다. 성미산 마을을 아는 사람들은 "성미산 마을이니까 자동차 두레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경란씨는 "공동체 의식이 높아서 오히려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 생각하느라 손해를 감수하는데, 이렇게 '손해본다'는 느낌이 쌓이면 결국 찢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 의식이 높아서 '자동차 두레'가 잘될 것이라는 의견을 점잖게 반박한 셈이다.

'공동체 의식'과 '이기심'을 적절하게 맞추기 위해서 정한 게 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당사자간 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한다'는 것. 사고를 냈을 땐 사고 낸 당사자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범칙금 처리도 같은 기준에서 해결한다.

이경란씨가 승용차를 이용하는 때는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무렵. 고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강남에 다녀온다. 처음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 날 하루는 승용차를 이용한다. 한 달에 한 번 멀리 떨어진 시댁에 갈 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

또 다른 참가자인 이명희씨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 승용차를 사용할 예정이다.

문제는 주말과 휴가철. 일정이 겹칠 수밖에 없다. 이경란씨는 "카 셰어링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휴가철 이용 때문에 운영이 어려웠다"면서 "우리도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에 질린 사람들 많아...자동차 두레 희망 있어

어떻게 해서 자동차 두레를 하게 됐는지 물었다. 이경란씨는 "세뇌당해서 자연스레 하게 됐다"면서 크게 웃었다.

"2004년 녹색연합이 주최한 생태마을 워크숍을 들었어요. 그 때부터 자동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됐어요. 처음에는 '어' 하다가 어느 순간 '아' 하게 됐죠. 머리는 받아들였으니 이젠 실천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동차가 그냥 서있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어요. 그래도 보험금·세금·정기 수리비 등 비용은 계속 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아예 내 차를 없애버려?' 그 상태서 지난해 녹색연합팀과 함께 독일 카 셰어링 답사를 다녀왔어요. 그리고 마음먹었죠. 우리 마을에서 해보자구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궁금증이 머리 속에서 똬리를 튼다. 결국 '자동차 두레'라는 실험은 성미산처럼 15년 동안 공동체경험을 가진 곳에서 가능한 게 아닐까. 공동체 경험이 없는 다른 마을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게다가 성미산 마을은 자동차 두레를 하기 위해서 해외연수까지 다녀오지 않았는가.

"아뇨. 그렇지 않다고 봐요. 적어도 '자동차 두레'는 말이죠. 지금 사회 분위기가 자동차에 대해선 아주 질려하거든요. 그래서 자출(자전거 출퇴근) 인구가 그렇게 늘고 있는 거잖아요. 주말에만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저는 사회 분위기가 '자동차 두레'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라고 봅니다."

10월 8일 성미산마을 자동차 두레 승용차가 첫 출발했다.
 10월 8일 성미산마을 자동차 두레 승용차가 첫 출발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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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자전거 출퇴근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대표적 자출 커뮤니티인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원수만 14만명이다.

하지만 국내 승용차 이용자수도 계속 늘고 있다. 1인당 이용거리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편이다. 한국 사회에선 '빛'과 '어둠'이 함께 커가고 있는 셈이다. 이경란씨는 그 중 '빛'에 주목한 것이고.

성미산 마을은 '자동차 두레'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을에선 이미 자전거 타기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 역시 '자동차 안 타기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역 내 한 주민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직장까지 왕복 50㎞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마을 내 자전거 모임도 있고, 방학이 되면 자전거 캠프도 열린다.

성미산마을의 승용차 이용 줄이기는 '대중교통 이용'-'자전거 출퇴근'-'자동차 두레'라는 삼각 편대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중 대중교통과 자전거 출퇴근은 순조롭게 커가고 있다. 자동차 두레가 자리잡게 되면 성미산 마을의 '승용차 이용 줄이기'를 주목하는 이들은 좀더 많아질 것이다.


태그:#자동차두레, #성미산마을, #자전거출퇴근, #마포두레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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