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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48) 천기족구회 총무가 족구화를 들어 보이며 "족구때문에 부부금슬이 좋아졌다"고 말해 회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김태수(48) 천기족구회 총무가 족구화를 들어 보이며 "족구때문에 부부금슬이 좋아졌다"고 말해 회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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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저녁, 시골마을 공터에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전조등을 밝힌 차량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눈에 띈다. 공터를 밝혀줄 조명이 켜지고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이들은 몸을 풀기 시작한다.

이곳 한가운데에는 네트가 쳐져 있고 바닥은 매끄럽게 포장돼 있으며 눈에 잘 보이도록 녹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편을 나눈 이들은 힘찬 파이팅과 함께 공을 차 넘기기 시작한다. 언뜻 보기에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평균연령은 48세며 직업은 농부·택시운전사·부동산중개사·사업가·회사원 등으로 다양한 이 남자들은 대부분 충북 음성군 삼성면 냇거름 마을 사람들이다.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택하다 보니 저녁 8시가 됐고, 족구를 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것이다.

명절날 화투 NO, 족구 OK

천기족구회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전용구장에서 족구를 즐기고 있다.
 천기족구회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전용구장에서 족구를 즐기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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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년 남자들의 족구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가 오거나 모내기철인 농번기를 제외하면 하루도 족구를 거르지 않는다. 눈이 내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얼기 전에 치워 놓기도 하고 추운 겨울이면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족구를 한다.

명절이면 가족들끼리 모여 화투를 치거나 낮잠으로 소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풍속도지만 이 마을은 다르다.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족구를 즐기며 마을 잔치를 벌였고 족구가 불가능한 어르신들은 한편에서 윷놀이로 화합을 다졌다.

참석자 중 최고령인 박기환(52)씨가 눈을 질끈 잠고 머리로 공을 걷어 올리고 있다.
 참석자 중 최고령인 박기환(52)씨가 눈을 질끈 잠고 머리로 공을 걷어 올리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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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족구를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운동 초기 마을에 운동할 공간이 없어 3㎞ 떨어진 면사무소 광장과 면소재지 체육공원을 찾아다니며 운동을 했다. 하지만 운동장이 멀어 불편했고 다른 팀이 운동을 하고 있으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뜻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족구장 부지 매입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자 이곳이 고향인 출향인들도 마음을 보탰다.

1500만원을 모아 지금의 족구장이 만들었으며 한동네 사람인 땅 주인도 용도를 알고 시세보다 싸게 팔아 도움을 줬다.

이렇게 해서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이며 주야간 언제든 족구를 할 수 있는 전천후 족구장이 5년 전에 마련됐다. 지금 마을 사람들은 족구를 빼놓고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족구사랑에 푹 빠져 있다.

이 마을의 옛 지명을 따 '천기족구회'를 구성했고 족구가 가능한 사람들은 모두 회원이다. 족구 동아리 회원들은 새벽 0시는 기본이고 새벽 4시까지 족구를 즐긴 적도 있다고 털어 놓는다.

족구=부부사랑 묘약

공격수 이재환(47)씨가 상대방 진영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고 있다.
 공격수 이재환(47)씨가 상대방 진영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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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또한 만만치 않다. 매일 함께 발을 맞추다 보니 서로의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시골 아저씨들'이라고 얕잡아 봤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30대로 구성된 음성군청 '나르리' 족구팀이 친선경기를 왔다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망신을 당하고 돌아섰다. 인근의 비슷한 나이 팀들과 경기를 해서 져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

띄움수(세터)인 진영장(49) 회장이 안정된 자세로 공을 올려주고 있다.
 띄움수(세터)인 진영장(49) 회장이 안정된 자세로 공을 올려주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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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장(49) 천기족구회장은 "운동을 하려 했을 때 40중반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보니 족구였다"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경제적이며 재미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을 것"이라고 족구 예찬론을 폈다.

이어 진 회장은 "농한기에 도박을 하거나 술을 먹는 것이 전부여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분란도 있었고 단합도 안 됐다"면서 "그 시간에 '족구'를 하다 보니 마을 화합은 물론이고 몸과 정신건강까지 챙기게 됐다"며 웃음 지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김태수(48) 천기족구회 총무가 진 회장의 신발은 벗겨 들어 보이며 "여기 모인 사람들 족구화를 대부분 마나님들이 사줬다"며 "족구하면서 부부 금슬이 좋아져 화목한 가정이 됐으니 70살을 먹어도 족구를 할 것"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족구 공을 쫓는 이들의 표정에는 열정과 힘이 넘쳐흘렀다.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들 모두가 족구로 인해 더욱 화합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함께 하길 기대한다.

상대방 공격수 이재환씨와 친구이면서 라이벌인 조한일(47)씨가 상대방 진영 코트 모서리에 정확하게 공을 차 보내고 있다.
 상대방 공격수 이재환씨와 친구이면서 라이벌인 조한일(47)씨가 상대방 진영 코트 모서리에 정확하게 공을 차 보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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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주민들은 족구를 통해 하나가 되고 화합을 다진다.
 이 마을 주민들은 족구를 통해 하나가 되고 화합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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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총무의 아들 김성훈(11) 어린이가 수비수인 아버지가 어려운 공을 받아 올리자 웃어 보이고 있다.
 김태수 총무의 아들 김성훈(11) 어린이가 수비수인 아버지가 어려운 공을 받아 올리자 웃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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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어깨 넘어로 배운 족구 실력이 수준급인 김성훈 어린이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어깨 넘어로 배운 족구 실력이 수준급인 김성훈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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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부자의 뒷 모습이 아름답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부자의 뒷 모습이 아름답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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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에 열정을 쏟아내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처럼 행복을 함께지길 기대한다.(사진은 천기족구회 회원들)
 족구에 열정을 쏟아내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처럼 행복을 함께지길 기대한다.(사진은 천기족구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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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국민운동, 가족스포츠

족구는 하기 쉽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말 그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않고 즐길 수 있는 사계절 운동이기도 하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충돌이 적어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몸에 무리가 없어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평생운동이다.

족구는 돈이 안 든다. 아무리 좋아하고 뛰어난 운동이라 할지라도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면 하기 어렵다. 하지만 족구는 네트와 공, 족구를 함께 할 사람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돈에 자유롭다. 경제적 비용은 '짝퉁가'지만 운동효과는 '명품가'다.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고 승부가 빨리 나 재미 있다.

족구는 국민운동이며 가족스포츠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족구인구도 500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즐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연간 열리는 크고 작은 전국 규모 족구대회만 20여개가 넘는다. <오마이뉴스> 전국 직장인 족구대회도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이번 대회는 오는 6일 서울 마포구 망원 유수지 체육공원에서 열린다.

최근에는 여성 족구팀도 구성돼 서울에서만 15개가 운영되는 등 '성'을 뛰어넘은 스포츠로 새롭게 자리매김 했다. 한세대, 관동대, 전남과학대 등에는 '족구과'까지 생겨 전문 족구인을 양성하고 족구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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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족구, #음성군, #삼성면, #천기족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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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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