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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잘 보내셨는지요? 온 나라가 하나 되는 한가위는 금년으로 마지막이 아닌가 합니다. 내년 한가위에는 우리나라의 헌법이 두 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미FTA가 비준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한 지붕 두 가족도 아니고 한 나라에 헌법이 둘이라니?'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형식적인 헌법은 하나지만 헌법 체계와는 별도로 한미 FTA 체계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무역이 단지 관세를 내리는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무역당사국들에 서로 이익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래서 한미FTA에 의문을 제기하면 마치 개방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한미FTA를 둘러싼 갈등을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고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미FTA에는 미국인 투자자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다같이 한국에 투자를 하더라도 한국인에게는 헌법이, 미국인에게는 한미FTA가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헌법은 국민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살겠다"고 합의한 기본 약속이기 때문에 무심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법률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헌법이 정부의 권한을 ①②③으로 정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는. 예를 들어 권한 ③으로 인해 손해를 본 미국인 투자자가 우리 정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런 분쟁은 국제기관이 헌법 아닌 한미FTA를 근거로 삼아 판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미국인 투자자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권한이 사실상 ①②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문제가 이어집니다. 미국인에 비해 손해를 보는 한국인은 내외국인 차별을 이유로 위헌 심판을 청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한국인이 국내에서 사업을 할 경우에도 미국인을 앞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우리 정부는 힘을 잃게 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국부까지 유출됩니다.

 

물론 한미FTA는 미국에도 적용되며, 몇 가지 공익 목적의 정부 규제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보다는 우리 헌법이 공익적 규제를 더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고(혹 법에 관심있는 분은 헌법 제119조 제2항, 제122조를 찾아보십시오) 또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 자본이 그 반대 경우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보다는 우리 정부의 규제가 더 크게 문제됩니다.

 

자, 이제는 한미 FTA와 우리 헌법과의 관계를 아셨을 겁니다. 그럼 아래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질문. 한미 FTA를 비준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헌법의 효력을 제한하므로 헌법 개정과 비슷한 수준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② 일반 조약처럼 국회 동의만 얻으면 된다.

 

법에 관한 것은 모른다고 외면하실 일이 아닙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할 때 국민마다 자기 의견이 있었듯이, 헌법 문제는 대체로 상식과 세계관이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이 설문은 법률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판단이 어렵지도 않은 이 문제에 관해 대선후보들은 왜 침묵을 지키는 걸까요? 대선 정국에서 한미FTA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일반 조약처럼 국회 동의만 얻으면 된다는 것이겠지요. 침묵하는 대선후보들은 모두 정부와 같은 입장인가요, 아니면 그저 문제를 회피하는 건가요?

덧붙이는 글 | 김윤상 기자는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입니다.


태그:#한미 FTA, #헌법, #대선, #국회 동의, #헌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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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사회정의/토지정책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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