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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좋은 말도 세 번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학벌 위조' 뉴스가 도배를 하는데 이제는 듣는 사람조차 '학벌' 그러면 신물이 날 정도다. 그만큼 각계각층 할 것 없이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학벌 위조나 부풀리기가 심각하다는 얘기겠는데, 이런 왜곡된 사회현상이 만연될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사회구조가 취약하다는 덴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하여튼 '학벌 위조'로 실익이 있건 없건 가방끈 짧으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의도적이든 엉겁결이든 '학벌 부풀리기' 유혹을 견뎌내기는 어려울 터. 나 또한 젊은 시절 그놈의 짧은 가방끈 때문에 '학벌 부풀리기' 유혹을 참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쓴웃음이 날 정도다.

남편의 후배 중에 '형수'를 '행수'로 발음할 만큼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후배 부부와는 한 동네에서 살아 친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불쑥 나한테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부부 모두 대학을 나와 노동운동을 하는 친구들이었으니까 내 이력을 모를 리 없을 것이고, 뜬금없이 내 전공 타령을 한 것은 아마도 내가 자기들처럼 당연히 '학출(대학출신) 노동운동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남편은 옆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이 빙긋 웃으며 시선을 돌리는데 돌발적인 질문공세를 받은 나는 정작 당황하고 말았다. 불과 몇 초도 안 되는 사이 몰아닥친 부끄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질문에 뭐라 답변해야 하나 하는 혼란감.

그냥 오다가다 얼굴 보는 사람이라면 두루뭉술 둘러대고 싶을 만큼 '학벌 콤플렉스'를 못 벗었던 내겐 그것보다 더 곤혹스런 질문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 한두 해 보고 말 사이냐? "저 대학 안 나왔는데요…" 이렇게 말하면 더 초라할 것 같아 아주 당당하게 전공을 밝혔다.

"내 전공? 납땜과지…."
"예에∼∼? 행수님 공대 나오셨능교?"


내가 당연히 대학을 나왔을 거라고 믿고 있던 남편 후배는 느닷없는 '납'이 어쩌고 하니까 순간적으로 공대를 떠올렸나 보다. 후배의 맹맹한 그 표정을 본 순간 남편과 나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으이구∼∼ 공대는 무슨. 아니 공대에 납땜 전공도 있어요? 대학 문턱도 못 가보고 전자 공장에서 납땜 부서에 있었단 말이지."

그때야 전후 본말을 이해한 후배 부부도 탁자를 쳐가며 박장대소를 했다. 하여튼 그날 그 유머 덕분에 그 후배 부부한테 상당한 예우를 받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질문에 그렇게 답을 할 정도로 '자기 인생에 당당한 자부심'이 있는 아줌마구나 하는 신선한 느낌 때문에 그러지 않았는가 싶다.

두 번째는 출판사에 근무할 때다. 노동법과 실무에 관한 서적을 주로 발간하면서 노동 상담도 해주는 출판사였는데 블랙 리스트에 걸려 공장 취업이 어려웠던 내가 몇 년 간 의탁했던 직장이다. 출판사 직원이래 봤자 사장님과 나 단둘뿐이었으니 우리 둘이서 편집과 영업, 그리고 상담까지 1인 3역을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한창 노조 조직 열기가 불타오르던 때였으니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노동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때였다. 덕분에 노동운동을 꿈꾸는 대학 졸업자들이 자청해 몰려들었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 노동법과 실무를 익히기엔 우리 출판사가 더할 나위 없는 실습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명문대학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친구들도 출판사에서 노동법과 실무를 지도하는 내가 당연히 대학 출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상담이 끝나고 모여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그중에 한 친구가 불쑥 내 학번을 묻는 것이었다.

"선배님은 몇 학번이십니까?"
"나? 나, 대학 안 나왔는데…. 나는 전자 공장 공순이 출신이야."


순간 젓가락질을 하던 그 친구의 표정이 황당하다는 듯 변했다.

"예? 선배님, 사장님 후배 아니셨어요?"
"하하하∼∼ 노동운동 후배기는 하지만 학교 후배는 아니지."


내 말을 듣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표정관리를 못 하는 그 친구를 보며 또 한바탕 웃었지만 그때는 예전처럼 내 학벌을 까발릴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움 보다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이분법적 선입견을 벗어나지 못한 그 젊은이가 귀엽게 보이는 여유가 생긴 것이 다른 점이었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맺혔다면 요즘은 배움의 문턱도 많이 낮아지고 넓어졌다. 각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도 있고, 필요하면 방통대학이나 아니면 신입생이 부족한 일반 사립대에 입학할 수도 있다.

옛날처럼 대학 졸업장이 평생을 좌우하는 세상도 아니고 대단한 학벌로 먹고사는 소수 사람 빼고는 흔해 빠진 대학 졸업장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진입한 것은 불문가지인데 아직도 우리는 '학벌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주변 지인들 중 뒤늦게 대학을 들어가 만학을 불태우는 친구도 몇몇 있지만 가방끈 짧은 나는 시간이 남아돌아 주리를 틀어도 대학 들어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참,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남들처럼 향학열이 없어서인가? 그도 아니면 자기 인생에 대한 '성취욕'이 전무한 탓이기 때문일까? 세 가지 다 해당사항이 약간 있지만 여하튼 아무 앞에서나 "저 왕년에 납땜이 전공인 공순인데요" 할 만큼 위풍당당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벌 열등감이 대충 견딜만 하기에 대학 진학을 꿈꾸지 않는 것 아닐까.

'학벌 위조 내지는 부풀리기' 광풍이 이만큼 몰아쳤으니 우리 국민 모두가 엉겁결에 '학벌'이라는 괴질에 대응하는 예방주사를 단체로 맞은 꼴이 되었다. 이 예방주사 덕택에 다음 세대 젊은이들은 우리처럼 '학벌 콤플렉스'에 고통받고 학벌이 지배하는 괴물 사회에 더 이상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태그:#학벌, #공순이, #학력 콤플렉스,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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