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인천수륙제공연모습.
ⓒ 인해전통문화예술원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는지 모르나 범패와 작법무(나비춤)는 부처님의 정법을 상징하는 무용으로 일명 '해탈무'라 하며, 인천의 나나니춤 등과 어우러져 민속무에도 영향을 준 춤이다. 승속이 하나 되어 예술성이 한층 승화된 춤으로 이는 자비의 발견, 참는 마음의 발견, 법보(法寶)의 발견을 위해 추는 춤이다.

수륙제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에게 공양을 드리는 불교의식이다. 인천수륙제 의식이 타지역과 다른 점은 소리부분인데, 타지역 소리는 오음을 사용하는 반면 인천수륙제는 간성이란 소리를 곁들여 6가지 소리를 내고 있다. 의식 중 회심곡 소리와 가사도 타지역과 달리 서민들과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의 애환을 기리는 간절한 음절이 나온다.

이는 어부들이 슬프거나 흥겨울 때 부르는 노랫가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런 점이 인천지역 각 사암의 수륙제에 반영돼 타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을 이루게 됐다. 인천수륙제의 발원지는 사적지로 지정된 강화도 마니산 밑 '묘통사'다. 고려 명종, 태종, 문종, 회종에 이르기까지 강화도를 중심으로 수륙제를 봉행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다.

일초 스님은 "범패 작법무가 불교 의식무의 일부를 한 장르로 발췌해 독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면 인천수륙제는 종합적 종교 의식무로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일초 스님(43·속명 박치훈)은 제10-나호 범패와 작법무(나비춤)는 물론 제15호 인천수륙재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 인터뷰 중인 일초스님.
ⓒ 문경숙
그는 인천 화엄종의 대본산인 약사사의 법사인 송운포 스님과 역시 인천의 혜광사 법운 스님에게 불교의 천도의식을 정식으로 전수받았다. 1983년부터는 지금은 작고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 예능 보유자였던 박송암 큰스님에게서 모든 의식을 완벽하게 사사한 뒤 지난 99년 9월에 국가지정 이수자로 인정됐다.

이러한 일초 스님은 무형문화재공연단체연합회 이사장, (재)인천 중요 및 시 지정 무형문화재총연합회 회장, 인해전통문화예술원 이사장, 한국불교종합예술대학학장, 대한불교 삼계종 총무원장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재다능한 데다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스님은 어떤 사람일까?

▲ 인해전통문화예술원전수실 전경.
ⓒ 문경숙
일초 스님은 어렸을 때 병약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불가에 의지하면 장수할 수 있다 하여 불심이 깊으셨던 그의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기도 포천 금룡사의 봉창현 스님의 불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스님의 길을 걷지 않으면 단명한다는 말이 일찍이 출가한 이유였다. 금룡사에서 본적인 배움을 익히며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조계종에서 7년을 수행했다.

범패와 작법무는 모든 불교의식을 총망라하는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 노래, 춤 이 셋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득음을 하는 과정에서 세 번의 각혈을 쏟아 병원 신세를 졌고, 폐결핵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때 가졌을 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수자의 길을 걸으며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스승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스님에게는 자신이 창건한 부평 불자미 자원사가 중심점이다. 86년 문을 연 이래 신도수가 2천여 명을 헤아린다. 모든 신도들 역시 범패와 작법무를 널리 알리는데 한결같이 동참하고 있다. 스님의 국내외 공연에 자발적인 스폰서가 된다.

그는 범패와 작법무를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무대에 널리 알리는 데 인생을 걸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주 전통문화센터, 실크로드 정기초청공연 등 전국 단위 무형문화재 공연행사에 참석, 인천의 범패와 나비춤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사할린 홈스크시와 유즈노에서 한인 위문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공연할 때 민간 문화외교사절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천 홍보도 잊지 않는다. 공연무대에 올려진 태극기 옆에는 꼭 인천시 고유마크가 새겨진 깃발도 함께 걸어 놓는다고 한다.

누군가가 호기심으로 질문해오면 그때 인천과 인천시의 무형문화재에 대해 친절히 설명한다. 이렇게 11개국을 돌았다.

인천시무형문화재협회장으로서 인천시가 추진하는 무형문화재전수관 건립이 원만하게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일초 스님은 "무엇보다도 무형문화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확충과 경제적 지원으로 전통문화 전수활동에 보다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이들이 연습실 하나 없이 떠돌며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후진양성에 매진하지 못할 때 안타깝기 한이 없다"고 말했다.

출가를 안 했다면 아마도 무용가의 길을 걸었을 거란 일초 스님, 그의 종교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요즘 너무나 많은 종교들이 생겨나고 그로인한 폐단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믿든, 모시든 그 근본으로 들어가면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착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 다 자신이 믿는 그 안에서 착하게 살고 또한 이 땅의 국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한편 일초 스님은 인천 부평동 인해전통문화예술원을 연습실로 전수생을 강습하고 있으며 배우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종교에 가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 인해전통문화예술원전수실에서의 일초스님.
ⓒ 문경숙

덧붙이는 글 | 사)인해전통문화예술원(529-6708 /www.bumpae.org)

이 기사는 인천시인터넷신문, sbs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초스님, #범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