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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필리핀에서 중등 영어교사 국외 어학체험연수를 받으면서 특히 인상 깊은 곳들이 있다. 마퀼링학교(Maquiling School, Inc.), 마킬링 식물원 내 필리핀 맹금류 센터(Center for Philippine Raptors, 이하 CPR), 국제 쌀 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이하 IRRI)와 마킬링산 중턱에 있는 머드스프링(The Mudspring)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를 친구라 부르던 필리핀 초등학생에게 감동 받다

▲ 나를 친구라 부르며 과자 한 봉지를 주고 가던 마퀼링 초등학생(사진 왼쪽). 하루 종일 내 가슴이 찡했다.
ⓒ 김연옥
지난 7월 27일 오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필리핀국립대학 라스바뇨스 캠퍼스(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Los Banos, 이하 UPLB)와 인접해 있는 마퀼링학교를 방문했다. 1924년에 다섯 명의 유치원생들로 시작된 마퀼링학교는 반사립학교(semiprivate school)로 초등학교 취학 전 4~5세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Pre-school), 초등학교(Grade School)와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High School)로 이루어져 있었다.

필리핀의 고등학교 과정은 4년간이다. 우리나라처럼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교실 부족으로 2부제 수업을 하는 공립학교들(public schools)도 있었다. 마침 그날 마퀼링 고등학교에서는 'Nutrition Month' 행사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 'Nutrition Month' 행사를 하고 있는 마퀼링 고등학생들.
ⓒ 김연옥
▲ 간식거리로 신선한 그린 망고를 팔던 마퀼링학교 식당.
ⓒ 김연옥
필리핀 교육부 방침에 의해 7월을 '적절한 영양 섭취의 달(proper nutrition month)'로 정해서 그달 마지막 금요일에 그림 그리기, 포스터 만들기와 요리 대회 등 여러 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고 건강을 생각하는 생활 양식을 갖게 하기 위한 교육 행사이다.

사실 우리 학생들이 학교 매점에서 건강에 썩 좋을 것 같지 않는 스낵류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 먹는 게 늘 불만이었다. 물론 학생들의 건강에 좋은 간식거리를 팔고자 하는 학교 측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게 더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마퀼링 학교 식당에서 신선한 그린 망고를 팔고 있던 일이 지금 생각해도 참 부럽다.

▲ 필리핀 여학생들의 교복 치마 길이가 상당히 길어 인상적이었다. 라구나 호숫가에서.
ⓒ 김연옥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사복이 허용돼 마퀼링 고등학교의 교복을 보지는 못했지만, 필리핀에 가서 깜짝 놀란 일 가운데 하나가 여학생들의 교복 길이가 상당히 길다는 거였다. 문득 치마 길이를 좀 더 짧게 해서 몸에 착 달라붙게 입고 싶어하는 우리 학생들 얼굴이 떠올라 혼자서 피식 웃었다.

그곳에서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로 감동을 받았다. 갑자기 초등학교 3학년 사내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과자 한 봉지를 주었다. 그걸 먹고 싶을텐데 왜 내게 주는지 물었더니 그 꼬마가 "Because you are my friend"라고 말하는 거다. 속 깊은 그 아이의 대답에 하루 종일 가슴이 찡했다.

독수리를 지키는 CPR로 가다

▲ 필리핀 맹금류 센터(Center for Philippine Raptors).
ⓒ 김연옥
오후에는 UPLB의 마킬링 식물원(Makiling Botanic Gardens) 구경을 하러 갔다. 필리핀은 6월부터 10월까지가 우기이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기 때문에 나는 늘 양산을 겸해서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마킬링 식물원에는 맹금류 보호를 위해 1993년에 설립된 필리핀 맹금류 센터(CPR)가 있다. 그곳에는 필리핀을 상징하는 새인 필리핀 독수리를 비롯하여 필리핀 뿔매, 필리핀 수리부엉이, 흰꼬리수리, 흰가슴수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원숭이 먹는 독수리(Monkey-eating Eagle)라고 부르기도 했던 필리핀 독수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독수리로 키가 1m이고, 날개를 폈을 때 그 폭이 2m나 되는데 안타깝게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IRRI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머드스프링으로

▲ 쌀 품종 개발에 힘쓰고 있는 국제 쌀 연구소(IRRI).
ⓒ 김연옥
1주일이 흐른 8월 3일 오전에 우리는 UPLB 가까이에 위치한 국제 쌀 연구소(IRRI)를 방문했다. IRRI는 1960년에 포드 및 록펠러 재단이 기아와 가난을 줄이기 위해 필리핀 정부의 협조를 얻어 설립한 비영리 연구소이다.

IRRI에 들어서면 'Rice Science for a Better World'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글귀가 먼저 눈에 띈다. 서울대 허문회 교수가 개발하여 우리나라 70년대의 녹색혁명을 일구었던 통일벼의 산실도 바로 IRRI가 아닌가. 세계의 많은 연구원들이 모여 쌀 품종 개발에 힘쓰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쌀은 생명이다'는 말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 머드스프링(The Mudspring).
ⓒ 김연옥
그날 오후에는 휴화산인 마킬링산(Mt. Makiling) 중턱에 위치한 머드스프링(The Mudspring)을 찾았다. UPLB에서 지프니(Jeepney)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입산 신고소가 나온다. 거기에서 입산 등록을 하고 1명당 5페소(peso), 우리 돈으로 100원 정도로 계산해서 지불하고 올라가면 된다.

나는 모처럼 산행하는 기분에 젖을 수 있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머드스프링은 온도가 섭씨 80도인 진흙 온천이다. 그래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그곳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자 어떤 필리핀 선생님은 대뜸 달걀을 가지고 갔느냐고 물었다. 그 선생님은 대학 시절에 그곳에서 달걀이 삶아지는지 실험까지 했다는 거다.

▲ 머드스프링을 구경하고 내려가는 길에 코코넛 가게에 들렀다.
ⓒ 김연옥
▲ 코코넛의 하얀 속살을 박박 긁어 먹으면 구수하고 맛있다. 또 재미있다.
ⓒ 김연옥
머드스프링에서 내려가는 길에 우리는 코코넛(coconut)을 사 먹었다. 갈증 해소에는 코코넛이 아주 그만이다.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나면 가게 아주머니가 이제는 반으로 쪼개 준다. 코코넛의 하얀 속살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서 먹으면 구수하고 참 맛있다.

사실 그 맛 때문에 필리핀에서 먹었던 부코 파이(buko pie)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코(buko)는 코코넛을 뜻하는 따갈로그어(Tagalog)이다. 필리핀 선생님 가운데 어머니가 유명한 부코 파이 가게를 하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한국으로 올 때 부코 파이 세 통을 미리 주문해서 들고 나올 수 있었다.

▲ 환상적인 맛, 필리핀의 부코 파이(buko pie)!
ⓒ 김연옥
물론 갓 구워 낸 부코 파이가 더 맛있겠지만 냉장고에 뒀다가 먹어도 맛이 좋다. 부코 파이는 한 개에 120페소이니까 우리 돈으로 2400원 정도이다. 서너 사람이 같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푸짐하다. 누가 내게 필리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하면 부코 파이의 맛부터 들려줄 것 같다.

태그:#필리핀, #마퀼링학교, #여행, #파이,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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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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