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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위트(WIT)'에서 말기암 환자인 여교수 역할을 맡은 윤석화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에는 유명 연극배우 윤석화씨도 학력을 속였다고 해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고 있다.

학력을 속인다고 할 때의 '학력'은 실력과 거의 비슷한 뜻인 '학력(學力)'이 아니라 학벌과 거의 비슷한 뜻인 '학력(學歷)'이다. 이 두 단어는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다르다. 그래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제 각각 '실력'과 '학벌'로 부르기로 한다.

학벌을 속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개인적으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런 경우도 있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던 끝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까지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사례에서는 학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위해서다. 사회가 학벌이 아니라 실력으로 사람을 대우한다면 학벌을 속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학벌은 속일 수 있어도, 실력은 속일 수 없다

학벌은 문서를 통해 위조도 하고 말로 부풀리고 다닐 수 있지만 실력을 속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실력을 검증하는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학벌로 실력을 추측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연고주의도 거든다. '동향'이다 '동문'이다 하여 뭔가 공통점을 찾은 후에 같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끼리 배타적인 클럽을 형성한다. 어쩌면 실력보다 연고를 더 중시하려는 경향마저 있다. 그래서 한사코 좋은 학벌을 만들려고 한다. 또 같은 이유로 강남에서들 살려고 한다.

역사상 학벌없이 위대하게 된 인물은 수도 없다. 오히려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업적을 남긴 사례가 적지 않다.

학교가 인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고, 자꾸 하면 잘 하게 된다"고 한 번역가 이윤기씨의 말처럼 창의적인 일은 학벌과 무관하다. 학교는 개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그리고 그런 일을 잘 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려서부터 성적을 위해 문제풀이식 공부에 매달리게 하여 오히려 열등한 인재를 양산하는 우리 교육 풍토. 그렇거나 말거나 결과로 나타난 수능 성적만 우수하면 된다면서 고교 내신 성적을 무력화하려는 세칭 '일류대'. 모두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 각계에서 학벌보다 실력으로 사람을 대우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각계가 다 노력해야 하지만, 일류 기업에서 사원을 뽑을 때 실력만으로 뽑는 방식을 채택한다면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클 것이다.

문민정부 시절 한완상씨가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대기업 사원 채용 서류에서 학력(학벌) 기재란을 없애자는 의견을 냈다가 당시 경제부총리 진념씨 등을 비롯한 여러 보수적인 언론과 인사들의 비판을 받고 낙마한 적이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 학벌 클럽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학벌 위조 문제가 터지면 당사자의 부정직함을 매도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자도 물론 잘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은 우리 모두 공범자가 아닌가?

누가 윤석화에게 돌을 던지랴

윤석화씨가 연극배우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을 때 가짜 학벌이 작용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벌 사회에서 대학 중퇴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설령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배우로서 실력이 확실하게 입증되었는데 지금 와서 학벌이 무슨 소용이 있나?

결국 윤석화씨가 젊은 시절에 거짓말을 한 것, 또 이를 밝히면서 지나치게 부끄러워하는 것, 이 모두 그 개인의 탓보다는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학벌? 껍데기는 가라. 나라를 위해 나선다는 대선주자가 많은 이 시점에, 왜 학벌 철폐 공약을 내어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주자가 안 보이는 걸까?

덧붙이는 글 | 김윤상 기자는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입니다.


태그:#학력 위조, #윤석화, #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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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사회정의/토지정책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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