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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지고 촉촉한 기장밥
ⓒ 조찬현
순천 상사호 가는 고갯길을 넘다 보면 별미 음식점 '보릿고개'가 있다. 그 옛날 배고픈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네 부모형제들이 넘나들던 고갯길, 그 보릿고개를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우리들은 별미를 즐기기 위해서 찾는다.

'팥칼국수+기장밥'이란 메뉴에 눈길이 멈췄다. 팥칼국수와 기장밥, 그래! 둘은 어쩐지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기본 상차림은 풋풋한 열무김치와 잘 익은 배추김치, 곰삭은 파김치,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매콤한 부추전, 멸치젓갈, 잡채, 커다란 접시에 듬뿍 담긴 4색 나물이다.

팥칼국수는 큰 사기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팥칼국수 한 그릇에 포만감을 가득 담았다. 다소 이색적인 기장밥은 송알송알 노란 작은 알갱이가 한데 어우러져 촉촉하고 차지다.

▲ 부드러움과 쫄깃함에 넉넉함까지 담은 팥칼국수
ⓒ 조찬현

▲ 보릿고개 ‘팥칼국수+기장밥’의 기본상차림
ⓒ 조찬현
옛날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의 별미, 팥칼국수(팥죽)

백과사전에 의하면, <경도잡지>의 기록에서는 동지에 적두죽을 쑤어 대문에 뿌림으로써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고 하였으며, <동국세시기>의 기록에는 상원과 삼복과 동짓날에 적두죽을 쑤어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의 민속에서는 붉은색은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구퇴하여 가내의 안태와 무병을 기도할 때 많이 쓴다고 한다.

▲ 보릿고개 내부 모습
ⓒ 조찬현
보릿고개의 팥칼국수 만드는 방법을 알아봤다. 팥을 물에 불려 뭉근해질 때까지 삶는다. 팥을 삶아 체에 걸러서 나무주걱으로 으깨거나 믹서에 곱게 갈아 팥앙금을 내려 팥물을 만든다. 체에 받쳐 물을 부어가며 걸러낸다. 다시 끓여 냉장고에 보관한다.

팥은 매일매일 하루 사용할 양만 삶아내 재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팔지 않는다. 솥단지에 팥국물을 붓고 끓이다가 팥물이 끓으면 면발을 넣는다. 이때 면이 떠오르면 조금 더 끓이면 된다. 다 끓으면 소금 간을 한다.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어 먹어도 별미다.

팥칼국수에 들어가는 면은 밀가루 반죽을 해 랩에 싸서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어 숙성시킨다. 이집은 냉동실에서 꼬박 하루를 숙성시킨다. 꽁꽁 얼려 숙성시킨 반죽을 미리 녹여서 밀대로 밀어 칼로 송송 썰어낸다. 이렇게 냉동 숙성시켜야 면발의 쫄깃함이 더해진다.

팥칼국수에는 역시 묵은지와 열무김치가 최고다. 다른 반찬 필요 없다. 전라도에서는 통상 팥죽이라 부르는 팥칼국수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옛날 먹거리가 없던 시절에 별미로 먹었던 팥칼국수. 밀가루 음식에는 역시 팥이 들어가야 제맛이라 할 정도로 팥과 팥소는 이제 대중적인 식재료가 되었다.

▲ 4색 나물
ⓒ 조찬현
팥칼국수를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옛 추억이 있다. 가마솥에 넉넉하게 팥칼국수를 쑤어 옛날 고향집 장독대에 올려놨던 팥칼국수, 나이 지긋한 독자들은 벌써 "아~" 하고 감이 올 것이다. 시골마을에서 선남선녀들이 모여 놀다 밤이 깊어갈 무렵 입이 궁금해지면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흉내를 내며 팥칼국수를 서리해먹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이 여름 나이든 부모님 모시고 가 팥칼국수 한 사발 대접해보라.

팥과 기장의 효능

팥은 식욕부진과 피곤을 덜어주고 이뇨작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팥에는 칼슘과 철, 인, 나트륨 등의 무기질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칼륨 함유량은 다른 곡식의 열배에 이른다. 또한 다양한 비타민과 나이아신, 엽산 등이 들어 있다.

팥은 우리 몸의 노폐물과 불필요한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팥으로 신장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기장쌀은 2~3시간 물에 불려 깨끗이 씻어내 찜 솥에 쪄낸다. 기장은 반나절이 지나면 노란색이 하얗고 희끄무레한 색으로 변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기장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기를 돕고 비타민A와 B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단백질과 지질의 함량이 많아 소화가 잘 되고 설사를 그치게 하는 기능이 있다.

▲ 싱싱하고 푸짐한 채소류와 돼지고기 주물럭이 내 맘대로...
ⓒ 조찬현

▲ 비곗살과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져 맛있는 돼지고기 주물럭
ⓒ 조찬현
단돈 5천원으로 셀프코너까지 무한정 이용

팥칼국수와 기장밥의 조화는 '보릿고개' 주인장 박여덕(42)씨의 창작품이다. 옛 어른들이 팥죽을 먹으면 속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팥칼국수와 차진 기장밥을 함께 먹으면 쓰린 속이 다져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두 메뉴를 하나로 묶었다. 손님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사실은 기장이 위장병에 좋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터였다. 이렇게 해서 팥칼국수(팥죽)와 기장밥의 찰떡궁합이 만들어졌다.

보릿고개에 가면 셀프코너가 있다. 텃밭 하우스에서 직접 생산한 상추와 치커리, 적치커리, 풋고추 등의 채소류가 무한정이다. 비곗살과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돼지고기 주물럭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이 업소에서는 그 옛날 보릿고개의 아픔은 더 이상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큐에도 보냅니다.


태그:#기장밥, #팥칼국수, #보릿고개, #별미,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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