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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 사망한 황정일(52) 주중 한국대사관 정무공사의 사인이 병원측의 의료과실 때문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소식통들은 로세핀이라는 항생제는 칼슘성분이 포함된 링거액과는 함께 투여해서는 안 되는데도 병원측의 실수로 인해 이를 맞은 황 공사가 쇼크사한 것 같다고 전했다.

황공사는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은 후 복통과 구토에 시달리다 베이징의 비스타클리닉을 찾았으며 주사를 맞던 중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황공사의 비보에 애도를 표하며 필자역시 중국여행 중 당했던 의료사고를 기록함으로써 중국을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주의를 촉구하고자 한다.

교통사고는 절대 조심

필자는 2005년 7월 연수차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말이 연수지 공로직원들에게 격려차 보내주는 특혜성 해외 관광이었다. 일정은 상하이, 항저우 등 주로 중국의 남쪽지방을 돌아보는 코스였으며 여행 이틀째 되던 날, 하루 관광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가 있는 절강성 항저우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20인승쯤 되는 소형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다음 날의 연수일정을 논의하고자 마이크를 들고 통로에 섰을 때였다. 고속도로를 꽉 매운 채 달리는 차량 사이로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끼어들면서 우리가 탄 버스는 급정거를 했고 무방비상태였던 필자는 그만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70~80년대 우리나라에도 있었음직한 운전석 옆 엔진덮개의 모서리에 늑골을 심하게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한참동안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다가 급하게 차를 몰아 찾아간 곳은 항저우시에 있는 절강대학교 의과대학 제2병원 응급실이라는 곳이었다. 밝은 회색계열의 고층 건물로 10층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러나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선 필자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통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

저녁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벌써 환자와 그 가족으로 보이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의자 하나 없이 어둡고 눅눅한 창고 같은 응급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웅성거리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를 담당할 응급의사는커녕 대기하는 직원이나 간호사도 없었다. 접수를 마치고 땅바닥에 앉을 수가 없어 의자를 찾아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자 작고 허름한 책상 하나를 중심으로 그 앞에 초등학교 걸상 같은 나무 의자에 3명의 간호사가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들어왔느냐는 듯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거친 신음소리를 내도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일행 중 하나가 큰소리로 가이드를 불러 항의를 하자 그때서야 간호사 하나가 마지못해 일어나 의자를 밀어 주고는 선 채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간호사는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았다. 화가 난 일행들이 두리번거리다 불이 조금 밝게 켜진 사무실인 듯한 곳으로 몰려가 문을 두드리며 발로 차자 의사 가운을 걸친 풍채 좋은 사나이가 걸어 나오더니 중국인 특유의 넉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통역과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필자에게 다가와 통역을 통해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는 옆구리를 몇 번 짚어보더니 바로 엑스레이실로 안내를 했다. 가장 기본적인 맥박과 혈압체크도 없었다. 엑스레이는 더 황당했다. 구석기시대(?)에나 사용되었음직한 낡은 기계가 좌우로 몇 번을 오락가락 한 후 내려오라고 하더니 의사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의사가 필름을 들고 나와 형광등 불빛 위에 올려놓더니 통역을 부른다. 의사의 진찰소견은 갈비뼈가 충격으로 조금 눌렸으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내 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 몇 알과 파스가 처방으로 내려졌다.

의사의 말을 믿었던 필자는 파스를 바르고 진통제를 먹자 조금 낳아지는 것처럼 느껴져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심산으로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통증은 계속되었지만 잠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결국 그 독한 중국의 고량주로 통증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가다가도 통증이 심해지면 또 술을 마시고 그러기를 3일째, 필자는 자꾸만 가빠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일행과 함께 푸동공항을 떠나 광주공항에 도착했다. 광주공황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던지 집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필자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결국 수술대 위에 올려졌으며 수술 후에도 폐에 고인 피를 빼내느라 늑골 사이에 호스를 박은 채 40여일동안이나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중국인 의사의 진찰처럼 늑골이 눌린 것이 아니라 늑골 두 개가 부러지면서 실핏줄을 건드려 폐 사이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으며 고인 피가 폐를 압박하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사는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느냐고 화를 냈다.

만약 필자가 중국에서 계속 살아야만 했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황 공사가 변을 당한 병원은 베이징 내 최고의 일류병원이라 했다.

필자가 진찰을 한 곳도 중국 내 5대 명문이라는 절강대학교 의과대학병원이었다. 무엇이든지 큰 것만을 선호하는 대륙기질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건물로만 봐서는 세계 어느 병원 건물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큰 규모였다. 그러나 외양에 비해 의료시설이나 질은 형편이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벌써 2년 전 일이라 지금은 시설이나 의료 수준이 많이 나아졌으리라 여겨지지만 의료서비스가 아니라 국가가 베푸는 의료시혜로 여기는 중국인들, 특히 대학병원의 응급실을 사용하는 그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 정도의 시설만 가지고도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필자가 중국의 모든 병원을 돌아 본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한 명문대학 의과대학의 의료수준이 이 정도일 때 여타 다른 시설들이야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짐작해 볼만한 일이 아닐까?

아무튼 중국에 가서는 절대 아프지 말 일이다. 여행 중 다쳐서도 안 되겠지만 철저한 위생관리로 병원신세를 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일이다.

태그:#황정일, #중국의료, #사망, #주중한국대사관, #정무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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