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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애 언니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지만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 tvn
<내 이름은 김삼순>이후 노처녀를 주제로 한 수많은 드라마가 등장했다.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언니들이 삼순이 언니를 뛰어 넘지 못하고 이복 자매에 머무르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달자의 봄>에서 달자 언니는 삼순이 언니와 미모만 빼고 이복자매로서 닮은꼴이었다.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 언니도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연하남과 연애를 시작한 점 등이 삼순이 언니와 비슷했다.

그래서 노처녀 하면 삼순이 언니로 통하면서 모두들 삼순이 언니를 넘어서지 못했다. 별다르지 않은 캐릭터를 재생산하면서 어느새 삼순이 언니의 아류작이 지겨워질 뿐이다. 그런데 이 순간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욕과 주먹으로 맞서는 영애 언니가 비웃고 있다.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 언니. 그 언니는 삼순이 언니와 닮은 듯하지만 삼순이 언니보다 좀 더 진화된 캐릭터다. 아니 현실적인 우리의 진짜 삼순이 언니가 등장한 것이다. 적어도 우리 삼순이 언니는 덩치는 컸지만 얼굴이 예쁘장했고, 재벌과 첫 사랑이 주구장창 좋다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우리 영애 언니 기본 사이즈부터, 남자 복이 지지리도 없는 모습. 진짜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바라던 언니였다. 그렇다면 우리 영애 언니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만족시켜주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막돼먹은 영애씨] tvN. 2007년 4월 20일-8월 5일(방송종료). 이영애역(김현숙), 이영채역(정다혜), 연하남역(최원준), 선배역(윤서현).

너무나도 리얼한 우리 영애 언니

영애 언니 올해로 속이 아주 꽉 찬 30살. 몸무게는 알 수 없으나, 옷 사이즈가 77이란 것만은 사실. 물론 가끔 66 사이즈도 맞는다. 직업은 광고디자이너(사실 전단지 만드는 회사 디자이너). 직장에서 '덩어리'라 불리며 성희롱을 매번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견뎌낸다. 그 놈의 돈 때문이다. 연애 경험이라곤 딱 한 번 그 마저도 돈 떼어먹고 결혼했다. 성경험 그 나이 되도록 전혀 없다.

작년에 바람 핀 사실이 들통 나 말년을 고생하는 아버지, 기가 점점 세지는 어머니, 예쁘지만 남자 복 없기는 마찬가지인 여동생 영채, 그리고 영화감동 지망생이자 야동 마니아 남동생 영민.

여기까지가 대략 우리 영애 언니의 간단한 프로필이다. 딱 봐도 인생의 갑갑함이 느껴진다.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변변치 않은 회사지만 착실히 다닌 그녀. 돈은 있으나, 남자는 없고, 살은 있으나 미모가 없다.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은 영애 언니다.

삼순이 언니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돈을 모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파티쉐가 되어 돌아왔다. 여기까지만 봐도 영애 언니와 급이 다르다. 영애 언니 대학은 나왔지만 멋진 디자이너를 꿈꾸던 소망과 달리 족발집 전단지 만들고 있다. 그 뿐인가. 삼순이 언니는 결혼 못해 환장했지만 그래도 유학 시절 남자친구가 있었다.

게다가 결말에는 재벌집 연하남을 얻었다. 영애 언니 말한다.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지. 미쳤다고 연하남이 연상을 사귀어!"라고 응수한다. 그렇다 우리 영애 언니는 진정으로 남자 복이 없다. 만나는 남자마다 족족히 영애 언니가 손을 좀 봐줘야 하는 인간들이다.

영애 언니의 막돼먹은 세상 응징이야기

▲ 막돼먹은 세상 속 남자들에게 언제나 응징을 가하는 영애 언니
ⓒ tvn
이렇게 리얼한 우리 영애 언니는 일단 캐릭터 자체부터 삼순이 언니와 이복 자매가 되길 거부한다. 바로 영애 언니는 현실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타지로 대리만족을 시켜주기 보다는 막돼먹은 세상을 향해 응징하는데 두 팔 걷었다.

그도 그런 것이 영애 언니 주변은 늘 손을 봐줘야 하는 남자들로 득실거리고 사회는 막돼먹었다. 회사에선 사장이 '덩어리'라 부르고 여자 앞에서 야동을 보는 선배와 사장이다. 그리고 "같이 볼래? 미리 연습해둬야지~"라며 능글맞은 성희롱을 해댄다.

뻑하면 힘 뒀다 뭐하냐며 생수통 들으라고 난리 치고, 많이 먹는다고 구박한다. 그럴 때 마다 절친한 친구 돌아이가 지원과 응징을 가한다. 응징이라고 해봤자 커피에 침 뱉기, 아이스 커피 탈 때 얼음 발에 문지른 후 넣기 정도. 그리고 그것을 맛나게 먹는 사장과 선배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 뿐인가. 버스에서 엉덩이를 만지고도 더욱더 뻔뻔하게 구는 치한을 만나고, 새벽 기도를 나가는 길에 좀도둑을 만나고, 퇴근길에는 바바리맨을 만난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영애 언니. 그들에게 육탄공격을 퍼붓는다.

버스 치한에게 쓰레기 봉지를 던지며 "야! 이 XX야!"라고 소리치고, 성경책으로 좀도둑 머리를 내리치며 일거에 퇴치한다. 그리고 바바리맨에게는 무표정한 얼굴로 "뭐!"라고 한 마디 하더니, 휴대폰으로 "찍어줄까?"하고 도망가는 그를 쫒는다.

그리고 첫사랑은 돈을 떼어먹고 결혼식장에 나타나 난리 칠까봐 영애 언니를 감금하고, 연하남 도련님인 원준은 그녀의 프러포즈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영애를 다시 불러내 '사귀자'고 이야기해 영애 언니 인생의 봄날이 피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영애 언니. 어찌 응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영애 언니가 사는 세상이 어쩐지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영애 언니가 세상을 향해 복수를 할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대리만족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어도 삼순이 언니가 연애와 결혼 사이를 오가며 몰입했던 그 시기에 영애 언니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세상의 부조리함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삼순이 언니는 연애와 사랑에 있어 일종의 판타지를 만들어 냈지만 영애 언니는 그 판타지를 스스로 부수면서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애 언니는 삼순이 언니와 이복자매가 아닌 진정한 독립된 자아로 거듭났다.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애 언니

하지만 세상을 향해 단호한 응징을 보이는 영애 언니도 세상과 타협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령 회사 사장의 꼬임에 넘어가 새벽기도를 다녀 일을 따오고, 쉬는 일요일 날 회사 사장의 압력으로 등산을 하러 가기도 한다.

▲ 노처녀의 판타지를 걷어내고 현실을 담은 영애 언니 캐릭터는 외려 사랑스럽다.
ⓒ tvn
사장의 성희롱과 바쁜 업무에 스트레스가 쌓인 영애는 회사 동료인 지원과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회사 사장과 선배를 뒤에서 안주 삼아 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평소 영애 언니 성격대로 한다면 당장이라도 사장에게 응징을 가하고 말 것이다.

물론 응징을 가하기는 하지만 이제껏 다른 이들에게 한 것에 비하면 소심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돈을 벌어야하는 현실 때문에 강한 영애 언니도 그럴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다니고, 산을 가면서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기 위해 피곤하지만 부단히 노력한다.

그뿐이 아니다. 원준을 사랑하던 영애 언니가 거절을 당하자, 그것이 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일본여행을 간다고 핑계를 대고 단식원에 들어가 혈투를 벌인다. 살을 빼겠다는 일념 하에 단식원에 들어가 그 좋아하는 밥을 굶으며 노력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영애 언니지만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반쯤 부조리함에 눈을 감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영애 언니가 더욱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은 현실에 대해 좌절하는 법이 없다. 끝까지 항거하며, 무한도전을 펼친다. 그래서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영애 언니에게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그런데 사회 부조리함을 어떻게 쓴 웃음 한 번 짓고 넘길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긍정적인 성격 덕분이다. 비록 남자에 차여 단식원에 가지만 그녀는 역시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도망친다.

그리고 원준과 함께 탈출하고는 있는 대로 먹을 것을 주문하고 먹는다. 제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본능에 충실하는 영애 언니다. 그래서 영애 언니가 현실의 부조리함을 눈감고 벗어나는데 긍정적인 성격이 한 몫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막돼먹은 영애씨>의 인기는 거의 영애 언니의 캐릭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드라마 속 인물들은 단편적으로 그려지면서 청순하거나, 악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노처녀 캐릭터도 삼순이 언니 이후 비슷비슷한 캐릭터가 난무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영애 언니 출현은 드라마 사상 최고의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드라마 속에서 영애 언니 캐릭터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모든 노처녀들의 희망, 영애 언니의 막돼먹은 세상을 향한 고군분투가 기다려진다. 2시즌에서도 맹활약할 우리 영애 언니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막돼먹은 영애씨, #김현숙, #삼순이, #연하남,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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