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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을 앞에 둔 지수
ⓒ 김현

주가지수가 2000을 넘어섰다. 일부에선 너무 과열이라며 묻지마식 투자를 경계하고 나섰다. 일부에선 꿈의 고지인 2000을 넘어 계속 갈 거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들의 말은 그냥 그럴 거라는 말로 들어야 한다.

이들의 말은 시장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흘려버릴 수도 없는 것. 그래서 초보 투자들이나 오랫동안 주식을 해온 사람들도 주가가 올라도 내려도 늘 난감하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은 더욱 그렇다.

보통 주식 투자하면 직접투자와 간접투자가 있다. 직접투자는 증권사 직원에 투자를 일임하는 위탁매매와 자신이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경우가 있고, 간접투자는 보통 펀드에 가입하여 투자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 중 위탁 매매를 가장 위험한 투자라고 말한다.

올해 56세인 P씨는 이 위탁매매를 통해 쪽박을 찼다. 1997년 IMF 직전까지 은행원이었던 P씨는 증권사 직원에게 자신의 전 재산과 빚을 얻어 일임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흔히 말하는 깡통을 찼다. 은행도 그만두었다. 구조조정도 있었지만 빚 때문에 계속 근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로도 그는 주식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결국 하나 남은 집까지 팔아야 했다. 현재 그는 이곳저곳에서 경비직을 전전하고 있다. 지금은 주식의 '주'자만 꺼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가 주식을 하면서 잃은 것은 가족 간의 신뢰와 집 두 채다. 여기에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돈도 주식으로 말아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17평의 2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집이 망하자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아들은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엔 혼자 학비를 벌면서 대학에 다녔다.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휴학을 하고 돈을 벌었다. 그리고 여동생의 학비까지 대기도 했다. 대학생이던 아들이 그때부터 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할 때가 있었다.

그의 아내 또한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음식 솜씨가 있었던 그의 부인은 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학교 구내매점이나 김밥 집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주식에 매달렸다.

그리고 툭 하면 그의 아내에게 온갖 욕을 해댔다. 때론 그의 아내가 몸이 아파 일을 쉬면 돈 벌어오라며 윽박질렀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이들은 엄마한테 아빠하고 그만 헤어지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내 그 말 듣고 충격을 받았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못났어도 아비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던 아이들인데 지 엄마한테 이혼하고 같이 살자고 하는 소릴 듣곤 하늘이 노래지더라구요. 그래서 주식을 끊어야지 하고 마음 먹었죠. 그런데 그게 마약과 같은 것이라 쉽게 안 되더라고."

그 뒤로도 근 1년을 더하다 그나마 쥐꼬리만 하게 남은 돈도 다 날려버렸다. 그리고 부인과 대판 싸웠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주식을 끊었다.

"내 그놈의 것 땜에 잃은 돈이 몇 억 되지. 지금 내 각시 몸무게가 얼만지나 아우. 건강할 땐 60㎏ 정도 했지. 근데 지금 겨우 45㎏ 정도 나간다고 하더군. 그렇게 통통하던 얼굴이 반쪽이 돼버렸어. 일한다고 아파 하혈을 해도 내 모른 척 하기도 했지. 이혼 안 당하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내 그때 증권사 직원만 믿고 다 맡겼는데 돌아오는 건 빈 깡통 소리뿐이더라고."

지금 그의 아내는 일용근로자가 되어 관공서 같은 곳의 잡초를 제거하러 다닌다. 식당 일을 하며 너무 몸이 망가졌다 한다.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도 쉬지 못하고 그래도 나은 공공근로를 한다고 한다.

술잔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짙은 회한에 잠겨 있었다. 주식이 2000 포인트를 넘어 쭉쭉 갈 거라는 소릴 들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했다. 그러나 물을 수가 없었다.

ⓒ 김현

다음은 직장인 K씨의 이야기다. 그의 주식 경력은 햇수로 15년을 넘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주식 베테랑이라는 소리까지 한다. 그의 주식투자 방법은 직접 e-트레이닝을 통해 사고판다.

컴퓨터가 일상화되기 전엔 전화를 통해 주식을 주문하고 팔았다. 한땐 한 달 수익으로 1000만원 이상 벌었던 적도 있었다며 웃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저것 묻는 물음에도 말을 아꼈다.

주식에 베테랑이던 그도 작년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뻔했다. 그도 빚까지 얻어 주식을 했는데 사는 종목마다 바닥을 쳐 많은 빚을 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산 종목은 코스닥 종목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그의 아내 덕분에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김밥집을 운영하는 그의 아내가 돈을 갚아줬기 때문이다.

"내 그때 살이 한 10㎏ 정도 빠진 것 같아요. 덕분에 아는 사람들은 다이어트 잘 했다고 하지만 죽을 맛이었지요."

그러면서 허허 웃는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그는 아직까지 계속 주식을 하고 있다. 요즘은 많이 땄다고 한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주식을 해서 돈을 벌거나 손해를 입은 것을 땄다고 하거나 잃었다고 말한다. 노름판의 언어와 같다. 장기투자를 하는 사람보단 단기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표현이다.

앞으로도 주식을 계속 할 거냐고 물으니 '인이 배겨서…' 하며 웃는다.

코스피지수 2000을 돌파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주식시장에 몰려든다고 한다. 주식을 안 하면 자기만 돈을 못 벌 것이라는 생각에 안정부절 못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지수가 오른다고 모두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GNP가 이만 불, 삼만 불 된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잘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태그:#주식투자, #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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