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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흐르는 구기계곡의 수정보다 맑은 물
ⓒ 이수철
오늘(24일) 산행은 탕춘대능선과 향로봉을 거쳐 비봉능선, 구기계곡으로 잡았다.

서울 종암경찰서 앞에서 7211번 시내버스를 타고 구기터널 앞에서 하차 터널 쪽으로 약 20여 미터 더 가서 우회하니 구기사로 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등산로 좌우 측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등산 초입에서부터 기분 좋은 산행을 예고한다.

구기사 뒷길로 조금 가니 탕춘대통제소가 나왔으며 탕춘대능선 길 좌측은 성곽의 흔적이 있었고, 건너편으로 바라보니 우뚝 솟은 족두리봉이 버티고 있었다. 정면으로는 내가 가야할 향로봉이 보인다. 향로봉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니 비봉능선과 멀리 보현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필이면 내가 쉬는 날마다 비가 와 거의 한 달 동안 산행을 못한 탓인지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피로가 찾아온다.

잠시 휴식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니 향로봉이다. 그런데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바로 오르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초행길인지라 우회하기로 했다. 우회 길을 한참동안 가는데 자꾸만 끌리는 향로봉 능선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마침 좌측으로 사람들이 넘어간 흔적이 있어 슬쩍 통제선을 넘어 암벽으로 올랐다.

▲ 전망대바위로 가기전에 지나온 향로봉을 바라보면서
ⓒ 이수철
암벽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고 능선에 올라서는 순간 여기까지 우회한 것도 후회가 된다. 전망이 너무나 좋았다. 노약자를 위한 안전한 길 안내도 필요하겠지만 암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망이 좋은 만큼 약간 위험한 구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스릴은 있어야 산행의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향로봉을 지나 조금 가니 맞은편에 길게 뻗은 의상능선이 눈앞에 나타났고, 멀리 백운대, 노적봉, 인수봉, 만경대 등을 조망할 수 있는 넓은 마당바위에 여러 명의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고 있었다. 관봉을 뒤로 하고 앞을 보니 내가 가야할 비봉이 지척에 보인다.

지난주에도 비봉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는 했으나 일기예보에서는 한차례 약간의 비가 온다고 해서 오다가 그치려니 생각하고 구기터널입구에서 내렸다.

정류장에 내리니 비는 더 많이 와 피할 수 있는 곳에서 30∼40여 분간 기다렸으나 비는 계속 내려 어쩔 수 없이 돌아가고 말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좋다.

▲ 비봉에서 바라본 구기동 일대와 멀리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
ⓒ 이수철
마당바위에서 잠시 휴식하고 비봉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코앞에 목표물을 두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험로라고는 하나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으로 보아 충분히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고 판단 바로 비봉으로 올랐다.

조금 가파르긴 해도 디딜 곳과 잡을 곳이 있어 쉽게 오를 수가 있었다. 여기서 주변을 살피니 기암들이 즐비하고 능선 아래 구기동과 좀 더 멀리는 세검정 일대의 시가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것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우측에 인왕산과 좌측에는 경복궁과 청와대를 안고 있는 북악산도 보인다.

몇 발짝 더 올라서니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 정상이다. 진흥왕순수비가 어떻게 생겼을까 그동안 많은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복제비를 세워놓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비(碑)가 너무나 깨끗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비(碑) 옆면에 적힌 글을 보니 "이 비는 문화제청이 복제하여 이천육년시월십구일에 세우다"라고 한글로 적혀있었고, 비문 전문은 한자로 쓰여 있었는데 나로서는 판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모양만 대충 훑어보고,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 비봉에 세워져있는 진흥왕순수비
ⓒ 이수철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란다.

현재 이곳에 세워져 있는 비(碑)는 원래의 비가 아니고 원형과 같은 모양으로 원래 세워져 있던 자리에 세워진 모조 비(碑)이다. 원래의 비는 광개토왕비 다음가는 귀중한 금석문으로 1934년에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진흥왕순수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보관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산비는 비를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 오다가 19세기 전반(1816, 순조 16년)에 추사 김정희와 그의 친구 김경연에 의해서 발견되고 판독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 비봉능선의 기암들
ⓒ 이수철
비봉에서 내려와 사모바위 쪽으로 향하는 등산로 옆에는 코뿔소 형상을 한 기암이 버티고 있었으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사모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사모바위 입구는 돌을 바닥에 깔아 정리가 잘되어있었고, 사모바위 주변은 작은 공원형태를 갖추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사모바위가 왜 사모바위인지 궁금 하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일단 바위에 올라섰다.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와 주변 조망하는 사이에 등줄기에 흘러내린 땀이 순식간에 식는다.

▲ 애절한 사연을 안고있는 사모바위
ⓒ 이수철
여기서 그냥 보고만 지나칠 수는 없다. 사모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이러하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호란이 일어나자 남자는 여자를 남겨두고 전쟁터로 갔다고 한다. 전쟁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는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랑하는 그녀는 보이지 않고 전쟁 중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전쟁이 끝났어도 그녀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어 허탈한 그는 당시에 포로에서 풀려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인들이 모여 살던 북한산 자락(지금의 홍은동 주변)을 떠돌며 그녀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그녀가 포로로 끌려간 북쪽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모바위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장군바위, 사각의 바위라는 뜻의 사모바위, 1968년 북한에서 청와대 폭파 기도로 남파되었다가 생포된 무장공비 김 신조의 1차 목적점이었다 해서 김신조바위라고도 한다고 한다.

사모바위에서 땀을 식히고 다음 목적지인 승가봉을 향했다. 승가봉에 도착하여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보니 사모바위와 비봉으로 이어지는 경관은 과연 너무나 아름답다. 비봉능선 좌측 아래는 승가사가 있다.

승가사는 인도의 고승으로 불교 전교에 큰 획을 그은 승가대사를 봉안한 사찰이다. 중국 당(唐)나라에 법을 전수하여 이름을 떨친 승가대사는 인도의 고승(高僧)으로 관음보살로까지 칭송받았다고 하며, 중국 각지에도 승가당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불교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산행에서 만나는 사찰은 그저 편안하고 아늑하며 그 안에는 평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 비봉능선의 석문
ⓒ 이수철
산행을 하다 보면 어떨 때는 주변에 바위도 없고 나무가 시야를 가려 조망하기도 불편한 산행을 긴 시간에 걸쳐 할 때가 있다. 이러한 산행은 정말 지루하다. 그래서 인기 있는 유명 산들은 대부분 암봉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북한산도 유명임이 증명된다.

바위산을 타다 보면 가끔 석문(石門)을 만나게 되는데 석문을 지날 때면 뭔가 모르게 나 자신이 새롭게 되는 것도 같고 석문을 통과하면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석문을 지나면 좋은 일이 생기를….

이곳 석문을 지나 어느새 문수봉에 도착했다. 지친 몸도 쉬어야 하겠지만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부터 채우기 위해 좋은 자리의 식당을 찾았으나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 적당한 곳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했다.

비봉능선을 아름답게 장식한 기암들과 첩첩이 쌓인 북한산의 웅장하고 멋진 모습에 감탄하면서 오다 보니 대남문이다. 이제 힘든 구간은 다 지나왔고 하산할 일만 남았다.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은 문수봉에서 대남문 구간만 빼고는 모두가 초행길이다. 하산길인 구기계곡 역시 처음 가는 구간이라 기대된다.

▲ 대남문과 구기계곡으로 향하는 계단길
ⓒ 이수철
대남문 누각에서 내려와 성문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잘 드는 성곽 아래에는 야생화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비봉능선 곳곳에서도 야생화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주로 바위채송화, 자주꿩의다리, 돌양지꽃, 등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패랭이꽃, 하늘말나리, 솜나물, 좀깨입나무. 큰뱀무 등의 야생화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하산 길은 보현봉을 좌측으로 끼고 나무로 만든 긴 계단 길로 이어져 있다.

요즘 계곡에는 어딜 가나 물이 풍부하다. 빨리 물을 만나 시원한 족탕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가도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한참을 걸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든가 푸르디푸른 물이 나타났고 와∼!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알탕을 즐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아쉽게도 출입통제 푯말이 나를 붙들었다.

▲ 계곡의 맑은 물과 물고기 피래미때
ⓒ 이수철
물을 보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맑은 계곡물은 즐거이 노래를 부르며 계속 흐르고 있었고 손가락보다도 큰 피라미들이 청정수임을 증명하고 있다. 구기통제소를 지나면서 경치 좋은 계곡 양쪽에는 음식점과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없어야 할 곳에 없을 것이 있으니 안타깝고 여기서부터 계곡은 오염의 시작이다. 물밑 돌들의 색깔이 다르다. 장마로 인하여 수량이 많아 물이 맑게 보이기는 하지만 돌들에 검은 이끼가 많이 낀 것으로 보아 오염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구기통제소
ⓒ 이수철
이번 비봉능선 산행을 하면서 서울에 이런 멋진 산이 있고 또한 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다행이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산을 그리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의 기다림은 산이고, 산이 있기에 삶에 활력소가 되고 자연과의 만남이 있어 나는 기쁘게 산다.

태그:#진흥왕순수비, #향로봉, #비봉, #문수봉, #사모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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