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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전재고개를 넘어 안흥으로 들어서고 있다.
ⓒ 박도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것이 진보다

▲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로고.
ⓒ 박도
부자가 되어서 행복해졌습니까
경쟁에서 승리해서 행복해졌습니까
생활이 편리해져서 행복해졌습니까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것이 진보다.
품위 있는 삶이란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고, 내 것을 이웃과 나누며, 남을 존중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며, 이 세상 모든 분에게 고마워하며 사는 삶이다.


탁발승이 남기고 간 말씀들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지금 강원도 일대를 지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4년부터 4년째 2만여 리 길을 걸으며 5만여 명을 만나면서 전국을 탁발순례하고 있는데, 6월 26일에 내가 사는 횡성군에 오셔서 여드레를 머물고, 그제(7월 3일) 원주시로 떠났다. 횡성 군내를 순례하는 기간 가운데 6월 28일은 우리 마을에 온다는 소식에 이웃면까지 찾아 나섰다.

▲ 횡성유기농영농조합장 원종욱 원순아 부부와 덕담을 나누는 도법 스님(가운데).
ⓒ 박도
우리 내외가 우천면 두곡리 마을에 가자 순례단 일행은 친환경 도정공장을 둘러보며 원종욱 횡성유기농영농조합장과 친환경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환경농업이야말로 뭇 생명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농촌과 농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면서 덕담을 나누고는 가까운 자작나무 숲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딴 산골의 자작나무 미술관은 초록에 한껏 채색되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도법 스님은 원종호 관장에게 문화의 사각지대인 시골에 훌륭한 미술관을 세운 데 감탄하시면서 "생명이 숨 쉬고 평화가 깃든 우리 시대 고향의 보금자리로 빛나길…"이라는 방명록을 남긴 뒤 자작나무 수액을 한 모금 탁발하고는 다음 행선지로 옮겼다.

순례단, 마을주민, 농활 온 대학생들과의 간담회

이날 '생명평화탁발순례단'에는 횡성 동화 읽는 어른모임 회원들도 동참하였는데, 자작나무 숲 미술관에서 42번 국도까지는 흙길이라 더욱 정감이 갔다. 새말 막국수 집에서 공양을 들고 전재를 넘어 안흥으로 가는데 흐릿하던 하늘은 좀 더 참아주지 않고 기어이 비를 쏟았다.

안흥에 이르자 순례단을 멈추게 한 곳은 안흥 찐빵 집이었다. 주인이 탁발한 찐빵으로 빗길 행군에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장대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날 묵을 상안1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상안1리 마을회관에는 이미 인하대학 농활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탁발 순례단이 어찌 좁은 잠자리를 가리겠는가.

▲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자작나무 미술관에서).
ⓒ 박도

이 날 밤 마을회관에서 순례단, 마을주민, 농활 온 대학생들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야기의 초점은 피폐한 농촌문제. 도법 스님은 정치지도자를 원망하거나 그들에게 시혜를 바랄 것이 아니라, 농민 개개인이 각성해야 하고 농촌마을이 풀뿌리 민주주의 공동체로 거듭나야만,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원론적인 스님의 말씀에 실망한 농민들의 반론도 있었다. 농민들은 '자기 지역인물을 키우지 않고, 자기 자식에게 농부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한 농촌은 회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농민들의 생활철학 빈곤을 말씀했는데, 농민들의 귀에는 그 말씀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걸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홀가분해진다

▲ 도법 스님의 뒷모습.
ⓒ 박도

이튿날은 이웃면인 강림면 순례인데 길잡이가 잠자리를 걱정하기에 내가 나서 폐교에서 도자기를 굽는 한국공예원 서성덕 원장에게 부탁드리자 흔쾌히 수락하여 인사도 드릴 겸 다시 순례단을 찾았다. 이 날 밤은 공예원 수강생들과 '즉문즉설(卽問卽說)'이 있었는데 도보순례, 곧 '걸음'에 대한 말씀과 다른 좋은 말씀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환자들이다. 이러한 모든 병은 걸으면 저절로 고쳐진다. 걸으면 자기의 내면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린 아이일수록 걸어야 한다. 걸으면 삶이 단순해지고 홀가분해진다.

현대인들은 정작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무지하다. 걸으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또 탁발은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다. 걸어서 찾아가는 게 가장 진정성이 있는 태도다.

밥과 똥은 분리시킬 수 없다. 이는 연못이 있어야 연꽃이 피는 이치와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밥과 똥을 분리시키며, 똥은 더럽다고 숨기려고만 한다.


7월 3일 아침 횡성군청 옆 3.1 공원에서 생명평화 백배서원 절 명상을 끝으로 횡성군 순례일정을 모두 마치고 점심을 드신 뒤 원주로 떠나셨다. 나는 순례단을 따르면서 귀를 쫑그리고 열심히 들으면서 부지런히 메모하였건만 글로 옮길 수 없었다. 아마도 내 수양이 부족한 탓인가 보다. 도법 스님에게 오는 겨울 실상사로 찾을 테니 사나흘 말씀을 들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다시 인연이 이어질지 모르겠다.

현대문명이라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이 세상의 생명을 파괴하고 세계의 평화를 깨트리고 있다. 소유의 논리와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자연과 농촌과 농업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누가 이를 말하고 치유할 것인가?

멀어져가는 순례단의 뒷모습이 초고속으로 달리는 KTX 열차의 제동장치와 같기도 하고, 썩어가는 이 사회에 부패를 방지하는 한 줌의 소금 같기도 하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그들의 고행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 이나마 생명이 숨 쉬고 평화가 유지되나 보다.

▲ 횡성을 떠나면서 ‘생명평화 백배서원 절 명상’을 하는 순례단.
ⓒ 박도

덧붙이는 글 |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종교를 초월하여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지역 순례 일정 및 자세한 순례단 소개는 www.lifepeace.org로 볼 수 있습니다.


태그:#탁발순례단, #생명평화, #도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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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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