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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인정전
ⓒ 이정근
밤 사이에 또 다시 왕권의 상징 국새가 세자궁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궐은 술렁거렸다. 입궁한 대소신료들은 망연자실했다. 특별한 대책이 없는 공방전에서 전위를 거두어 달라고 주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간(臺諫)에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시고 아직 노년기에 이르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자는 나이 아직 어리고 학문도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갑자기 대위(大位)를 내놓아서 어린 세자에게 맡기려 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인심을 굽어 살피시고 하늘의 뜻을 우러러 따르시어 신민(臣民)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대간에 이어 당대의 문필 길창군 권근이 장문의 상서(上書)를 올렸다.

"세자께서 비록 총적(冢嫡)이라 하더라도 아직 어리고 약하시어 하늘의 뜻이 아직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뜻을 어기고 중심(衆心)을 어기면서 억지로 어리고 약한 자에게 나라를 전해 주려 하시니 이것은 종사를 가벼이 여기고 버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고 자세히 살피시어 나라를 편안케 하소서."

주나라의 쇠(衰)함과 당나라와 송나라의 전위 파동, 그리고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이 나이 어린 얼자(孽子)에게 전위하고 화난을 맞아 결국 아사(餓死)한 역사적인 사건을 나열하며 전위를 거두어 줄 것을 간곡히 주청했다. 태종 이방원의 가슴에 뭉클하게 밀려오는 것이 있었다.

정상정복은 하산을 완료했을 때 완성된다

"역사는 무서운 것이다. 역사가 두렵기 때문에 이렇게 전위하려 하지 않은가? 내 일신의 부귀영화와 평안을 위해서라면 왕좌에 눌러앉아 있어야 하지만 내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면 내 후대가 반석 위에 있어야 하지 않은가. 목숨 붙어 있을 때 전위하여 반석 쌓는 일에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데 왜 이리 말들이 많은가?

내가 죽어서 용상으로부터 내려와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아니 될 말이다. 살아생전에 내려와 후대가 가는 길을 지켜보리라. 그래야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신하들이 답답하구나. 이렇게 많은 신하들 중에 내 뜻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등극 이후 태종 이방원은 그의 사후 역사가 그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위식에서 '정상은 내려가기 위하여 존재한다'라고 선언한 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상정복은 하산을 완료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며 역사관이었다.

후대에 따라서 자신이 만고의 역적이 될 수도 있고 국운을 개척한 혁명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역사관이었다.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자신과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한 묶음으로 묶여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올바로 평가받으려면 후대의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태종 이방원의 계책은 생전 선위(禪位)였다.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태종 이방원은 이숙번을 비밀리에 불렀다.

"밤마다 꿈에 모후를 뵈었는데 우시면서 나에게 고하기를 '너는 나를 굶기려 하느냐?' 하시니 내 아직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다."

"전하께서 만약 약하고 어린 세자에게 전위하시면 종사(宗社)가 보전되지 못하여 모후께서 굶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모후께서 정녕 고하시기를 '전위(傳位)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전위는 신인(神人)이 모두 싫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세 번 더 생각하소서."

"내가 내 자식에게 전위하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은고?"

"'지자(智者)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자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좋은 수를 얻는다'고 하였으니 신 등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하나 어찌 한 번의 득(一得)을 보는 소견(所見)이 없겠습니까? 모든 사람의 말이 한결 같은데 전하께서 어찌하여 윤허하지 않으십니까?"

"오늘의 일은 반드시 경이 내 말을 누설하였기 때문이다."

"일이 종사(宗社)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뜻이 벌써 정해졌으니 고칠 수 없다."

▲ 명을 거두어 달라는 신하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는 재연 장면입니다.
ⓒ 이정근
편전에서 나온 이숙번은 기다리고 있던 대신들에게 임금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어머니의 꿈 얘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희망적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태종 이방원은 어머니에 약했다.

"근일에 내사(內史)가 환도(還都)할 때에 전하께서 반드시 의장(儀仗)을 갖추고 그를 맞이해야만 하는데 국새가 없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륜이 사신 환송연을 거론하며 임금을 압박했다. 때마침 명나라 내사(內史) 이원의가 들어와 귀국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명나라 사신이 귀국하면 영빈관에서 성대한 환송연을 베풀어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인소전(仁昭殿)으로 나가겠다. 생(栍)을 알아본 뒤에 계책을 정하겠다."

어머니를 모신 사당에 들어가 점을 치겠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전위를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임금의 권위에 손상이다. 점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여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다. 인소전 방문은 점이 아니라 임금의 면피용이다. 생은 점을 칠 때 점괘를 적은 대쪽을 담아두는 통을 말한다.

"위의(威儀)에도 국새(國璽)가 없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하륜은 집요한 인물이다. 태종 이방원이 한발 물러서자 빈틈을 주지 않고 계속 밀었다. 마음 변하기 전에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인소전 방문에도 국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륜은 인간 이방원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용의 발톱이 꼼지락 거리다

결국 임금이 왕위를 세자에게 전한다는 명령을 거두었다. 태종 이방원은 지신사겸상서윤(兼尙瑞尹) 황희, 소윤(少尹) 안순에게 명하여 국새를 받아 상서사(尙瑞司)에 들여놓게 하였다. 8일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끝난 셈이다. 전위파동은 백성들에게 웃음거리였지만 태종 이방원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종친, 원훈, 기로, 문무백관이 창덕궁 뜰로 나아가 도열했다. 세자 양녕대군이 국새(國璽)를 받들고 전상(殿上)에 놓았다. 용상에 앉은 태종 이방원은 도열한 문무백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차가웠다.

"여기 반열한 신하들 중에 나의 후대를 지켜줄 위인은 몇이나 되고 누구누구인가?"

용상에 앉아 있는 태종 이방원은 도열한 대소신료들의 얼굴을 낱낱이 살피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자가 없는 것은 어인 일인고? 이 자는 자신의 권세를 위하여 나의 선위를 반겼단 말인가? 으음, 괘씸한지고..."

열기 가득한 호흡을 토해내던 태종 이방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용의 발톱이 꼼지락거렸다. 피를 부르는 움직임이었다. 용의 발톱이 꼼지락거리면 피를 부른다.

태그:#선위, #전위, #이방원, #양녕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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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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