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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즙은 듯 고개숙인 털중나리
ⓒ 조도춘
23일 토요일, 주말 아침이다.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오락가락하던 비가 잠시 그쳤다. 먼 산에 안개가 자욱하다. 갑자기 3일 전에 보았던 털중나리가 생각이 났다. 주황색 고은 꽃잎을 가지고 있는 예쁜 모습이 생각나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달려갔다.

털중나리를 만난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오다가 잠시 그치고 산 위쪽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평평하다 가파른 길을 만나면 숨을 헉헉거리며 땅만 쳐다보다 가는 산길에서 만난 털중나리. 키가 큰 녀석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긴 목을 내밀고 꽃송이는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어 너무 인상적이었다.

▲ 칡잎의 작은 물방울
ⓒ 조도춘
산길로 접어들자 어젯밤 내린 비가 나무 잎과 줄기에 투명하고 작은 구슬방울이 되어 걸려 있다. 바람이라도 조금 불면 금방이라도 영롱한 소리를 내면 아래로 굴러 갈 것만 같았다. 일찍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이 내려오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해 9월 보라색의 도라지 모시대 꽃의 매력에 빠져 찾아 갔던 그 산길. 어느 날 누군가 뿌리 채 뽑아갔던 그 웅덩이 빈자리를 보며 황망해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벌써 3일이 지나서 녀석도 이 산을 찾은 사람들에 벌써 도륙되지 않았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마 비로 산길은 축축하게 젖어 있어 미끄럽다. 박새의 노래 소리는 안개 자욱한 숲 속에서 더 잘 들려온다.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한 지 20여분 저 멀리 아직도 건재한 녀석의 모습이 보인다.

▲ 털중나리
ⓒ 조도춘
지금도 누구를 기다리나 숲 속 우뚝 솟은 키 큰 녀석은 유난히 눈에 잘 보인다. 그 자리에 건재한 모습에 너무 반갑다. 꽃잎에는 비가 촉촉이 젖어 있다. 물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줄기는 아래로 축 처져 있다.

예전에는 산지에서 흔하게 만나는 꽃이라고 한다. '나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줄기 따란 작은 잿빛 잔털이 송송 솟아 있어 꽃과는 달리 '털중나리'라고도 한다. 백합과에 속하는 녀석은 키가 1m 가량 되어 꽃이 피기 전에는 초록 숲 속에 감춰져 있지만 꽃이 피면 쉬이 발견할 수 있다.

유난히 긴 암술과 수술. 하나의 암술을 여섯 개의 수술이 감싸고 있다. 오렌지색 꽃송이 밖으로 나온 긴 꽃술은 기다란 수염 같다. 얼굴의 죽은 깨처럼 꽃잎 안쪽에는 검은빛 또는 자줏빛 반점이 있지만 흉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 엉겅퀴
ⓒ 조도춘
▲ 큰 까치수영
ⓒ 조도춘
이 산에는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 꽃이 핀다.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는 산기슭에는 보라색 꽃창포가 다소곳이 피어 있다. 큰 까치수영은 여름날 행사라도 하는 양 하얀 무리지어 꽃송이를 피웠다. '털중나리'에 이어 곧 '원추리'가 피어날 것이다. 생각나면 달려 갈 수 있는 작은 산. 늘 갈 수 있는 산은 작은 행복을 주는 소중한 보고(寶庫)다.

▲ 준호네 가족"숙제로 제출 할 사진입니다."
ⓒ 조도춘
아들숙제 해주기 위해 아침 일찍 산을 찾은 이인기(46)씨 가족을 만났다. 산길을 잘못 들어 1시간이 넘게 산을 올랐단다. 아들 준호의 이마에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준호(고1)는 한 학기에 가야산을 4번을 올라야 하는 학교 숙제가 있다 한다. 같이 숙제를 해주는 엄마 아빠가 고맙단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것은 싫단다.

산을 싫어 한다는 준호의 말에 엄마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힘든 게 싫은 거지, 산이 싫은 게 아니지."
"네."

준호는 엄마의 말에 동감을 한다. 오늘은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행을 하였지만 산을 싫어 한다는 준호에게도 힘든 것만 빼면 산은 좋은 친구란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됐습니다.


태그:#털중나리, #가야산, #광양, #엉겅퀴, #까치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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