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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경
쪽동백, 부를수록 살가운 이름입니다. 지금 북한강 상류 깊은 산 계곡엔 쪽동백이 피어나 하얀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서 보듯 꽃물이 다소곳하고 씨가 작아 '쪽'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엊그제 내린 비로 푸른 숲은 더욱 파래 쥐어짜면 파란 물이 죽죽 흘러내릴 것만 같고, 콸콸 쏟아지는 개울물 소리는 듣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쪽동백 가지마다 꽃망울이 졸망졸망 매달려 하얀 구슬을 꿰놓은 듯 달랑거립니다. 며칠 전 초파일 절집에서 본 연등만큼이나 숲 속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쪽동백은 꽃망울 수만큼이나 많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계곡 주변에 살기 때문에 '계곡림', 열매로 머릿기름을 짜내면 '산아주까리', 잎이 넓어 '넙죽이 나무', 동백기름보다 값이 싸 '개동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기름을 짜 머릿기름으로 바르기도 하고, 비누와 향료는 머릿속 서캐와 재래변소를 소독하기도 합니다.

꽃 몽우리가 피어날 땐 방울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옥령화(玉鈴花)'라 부릅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행여 구슬소리가 나나 귀를 기우려 봐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은은한 향기가 솟아 코끝을 스쳐갑니다. 이맘때 꽃이 다 그렇듯 숲 속에 파묻힌 꽃물 속으로 벌 나비를 불러들이자면 특이한 냄새로 유혹을 해야 합니다.

ⓒ 윤희경
오늘(26일) 보는 하얀 꽃 몽우리 속에선 젖 물이 흘러내립니다. 만지면 무너져 내릴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건드리면 터질까 가까이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빵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은 완벽한 소녀의 앞가슴입니다. 하얀 웃음으로 방긋대다 노란 꽃술을 달고 피어납니다.

강원도는 산 높고 골 깊어 물이 흔타 보니 한(恨)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농촌에서 처녀 총각이 만나 비밀스레 사랑을 키우기란 힘든 법입니다. 강원도 정선 여량 처녀와 유천골 총각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강물은 늘 위험한 존재요, 사랑의 걸림돌입니다. 여름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뱃사공의 신세를 져야 합니다. 뱃사공이 없으면 두 사람의 사랑은 쪽동백 꽃잎처럼 가녀린 몸짓에 불과합니다.

ⓒ 윤희경
이른 봄부터 유천골 총각은 한 번 만나자 보챘지만, 처녀는 남의 눈도 있으니 모내기가 끝나고 쪽동백이 필 때까지 기다리라 했습니다. 총각은 쪽동백 잎이 나올 무렵부터 동백나무 때깔을 살폈습니다. 마침 쪽동백꽃이 꿈처럼 피어나고 내일이 처녀를 만나자 한 날입니다.

초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가와도 많이 내립니다. 이른 아침, 나루터에 와보니 폭우로 강물이 불어 나룻배를 건널 수 없습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 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만
잠시 잠깐 임 그리워 난 못살겠네.

-정선아리랑 '애정편'


원수의 장대비, 어우러져 가는 시뻘건 강물 앞에 애절한 사랑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뱃사공에게 무슨 허물이 있으련만, 애원도 하고 발버둥도 쳐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법, 사공은 그저 하늘만 쳐다볼 뿐 뾰쪽한 수가 없습니다.

ⓒ 윤희경
쪽동백 함빡 피어나 사랑의 깊이를 더해 가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유천골 총각의 한숨소리가 지금도 쪽동백 속에서 하얗게 피어나올 듯합니다.

얼마 전 정선 5일장 관광열차를 타고 처녀 총각의 사랑이 흘러내리는 아우라지를 다녀왔습니다. 창극 정선 아리랑도 보고 창극에 나오는 '싸리 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는 푸념과 발버둥이 아쉬워 오늘도 쪽 동백 밑에서 자꾸만 정선아리랑을 흥얼거려 봅니다.

하얀 꽃물과 노란 꽃술로 5월 신부에게 부케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꽃이 곱다 하여 함부로 대하다가는 큰 코 다치니 조심할 일입니다. 잎사귀는 톡 쏘는 독성으로 짓이겨 개울물에 뿌리면 물고기도 정신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계곡물이 콸콸 솟구치고 방울이 튀어 폭포가 일 때마다 잎이 살짝 뒤집혀 회색빛으로 반짝거립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쪽동백, #정선아리랑 애정편, #아우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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