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는 인간의 휴식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비록 말도 안 된다 할지라도 꿈까지 꾸지 못한다면, 인간은 더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쉬어야 하며, 꿈꾸어야 한다. 물론 유치한 것은 사실이다. 이 이상 유치할 수가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유치함이 때로는 희망을 주며 활력소가 된다. 대리만족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장르는 그 '판타지'에 영원한 빚을 지고 있다. 거미줄을 쏘며 악당을 물리치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 힘을 빌려 거대악당을 물리침으로써, 현실에서는 동네 불량배조차도 쉽게 이기기 어려운 우리를 위로한다.

중국의 무협영화는 힘은 다소 약할지라도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정의의 문파가, 악한 주제에 힘까지 센 라이벌 문파를 이긴다는 설정을 주로 차용했다. 홍콩에서는, 주윤발로 대표되는, 시궁창 속의 품위의 남자를 주인공 삼아 수백 명의 악당들을 우수수 쓰러뜨린다.

물론 주인공은 여러 발의 총알을 맞고도 대체 언제 죽는지 관객의 인내심까지 시험하지만, 그 시절의 수많은 남성들은 그 유치함을 뒤로하고, 이 품위의 사내를 사랑했으며,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본 남성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 처절한 표정과 함께 팔을 부르르 떠는 장렬한 최후, 눈을 잃고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지 못해 비통해하는 남자,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 창조한 이 판타지에 안주해버리고 말았다. 이 '안주'의 폐해는 아직 유효하다. 판타지가 아무리 화려하다 할지라도 반복되면 심심해진다는 이치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전설의 액션스타 원화와 견자단, 신진 스타 사정봉과 여문락 등 3대에 이어지는 스타들이 등장하는 <용호문>이 10일에 개봉했지만, 확실히 기대는 예전만 못하다. 결여된 도전정신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꺾게 마련이다.

원화로부터 여문락까지, <용호문>에 등장하는 3대의 스타들

▲ <용호문>
ⓒ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이소룡의 대역 스턴트맨으로 데뷔해 주성치의 <쿵푸 허슬>에서도 관록을 과시한 쿵푸의 달인 '원화'.

10여 년 전, 매주 금요일 밤에 방영했던 드라마 시리즈 <정무문>을 기억한다면 누구라도 반가워할 '견자단'. <무극>에 출연하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정봉'과, <무간도2>에서 데뷔한 뉴페이스 '여문락'.

이들 모두는 중국과 홍콩 영화를 통틀어 과거와 현재를 지탱했고, 미래를 책임질 주역들이라 할만 하다. 필자 개인적으로 <용호문>을 주목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관록과 패기의 만남은 언제든 흥분되게 마련이다.

<용호문>은 특이하게도 시간과 공간의 배경을 어긋나게 설정함으로써, 나름의 센스를 과시한다. 으리으리한 중국풍의 배경과 거리를 을씨년스럽게 묘사했지만, 견자단은 회춘을 시도하듯 후배들과 어우러져 20대의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늘어진 머리는 관객을 과감하게 '압박'하는 역효과를 누린다. 견자단은 이제 무술로도 모자라, 머리로도 관객을 '관광 보내려' 하는 것이다.

<정무문>의 '진진'은 이소룡과 이연걸의 것이기도 했지만, 견자단의 것이기도 하다. 그 카리스마를 기억하는 이상, 그 회춘 시도는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실 3대의 스타들이 출연하면서 흥미가 느껴지긴 했지만, 이야기 구도는 홍콩풍 무협액션 영화의 구태의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쉬움을 유발한다.

<용호문>에서는 과거의 장르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의의 문파와 악당 문파가 나누어져, 악당 문파가 정의의 문파를 '관광 보내려' 애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웅본색>이 그러했듯, 동생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반면에 어둠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형은 과거의 추억과 번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면도 보여준다.

이 멋진 남성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 캐릭터, 위력적인 악을 물리치기 위해 속세를 떠난 재야의 고수에게 필살기를 전수받는 정의의 사도들. 그러면서 이어지는 최후의 일전.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아쉽게도 홍콩영화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뻔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도 견실했다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호문>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신파'는 '신파스럽게' 찍는 그 순간, 관객의 비웃음을 유발한다. 홍콩 영화가 시대가 지나면서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지만, 그들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 견자단, 사정봉, 여문락은 '앞머리 브라더스'를 결성했다. 그중에서도 관록의 리더 견자단의 앞머리가 단연 '압박'이다.
ⓒ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우리는 <옹박>을 맛보았었다

<용호문>의 액션은 화려하다. 원화와 견자단의 관록 있는 액션과 신진배우들의 패기 어린 액션은 분명히 맛깔스럽지만, 촬영의 미숙함 때문인지 와이어가 눈에 훤히 보인다. 물론, 중국풍 액션이란 어차피 그런 성격의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태국에서 불어온 강력한 액션 바람 <옹박>을 맛본 사람들이다. 와이어와 스턴트맨 없이 뼈와 피가 부딪치는 살벌한 무에타이의 세계에 환호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우리의 눈앞에 와이어가 노출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성에 차지 않는다.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우리에게, 과거의 안이함을 슬쩍 노출 시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우리 영화 <짝패> 역시 몸과 몸이 부딪치는 처절한 액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 와이어가 너무 쉽게 노출돼 아쉽다. <옹박>을 보았기에 높아진 우리의 눈으로 볼 땐, 성에 차지 않는다.
ⓒ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과거의 중국 영화는 김용 원작의 <동방불패>와 <동사서독>, <소오강호>로 대표되는 멋진 무협 이야기가 있었다. 그뿐일까? <정무문>으로 대표되는 현란한, 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은 절도있는 액션이 있었다.

보다 '사실에 가까운 가상'을 원하는 우리의 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옹박>은 멋진 선물을 안겼지만, 과거의 향수를 무너뜨리는 슬픔을 안겨준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눈이 높아진다는 것, 그리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 그렇듯 과거의 추억을 코미디로 만들어버리기에 슬픈 이면도 있다.

궁핍할 때 어렵게 사먹었던 단 한 그릇의 자장면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하지만 용돈이 풍족하게 생기면서 다시 사먹었을 때 그 죽이는 맛을 느끼기 어려웠던 이치와 같은 것은 아닐는지. <용호문>은 그래서 슬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5-10 19: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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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문 견자단 정무문 무협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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