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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의 기록이다. 원정대(대장 박상수)는 3월 28일 한국을 떠났으며, 4월 9일경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 뒤 '에베레스트' 등반대와 '로체' 등반대로 나뉘어, 4월 11일경 동시에 등반을 시작한다. 원정대는 5월에 에베레스트와 로체 정상에 오를 계획이다. 이 원정대에는 지난 90년 맥킨리 단독등정에서 사고를 당해 열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씨가 부대장으로 대원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이 기사는 원정대 홍보담당대원으로 따라간 이평수 기자가 현지에서 직접 작성해 송고한다. 이 기자는 원정대가 귀국할 때까지 원정대의 일상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로체부터 친다"는 4월 29일의 결정이다. 결정하면 한다. 베이스 캠프(5400m)에서 로체정상(8516m)까지 엿새만에 드디어 강연룡 로체원정대장, 김미곤·윤중현 대원이 정상에 섰다. 아니, 안겼다. 크디큰 에베레스트 어머니의 왼편 무릎에 귀여운 아기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안겼다. 자랑스럽다. 강연룡·김미곤·윤중현.

그 영광에는 수백미터 아이스폴에 켜켜히 쌓인 눈시루떡 마냥 많은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또 산에 미쳐나간 그 잘난 아들이 집을 떠난 날부터 주름진 얼굴에 마음 졸이며 태워 보낸 어머니의 그 아픈 세월이 녹아 있다.

그리고 정상에 선 대원들이 산과의 질기디 질긴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 국내외 산에서 선후배와 함께 피와 땀으로 보낸 시간들을 합하면 그 영광은 차라리 사나이의 볼을 타고 흐르는 한줄기 눈물이다. 또한 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을 비롯한 가족들의 성원 결과다.

[4월 29일(D-5)] '통조림·무우말랭이·산소통'... 정상까지의 짐을 싼다

박 대장의 결정으로 며칠간의 강풍과 악천후로 휴식을 마친 캠프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통조림·무우말랭이·산소통….' 식량담당 박남수의 수첩에는 각종 장비와 품목이 하나하나 기록된다. 장비담당 윤중현·박남수, 로체원정대장 강연룡, 세르파의 목소리로 캠프가 떠들썩하다. 짐을 올리는 분주함이다.

C2·C3·C4에 장비를 갖다 두고 정상 공격까지 사나흘 정도 7명의 대원과 5명의 세르파가 먹고 자는 것과 정상까지 사용할 로프 등 각종 장비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원정대가 서울을 출발한 지도 1달이 훌쩍 지났다. 처음 20여명의 인원에서 이제 8명의 대원(대장 포함), 2~3명의 한국인 지원조. 5명의 세르파, 요리사 등 주방요원 5명으로 캠프의 인원이 정리되었다.

톱니바퀴 돌듯 일이 착착 진행된다. 대부분의 활동이 정상등정을 위한 일 하나로 수렴하면서 긴장감이 돈다. 이날 저녁. 전체회의가 열렸다. 로체원정대장인 강연룡의 일정보고와 박 대장의 지시가 있었다. 우선 로체 등정에 전력을 다하자는 내용이다.

[4월 30일(D-4)] 라마제단에서 안전을 기원하며

아침 4시 기상. 나는 김홍빈 원정부대장과 함께 자고 일어났다. 김홍빈은 에베레스트 등정이 목표다. 텐트에서 눈을 뜨자마자 그가 녹음해온 장윤정의 트로트가 낭랑하게 잠을 깨운다.

김홍빈은 손가락이 없지만 대부분의 옷매무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스스로 대충 해결한다. 양말과 보온신발 끈을 단단히 매어주고 우모복 지퍼를 채워 주었다. 괜히 짠한 생각이 든다.

김홍빈은 "이번 올라갔다 오고 한번만 더 올라가면 에베레스트 정상등정입니다"를 두 번 세 번 혼잣말로 되새긴다. 로체는 에베레스트에 집중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서 먼저 때리는 것이기 때문에 김홍빈에게는 C3 정도까지만 고소 적응과 팀플레이를 위해 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번 출정이 원정대의 최종 목표인 에베레스트 정상등정이다.

텐트를 나서니 의외로 포근하다. 베이스캠프 앞 푸모리봉이 구름에 덮여 약간 흐리다. 이런 날씨가 오히려 등반에는 좋다. 대원들이 오를 아이스폴 쪽을 보니 새벽 3시에 짐을 지고 먼저 출발한 우리 세르파의 헤드렌턴 불빛이 아이스폴 7부 능선쯤에서 반딧불 모양으로 비친다. 빠르다.

이내 전 대원이 식사를 마친 시각은 새벽 5시 5분쯤. 벌써 훤하다.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라마제단에 가서 안전기원 의식을 마치고 아이스폴로 나섰다. 박 대장과 거의 1시간을 우리 대원들이 간 아이스폴 쪽을 지켰다. 망원경에 들어 온 우리 대원들의 앞뒤로 새까맣게 많은 원정대원들이 줄을 지어 오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며칠 이후 정상 부근 날씨가 좋다고 한다.

이날 오후 1시 경. 마지막으로 세르파 도로지가 땀에 젖고 지친 모습으로 캠프에 귀환했다. 먼저 오른 세르파와 대원들은 C1에서 서로 만났다 교행하고 지금쯤 우리 대원들은 C2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전한다. 잠시 후 무전이다. C2에 모두 도착했다고 한다.

오후 6시. C2에 박상수 대장은 무전을 했다. 김미곤 대원이 밝은 목소리로 받는다. 박남수 대원에게 무전기를 주고 노래 한 곡 하라고 하자 무전을 통해 즉석에서 '베삼삐리리'를 부른다.

[5월 1일(D-3)] 히말라야에서 울려퍼진 트로트 메들리

하루는 휴식이다. 5시20분. 한국에서 사간 AA형 소형 손가락건전지를 4개를 연결해서 라디오 카세트를 작동시켰다. 덕분에 트로트 메들리에서 정태춘·박은옥 노래와 네팔 세르파들의 노래까지 캠프에 활기가 돋았다.

라디오 카세트가 고장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짝퉁 건전지 때문인 것으로 판명됐다. 카투만두에서 구입한 건전지인데 삼성브랜드를 모방했다. 포장지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성전자 본사' 운운하면서 순간 홀리게 만들어져 있다. 다른 대안도 없는데다가 여행대행사 왕추가 소개한 집이고 소니건전지와 함께 진열되어 있어 500루피(8000원 정도) 주고 샀던 것이다.

오전 6시 20분경 카세트를 본부텐트에 두고 트로트 메들리를 무전기에 대고 흥겨운 가락을 연결하자 C2에서 세르파들이 '베쌈삐리리'로 답송. 저녁 7시. 내일 아침 4시 출발이다. 모두들 긴장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저녁 9시경. 아이스폴부터 푸모리 봉까지 베이스캠프를 짙은 구름이 뒤덮는다. 눈이 올 것 같다. 키친텐트에서는 네팔 한량 까르마를 놀리는 웃음소리가 끊임없다.

[5월 2일(D-2)] 대학입시날 학부모 마음이 이럴까

새벽 4시. 베이스캠프에는 눈이 내렸다. C2·C3 상황이 궁금하다. 간밤에 박상수 대장은 잠자리를 본부 텐트로 옮겼다. 대원들과 호흡을 같이 하기 위해서다. 혹한과 설원을 누비는 대원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

대학입시 날 학부모가 입시장 앞에까지 가서 교문 앞을 지키며 기원하는 학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무선교신. 우선 "눈이 많이 내렸냐"고 묻자 "운행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고 한다.

다시 베이스캠프. 본부 텐트 앞에 아침 식탁을 차렸다. 눈밭 탁자에서 설상 아침을 먹었다. 박상수 대장이 대원들과의 일체감 형성 차원에서 눈밭에서 먹자는 제안 때문. 맘은 그렇다 치더라고 실제 분위기는 대원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오전 8시 16분. 무전이다. 윤중현 대원이 "아침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다, 선두는 이미 C3에 도착했고 후미는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지금은 날씨도 좋고 따뜻하다"고 한다. 목소리는 건강한 듯 하다.

오전 9시 55분. 텐트 2동을 완성하고 내일 새벽 5시에 C4로 출발예정이라도 한다. 점심 먹고 난 후 호주인과 미국인 두 명이 캠프를 찾았다. 그들은 로체 등정을 하려는데 우리가 먼저 로프작업을 하고 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로부터 편의를 얻어 보겠다고 와서 호들갑이다. 강 대장과 연락해 주고 별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오후 1시30분. 강 대장은 "날씨가 안개가 낀 상태"라고 보고한다. 오후 5시 40분. 강 대장이 "호주 녀석들이 앞으로 3일간 눈이 올 거"라고 전했다며 날씨를 알아봐달라고 한다.

저녁 7시 16분. 키친보이 치링이 인근 상업원정대들로부터 날씨 상황을 얻어온다. 두 원정대 모두 "내일모레 약간의 눈발과 바람이 있겠지만 날씨는 좋을 것"으로 예상. 이내 강연룡 대장은 예정대로 모레 정상 공격을 하기로 결정. 박 대장 OK.

[5월 3일(D-1)] 무전 목소리가 지친 듯... 날씨는 좋다

베이스캠프에는 아침 맑고 약간 바람이 있어 춥다. 오전 C4로의 전진은 계속되었다. 강연룡·김미곤·윤중현 대원이 세르파3(도로지A·B, 밍마)과 C4(7900m)로 운행했다. 윤중현 대원의 무전 목소리가 어제 아침보다 약간 지친 듯 하다. 날씨는 좋다고 한다(오전 9시 32분).

간밤 눈사태로 아침 5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약간 지연되었다. 김미곤(오전 6시)은 "눈사태로 C3텐트가 눌려서 복구하느라 C4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고소증세가 있어 박남수 대원과 세르파 왕추는 하산해서 10시 45분 무사히 C2에 도착했다.

네팔 한량 까르마

▲ 장난기 많은 까르마가 부엌에서 오이로 급조한 무전기
'네팔고문관' 한량 기가 역력한 까르마. 라마승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딸부잣집 막내 데릴사위로 들어가 두 살 연상인 아내와 사는 솔로 쿰부 루크라지역 반건달. 원정대 행정담당 김미곤 대원과 몇 년간의 인연으로 원정대의 가이드 겸 주방보조로 일한다.

까르마의 처가 쪽 가족들이 이번 원정에 포터와 야크맨으로 활약했다. 그래서 처가에서는 까르마의 위상이 상당하다. 한국처럼 돈 되는 외국인 인맥을 가지고 있어서다.

까르마는 야크 6마리에 야크새끼 4마리를 가진 중산층. 본인의 주 전공이 세르파, 요리사·주방보조·가이드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일을 맡겨 놓으면 불안하다. 그러나 순진하고 버릴 수 없는 매력을 가진 30살의 두 아이 아빠.

문제는 까르마의 한량기. 봄가을 원정 시즌에 돈을 벌면 술 마셔 버리거나 네팔식 카드놀음으로 탕진해버리기도 한다. 캠프에서 심부름을 시키면 이틀 걸릴 일을 사나흘 걸려서 돌아오기 일쑤다.

돌아오면 네팔고용인들의 호랑이인 우리 원정대 행정담당 김미곤 대원에게 혼날까봐 바로 캠프로 돌아오지 못하고 캠프가 보이는 바위 뒤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다 들켜서 붙잡혀 오는 아이 같은 녀석.

때로는 아내에게 구타를 당해 눈두덩이가 푸르딩딩해서 나타나기도 한 녀석. 사람 좋은 이 사람은 루크라(경비행장이 있는 에베레스트 상행 캐러번 출발지)부터 베이스캠프까지 롯지촌이 있는 데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다.

'네가 루크라 주먹이냐"고 묻자 까르마는 오른 주먹을 쥐면서 왼발을 한바탕 차는 흉내를 내면서 꼰다. 루크라 건달의 위력 시위치고는 에어로빅 춤같이 귀엽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통하는가 보다. 까르마는 그러나 금세 표정을 바꾸면서 너무 세게 주먹으로 놀면 마오이스트들이 총으로 빵 한다고 총 쏘는 흉내를 낸다.

참고로 귀동냥한 네팔정치권 이야기.

네팔에서는 최근까지 마오이스트(중국 모택동의 혁명사상을 받드는 단체)가 반정부 무장단체로 산악과 정글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형인 네팔에서의 영향력은 간단치 않다. 네팔에는 7개의 합법정당이 있다고 한다. 6개월 전 마오이스트도 합법정당화 했다.

마오이스트는 총선거 실시를 주장하며 기존 국왕중심의 정치권과 대결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총선거가 실시되면 네팔 농촌과 산간지역에 강한 조직을 갖춘 마오이스트가 다수당이 될 것이 확실시되어 기존 정치권은 총선실시에 반대를 한다고 한다. 총선거가 네팔정국의 시한폭탄이 되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

마오이스트 영향은 원정대와 베이스캠프에도 미친다. 상행 캐러번 당시 탕보체에서 포터들과 임금분쟁이 있자 20대 후반의 마오이스트가 나타나 우리 팀과 협상을 벌였으나 턱없이 높은 액수를 요구해와 협상은 결렬되었고 우리 팀은 즉시 다른 야크를 구해서 짐을 이동시켰다.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짐을 나르는 포터들의 임금이 몇 년 사이에 일당이 600루피로 뛰었다. 안나푸르나 지역보다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들이 포터들을 움직여서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포터를 고용했을 때는 일당이 200루피 수준이다. 외국인들에게 폭리를 취하는 셈.

그러나 캠프에서 일하는 한 고용인은 마오이스트에게 거침없이 지지의사를 표한다. 네팔의 빈곤과 격심한 빈부격차와 부패,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 등은 여전히 마오이스트에게 활동공간과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태그:#로체, #히말라야,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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