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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믿고 손잡고 함께 만드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아닐까. 유치원 아이들이 함께 만든 작품을 바라보며...
ⓒ 김윤주

미국에 있으면서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모여 차 한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 한국으로 돌아가면 "뒷탈 없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 선생 선물만큼은 '빵빵하게' 챙겨주며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이는 자신감 넘치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교육열'을 자랑했다. '빵빵한' 선물 몇 번이면 아이를 맡은 선생들을 단번에 휘어잡을 수 있으며, 그것이 곧 그 아이의 명문대 진학을 결정짓는다는 확신으로 뭉쳐있었다.

그는 왜 이런 어른이 되었을까

듣고 있자니 기운이 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로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같은 시대를 살며 비슷한 고민을 해 왔음직한 그이를 보며, 한 때는 그도 꿈꾸는 '청년'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성인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잘 되게 하는 뒷바라지의 1번 요소가 어찌하여 선생 선물 '빵빵하게' 챙겨주는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좋은 대학 보내고 좋은 직업을 갖게 해서, 혹시라도 마침내 그 아이가 '성공'한 어른이 되고 또다른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 제대로 된 자식 뒷바라지의 최우선 요소는 '선생 선물 빵빵히 챙기는 일'이라고 자랑스레 가르치지 않을까 두렵다.

그이의 발언이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모두들 품고 있는 솔직한 마음이었던 걸까?

선생들은 모두들 썩을 대로 썩어 촌지에 눈멀어있고, 자식 사랑 지극한 데다 똘똘하기까지 한 부모들은 다들 팍팍한 살림에 촌지까지 마련하느라 맞벌이를 하고 부업을 해대며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 걸까.

'빵빵하게' 선생 선물 챙겨주겠다는 이웃

▲ 지난 2004년 5월 "스승의 날을 2월말로 옮겨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며 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참교육학부모회 회원.
ⓒ 안현주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여론에 불이 붙었단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겨우 2달 반 만에 맞아야 하는 스승의 날이 아이를 맡긴 학부모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고, 게다가 어린이날, 어버이날까지 함께 있는 5월이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배경이다.

사실, 학년 초 스승의 날은 애초에 무리가 있다. 학부모 뿐 아니라 부담스럽기는 교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년을 지내는 동안 수도 없이 변해가는 아이들을 맡아놓고 아직 학생 개개인의 성향 파악조차 다 못한 두어 달 만에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건 좀 억지가 있다. 아직 공감대 형성도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스승의 노래를 부르며 가슴에 꽃을 달아 주는 아이들을 봐야 하는 일도 보통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학부모 입장 역시 말할 것 없다. 어린이날 선물 챙기랴, 어버이날 선물 챙기랴, 스승의 날 선물 챙기랴 생각만 해도 월급쟁이 한숨이 절로 나온다.

2월이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이 있는데 부담이 덜어질까? 귀향길 선물에 차례상 준비하는 일이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보통 부담이 아닌데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 선물까지 챙기려면 힘들긴 마찬가지 아닐까?

게다가 새학년 새학기 준비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2월 한복판에 스승의 날이 떡하니 자리잡게 된다면 그 역시 달가운 일은 아닐 듯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날짜를 옮겨서라도 '선생님'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날짜가 아닌 믿음의 문제

내가 학생이던 시절, 내 친정 엄마는 선생님께 직접 만든 빵이나 꽃을 주로 선물하셨다. 친정 엄마가 선생님을 하늘처럼 알던 그 시절에도 '선생들한테는 갖다바쳐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엄마는 항상 그런 이들을 아주 못마땅해 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겨우 꽃 몇 송이, 빵 몇 조각이라도 친정엄마는 꼭 지난해 담임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기셨다. '올해 선생님이야 앞으로 네가 열심히 학교 생활 하면 그만이지만,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너를 이만큼 키워주신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우냐'는 것이었다.

새 학년 선생님 선물보다 다시 만날 일 없는 작년 선생님의 선물을 챙기는 엄마 마음이 어린 마음에도 참 자랑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학기 초에 있는 스승의 날은 여러가지 이유로 합리적이지 않다. 적어도 1년을 함께 한 후 학년 말에 받는 감사의 마음이 교사 입장에서도 덜 낯뜨겁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날짜를 논하기에 앞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서로간에 깊이 자리잡은 불신의 문제다.

▲ 진짜 교사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 어린이날을 맞아 초등 1학년생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임덕연 교사.
ⓒ 인디스쿨
'빵빵하게 갖다 바쳐야' 내 자식이 잘될 거라는 그릇된 믿음으로 의미없는 선물이나 던지듯 건네며 자신의 왜곡된 교육열과 '부'를 과시하려 드는 한심한 일부 학부모들. 기본적인 의무와 권리를 포기한 채 '선생' 대접 제대로 안 하는 사회나 탓하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자존감도 망각하고 있는 듯한 일부 교사들. 언제까지 서로 헐뜯고 상처를 내고만 있을 것인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년기·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 관해 머리 맞대고 고민할 시간도 부족하다.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함께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10년, 20년 후의 바람직한 세상을 위해 오늘 초석을 세우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할 이들이 바로 부모이고 교사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할 사이로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믿어보자, 그리고 나부터 돌아보자

선물이나 촌지, 스승의 날 따위엔 관심도 없이 아이들과 험한 시간을 함께 하며 소통하고자 애쓰고 있는 진짜 교사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 성실히 일하는 직장인으로,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역할 모델로, 미래를 살아갈 힘인 지식과 지혜를 전하는 전문인으로, 때론 어설픈 부모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내 자식을 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계신 교사들 말이다.

더불어, 부모도 어찌 못하는 내 자식 돌봐주고 가르쳐주는 교사에게 그 이유만으로도 감사하고 교육방침을 존중하는 학부모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스승의 날이 있든 없든, 그것이 학년 초이든 학년 말이든, 내 아이의 성적과 학교 생활에 영향을 주든 안 주든 선생님을 믿고 항상 감사하는 제대로 된 학부모가 '빵빵한 선물로 자식 뒷바라지 한다'며 목소리 높이는 부모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난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어보자. 그리고 오늘 나의 모습부터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자. 어떤 것이 내 자식에게, 내 제자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인지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쑥쑥닷컴에 함께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스스의 날, #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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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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