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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스버그 경찰들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텍 노리스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AP 연합뉴스
버지니아텍(버지니아공과대학) 총기사건은 미국 사회에 대단한 충격을 주고 있다. 9·11이후 방송이 이렇게 집중적으로 보도한 사건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특히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한국 국적의 영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보도에 미국 내 한인 사회는 얼어붙었다. 9·11이후 벌어졌던 아랍계 주민들에 대한 위협과 이후 계속된 이민자들에 대한 통제 강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죽일 거니?"

실제로 필자의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일부 교사들이나 일부 백인 학생들이 한인 학생들에게 다가와 '나도 죽일 거니?'라고 말하는 등 '한인은 다 똑같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오늘 아이는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외출을 삼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거리로 나선 한인들도 괜히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위축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방송과 신문은 인종문제보다는 총기규제를 이슈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 백인들이 보여 줄 태도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넓게는 한인뿐 아니라 전체 이민자에 대한 태도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이미 일부 이민자단체들은 이 점을 우려하여 향후 이 일로 인해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것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신문이나 방송은 이 같은 총기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을 미국의 총기규제 정책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모양이다. 사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총기규제 문제는 늘 쟁점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총기규제를 부분적으로 강화하는 10년 기한의 한시적인 법안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일반인들의 총기 소유는 이들의 역사로 보면 상당히 뿌리가 깊은 것이다. 국가가 건설되기 전에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됐다. 국가가 건설되고 난 후인 서부개척 시대에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은 국가보다는 자신이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에서 범인이 사용한 총과 동일한 글록19 권총
ⓒ AFP·연합뉴스

"미국은 총을 드는 용기로 건설된 나라"

이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배경에서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무기휴대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들의 뿌리깊은 생각은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찰턴 헤스턴이 하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미국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용기로 건설된 나라"라며 "난 죽어도 총은 포기 못 한다.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 조상들이 물려 준 권리다. 난 장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 시대착오적인 믿음은 미국 헌법에 대한 정치적 견해로 성장했다. 200년 전 미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수정헌법 2조가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믿는 정치적 견해는 대선 때마다 대선 후보들이 총을 드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오늘 CBS 저녁 뉴스 자료화면에서 이번 대선에 나온 줄리아니도 총을 들었고, 지난 대선에 나온 민주당의 존 캐리도 총을 들었다. 존 매케인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 가령 우리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시장통에서 옷 사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연간 만명이 넘는 사람이 총으로 죽어 나가고(<한겨레21> 2003년 4월 16일자), 툭하면 발생하는 무참한 총기사고에도 총기 소유의 자유를 노래하는 것이다. '총으로 막으면 되잖아' 하면서.

총기소지, 시대착오적 입장이 지탱되는 까닭

이런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견해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두 가지 기둥이 있다. 하나는 총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에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총기의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대략 거의 국민 1인당 1정에 가까운 총, 2억정이 넘는 총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사건에서도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쉽게 총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그저 신용카드와 신분증명만 있으면 총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보듯이 총알을 K마트에서 샀다지 않는가? 그만큼 총기 시장이 크고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총기규제는 이들 기업의 몰락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총기규제가 정치권에서 논의될 때마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로비를 한다.

다른 하나의 기둥은 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다. 앞서 말한 찰턴 헤스턴이 전국회장이기도 하다. 지난주 미총기협회의 정기총회가 있었고 여기서 새로운 이사회 멤버들을 선출했다. 이 날 연회에 존 볼튼 전 유엔대사가 연설자로 초청되기도 하였다.

흔히 NRA를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강력한 로비단체로만 아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NRA는 그런 전형적인 로비단체가 아니다. 단순히 로비단체라면 정치인들이 굳이 나서서 총을 드는 장면을 연출하겠는가? 그들이 그런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여기에 '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은 그저 미국에서 회원이 가장 많은 단체쯤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이들의 홈페이지를 뒤져보고 정말 만만치 않은 조직임을 알게 되었다.

▲ 총기소지법안을 지탱하는 미국총기협회(NRA)는 단순한 로비단체가 아니다. <볼링 포 콜럼바인> 한 장면.
ⓒ 마이클 무어

총을 드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

총기협회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것은, 하나는 앞서 말한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다. 수정헌법 2조를 지키는 것이 미국의 자유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총을 매개로 한 활동이 미국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 있고, 그 활동의 중심에 총기협회가 있다. 현재 회원이 400만인데, 이는 1978년의 3배에 달하는 숫자다. 그만큼 성장해 온 것이다.

과학적인 사격을 증진하기 위해 1871년에 창립된 이 단체는 1906년 청년들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에 참여한 사람들이 백만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성장한 이들이 지금과 같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본격적으로 대변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해에 이들은 수정헌법 2조의 정치적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필요가 있다며 ILA(Institute for Legislative Action)를 설립한다. 이 기구가 로비의 적극적인 단위다.

이 로비를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민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간 NRA의 활동이다. 사냥이나 사격 같은 스포츠 관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뿐 아니라 각종 청소년 프로그램은 보이스카우트나 4-H 활동처럼 미국민들에게 일상적이다.

'유스 헌터 에듀케이션 챌린지'는 43개 주에서 실시되는 프로그램이다. 각종 프로그램에 연결된 훈련 요원들이 수만명에 이르고 각종 훈련코스를 이수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수십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ILA가 로비를 펼칠 때 유권자운동을 전개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워싱턴에서만 로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풀뿌리 운동으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니 표를 의식한 이들이 이것이 민주주의라며 정치적으로 총을 메고 다니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여기에 1990년에 설립된 NRA재단은 이런 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은다. 미 국세청의 501(c)(3)조항은 비영리단체들의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조항이다. 이 재단도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2000년에는 그동안 발간해 왔던 잡지를 통합해 <아메리칸 퍼스트 프리덤>(America's 1st Freedom)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회원들에 대한 서비스로 회원이 되면 NRA 활동을 하다 일어나는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상해에 대한 보험도 들어준다.

이만하면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왜 어려운가를 알만 하지 않은가? 총기를 만드는 기업과 총기관련 각종 액세서리를 만드는 기업들이 촘촘히 엮여 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그들만의 신념과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얼기설기 얽혀 있기 때문이다.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이 인종문제에 대한 반감으로 번지지 않고, 또 더 이상의 참혹한 사건 없이 미국 사회가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가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가, 저변에 깔린 인종 문제나 이민자 문제까지 얽히면, 그 얽힌 실타래를 풀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태그:#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총기규제, #볼링 포 콜럼바인,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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