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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하다 아픈 여자들> 독후감 공모전에서 당선된 총 다섯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학교, 병원, 콜센터, 배달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일하다 아팠던 혹은 지금도 아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전통적으로 남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사업장에 언젠가부터 여성 노동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인간극장이나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한 번은 시아버지, 남편과 같이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는 한 여성이 작업반장을 맡고 있다는 사연을 보면서 강인하고 다부진 여성의 이미지를 그려봤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 속 형틀 목수 심경희씨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인간극장의 여성 건설노동자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비로소 화려한 이미지 뒤 노동의 고단함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윤재옥씨,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최해선씨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건설 현장이나 조선소 등 중공업 생산 현장에는 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안전화, 안전띠 등의 보호 장비조차 평균 남성의 몸에 맞춰져 있어서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몸을 가진 사람들은 위험하게 몸에 맞지 않는 장비를 쓰거나 개인이 구입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왜 평균에 집착하고 있을까? 그 이면에는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라는 무시무시한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시설을 바꾸는 것도 화장실을 늘리는 것도 장비를 다양한 사이즈로 구비하는 것도 전부 '돈'이 드는 일이다. "이 일은 힘들어서 여자가 못 해." "남자들은 섬세하지 못해서 안 써요." "키가 175cm는 넘어야 해요." 일터에서 성차별이나 용모 제한은 노동자들을 재단하고 가르는 용도이다. 일터에 노동자를 맞추는 게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다른 몸으로 일하다 아픈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는 왜 일하다 아파도 내 탓 먼저 할까? 노동자들은 대부분 몸이 아파도 산재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나마 사고로 크게 다치면 주변에서 산재를 권하기도 하지만 서서히 생기는 질환은 대부분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 비용으로 치료를 받는다. '나이 들면 원래 다 그래' '골병이지 뭐' '애 둘 낳고 안 아픈 사람 있겠어' '직장인 중에 두통이나 소화장애 없는 사람 없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일하다 아픈 걸 몰라서가 아니라 산재로 인정받는 게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한 성별이 달라서 고통을 느끼는 성소수자들, 학교 급식실에서 수백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 노동자들, 늘 화려할 것 같지만 골병이 들도록 움직이는 비행기 승무원들, 배려받는 듯하지만 배제되고 다른 취급을 받는 장애 노동자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그래프나 통계로 볼 때는 정말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점점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현재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남성이 일하는 현장에서 다른 몸으로 일하다 아픈 여성들이 동등한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앞장서서 싸워왔기 때문에 조금씩이나마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 감정노동이 여성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알리고 싸워왔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현장이 안전해지고, 법이 여성 노동자들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현장에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김혜순 조합원은 콜센터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김혜순 조합원은 콜센터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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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콜센터 노동자이다. 콜센터에서 10년 이상 일하다 보면 근골격계 질환이 안 생기는 게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콜센터 노동자는 제한된 공간에서 한 자세로 오랫동안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콜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만성 근골격계 질환도 직업병이구나! 산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동료들을 설득해서 산재 신청을 하고,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아직 막막하다.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은 산재 경험이 거의 없다.

1년 전 유방암 재발로 퇴사한 동료가 2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10년 이상 근무한 동료들의 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나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나와 동료의 질병이 우리가 하는 일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질병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환경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매일 당연하게 보던 콜센터의 공간이 노동환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콜센터노동자를 비롯해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어도 산재 신청을 생각하지 않는다.

"실내에서 편하게 앉아서 일하는 내가 무슨 산재예요.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다 다치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야?"라고들 하지만, 책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위험한 현장은 위험하기 때문에, 위험해 보이지 않는 현장은 보이지 않는 위험 때문에 노동자가 일하다 아플 수 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김혜순 조합원의 노동환경. 계속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한 자세를 유지하다보니 쉽게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김혜순 조합원의 노동환경. 계속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한 자세를 유지하다보니 쉽게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된다.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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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라도 나와 동료들의 아픔을 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흔히 겪는다는 공황장애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경우 준비가 까다롭다고 한다. 지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늘었다.

우선은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사람,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다른 질병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를 할 것이다. 책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사례가 모여 산재 제도의 젠더 공백을 보여주었듯이, 우리 사업장에 있는 콜센터노동자들의 아픈 몸을 모아보면 분명 노동환경의 공백이 드러날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생각해 보지도 엄두도 나지 않았을 싸움이다.

바쁜 일정에 책 한 권을 다 읽는 게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나의 노동 현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준 기회를 만들어준 노동조합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권을 위해 함께 싸워주는 노동조합 활동가들 고마워요.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 중인 김혜순 조합원(현수막을 든 맨 오른쪽)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 중인 김혜순 조합원(현수막을 든 맨 오른쪽)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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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혜순은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다산콜센터지부 조합원입니다.


태그:#공공운수노조, #일하다아픈여자들, #산업재해, #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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