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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아버지를 위한 여행이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자식들이 몇 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아버지는 어느새 훌쩍 나이가 들어 계셨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인 듯 '가고 싶다'며 잠깐 마음을 내비치셨던 백두산 여행을, 계속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다 이제야 함께 다녀오게 됐다. 아버지에겐 첫 해외여행이었다.

'효도' 관광이라고 할 만한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번 가족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아버지가 좋아하셨으면 하는 바람 하나였다.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여행도 아니었고 자유여행도 아닌 패키지여행인 탓에 사실 나는 여행지에 대한 큰 기대감은 없었다.

게다가 자동차, 비행기, 버스 등등 거의 이동만 했던 첫날에 이어 이른 새벽에 일어난 둘째 날이어서 여행에 대한 설렘보단 피곤함이 앞섰다.

백두산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5월 초 여행에서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여러 코스 중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다는 '북파' 코스인데도 그랬다. 숙소에서 여행사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뒤 내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 또 다시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는 조금씩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버스 창밖 도로 양 옆으로 하얀 자작나무가 가득했다. 종이처럼 얇은 겉껍질이 인상적인 자작나무는, 희디 흰 나무 기둥을 하늘 쪽으로 쭉쭉 곧게 뻗고 있었다. 백두산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도 어느새 바뀌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내린 뒤 또 다시 대기줄에 가 섰다.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작은 셔틀 봉고차에 올랐다. 봉고차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았을 무렵, 완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북파 코스를 통해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길
북파 코스를 통해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길 ⓒ 배은설
 
사막인 듯 아닌 듯 드넓은 고원 위에는 군데군데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있었다. 커다랗고 투박한 돌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기도 했다. 구멍 숭숭 뚫린 가벼운 부석도 많았다. 키 높은 나무들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난생처음 보는 광활한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도보로 가는 길이었다. 천지를 보기 위해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백두산 여행의 성수기라는 7~8월이 아니었음에도,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하나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긴 줄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햇살이 따뜻해서 그리 춥지 않았다.

20여분쯤 걸었을까? 북적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푸른 무언가가 보였다. 사람들이 가득하거나 말거나 고고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 백두산 천지였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5월의 백두산 천지 풍경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5월의 백두산 천지 풍경 ⓒ 배은설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못보고 가는 사람이 천지라 하여 천지라 한다', '백번 올라가봐야 두 번 정상을 볼 수 있을까 말까라 백두산이다'와 같은 여러 말들이 있을 만큼 보기 어렵다는 천지였다.

조선족 가이드님 역시 백두산은 평소 안개가 자주 끼는 탓에 천지가 내내 구름으로 뒤덮여 있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다 잠깐 구름이 걷히는 그 찰나에 드러난 천지를 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거라 했다. 시시각각 날씨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고 했다(실제로 바로 다음 날 눈이 내려 바로 입산이 금지됐다).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백두산 천지가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감동이 와락 밀려들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2744미터의 백두산이 품고 있는 호수, 천지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천지를 봤으니 지금 여행을 마쳐도 아쉽지 않겠다 싶을 만큼 장엄한 풍경이었다.

천지를 보는 순간 그때까지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백두산은 좀 더 나이 들어서 와야 감흥이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가게 된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가져다줬다.

천지를 보고 있자니 감동과 동시에 예상치 못했던 복잡 미묘한 감정들도 솟아올랐다. 우리 땅을 밟고 가면 좀 더 가까울 명산을, 중국을 통해 길게 둘러온 여정이 새삼 떠올랐다. 이곳엔 한국인도 많았지만, 한국인 못지않게 중국인들도 많았다. 한국인들은 백두산을 보러 온 것이지만, 이곳에서 백두산은 '장백산'(중국 이름)이라 불리고 있었다.

복잡다단한 마음이 들었던 두만강 강변 공원

복잡 미묘한 감정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두만강 강변 공원에 갔을 때 더 극대화됐다. 여행사 버스 안에서 가이드 님은 공원 입구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더 들어가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저런 주의 사항에 왠지 모를 긴장감을 안은 채 두만강 강변 공원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북한은 정말이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북한이었다.

하릴없이 그곳을 거닐다 약간의 돈을 내면 망원경을 빌려주는 곳을 발견했다. 망원경으로 북한땅을 바라봤다. 북한의 기차역인 남양역에 내걸린 대형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은 잠시 복잡해졌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두만강 강변 공원은 오기 전 살짝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가볍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무거운 장소일 테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기 때문인 듯했다.

한국인과 달리 오히려 중국인들은 이곳에서 자유로웠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입장료를 내고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로 들어선 뒤 허용된 지점까지 오갔다. 명백한 동상이몽의 공간이었다.

음악에 몸 맡긴 채 춤추는 사람들

조금은 착잡한 마음인 채 짧은 공원 산책을 마치고 여행사 버스로 돌아가는 길, 춤추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겹게 음악에 몸을 내맡긴 채 공원 광장 한쪽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잠시 구경하고 있자니 조선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께서 우리더러 오라고 손짓하셨다. 웃기만 하자 가까이 다가오셔서 손을 잡아 이끄셨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전까지 씁쓸하던 마음이 훨씬 덜해졌다.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되는 건 이토록 쉬웠다.

그러고 보니 제각각 사느라 바빠 명절 같은 날이 아니면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던 우리 가족도 그 순간만큼은 다 함께였다.

백두산 여행은, 기대 않던 내게 있어 여러모로 최고의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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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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