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하는 라건아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KCC 라건아가 슛하고 있다.

▲ 슛하는 라건아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KCC 라건아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연 라건아를 앞으로도 한국프로농구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계속 볼 수 있을까. 라건아는 최근 KBL과 소속팀 부산 KCC,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엮인 4자 계약이 종료되면서 향후 거취를 둘러싸고 농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출신의 라건아는 본명은 리카르도 라틀리프로 지난 2012년 외국인 선수로 KBL에 입성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라건아는 울산 현대모비스-서울 삼성-KCC를 거치며 통산 5회의 우승과 3회의 외국인 선수 MVP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성장했다.
 
라건아는 12시즌을 한국무대에서 활약하며 서장훈-김주성 등을 제치고 역대 통산 리바운드 1위, 플레이오프 최다출장과 득점 1위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한 2018년에는 6년간의 특별 귀화를 인정받아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라건아라는 한국식 이름도 얻었다. 라건아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여 두 번의 아시안게임과 FIBA 아시안컵, 농구월드컵 등에 출장하며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그동안 라건아의 한국무대 활동 계약에는 소속팀과 프로농구연맹, 농구협회의 이해관계가 모두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초 종료된 2023-24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을 끝으로 라건아의 관련 계약이 모두 종료되면서 향후 미래는 안갯속에 놓이게 됐다. 라건아의 신분을 비롯해 계약 여부와 방식, 기간, 규모 등을 다시 원점에서 새롭게 재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라건아의 국가대표팀 계약은 지난 2월 태국과의 '2025 FIBA 아시아컵 예선'을 끝으로 종료되며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상태다. 프로 소속팀인 KCC와도 계약기간이 만료되며 재계약을 맺거나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KBL은 5월 열리는 이사회에서 라건아 문제도 함께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라건아는 지난 2월 재계약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당시 "개인적으로는 한국과의 동행을 이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그건 농구협회와 KBL에 달려있다"고 조심스럽게 답변한 바 있다.
 
선수에게 돈만큼 중요한 것이 '명예와 존중'
 
팬들에게 인사하는 라건아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라건아가 그물 세리머니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팬들에게 인사하는 라건아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라건아가 그물 세리머니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량 면에서 라건아는 아직 대표팀과 KBL에서 활약하기에 충분하다. 1989년생인 라건아는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보다는 기량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시즌 플레이오프(PO)에서 회춘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건재를 증명했다.
 
라건아는 허웅, 송교창, 최준용, 이승현 등 국가대표급 동료들이 포진한 '슈퍼팀' KCC에서도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치며, KBL 역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5위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문제는 라건아가 특별귀화선수로 한국 국적을 얻었음에도, 정작 KBL에서는 여전히 외국인 선수로 분류된 애매모호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라건아 이전의 귀화선수로 역시 국가대표까지 활약했던 문태종-문태영-이승준-전태풍같은 하프코리안(혼혈) 출신들과는 다른 대우였다. 전성기에 외국인 선수로도 최정상급의 기량을 지닌 라건아를 국내 선수로 인정해주면, 라건아를 보유한 팀과 다른 팀들간의 전력불균형이 너무 심해진다는 것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을 부여하고 태극마크를 달았던 선수를 정작 자국리그에서는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모순된 '이중잣대'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물론 라건아 역시 별도 수당을 받는 조건으로 대표팀 차출에 합의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라건아를 진정한 한국 선수로 인정해주기보다는 철저히 귀화선수라는 제도를 이용한 대표팀의 외국인 '용병'으로만 취급하는 속내를 드러낸 장면이다.

이번에도 라건아의 재계약 여부에 가장 큰 변수는, 역시 그의 신분을 국내-외국인 선수 중 어느 쪽으로 인정하느냐에 달렸다. 문제는 프로팀 입장에서는 국내 선수로 인정하기에는 여전히 실력이 너무 뛰어나고, 반대로 외국인 선수로 분류하기에는 많은 나이로 인한 하락세가 우려스럽다.
 
농구팬들의 여론은 다음 시즌 만으로 35세가 되는 라건아의 나이나 기여도를 감안하면 이제 국내 선수 자격을 주어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하지만 KBL은 현실적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이 큰 리그다.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치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라건아가 아무리 노쇠했어도 국내 선수 중에서는 그와 견줄 만한 득점력과 골밑 장악력을 지닌 선수는 전무하다. 더구나 라건아의 존재로 그를 보유한 팀은 외국인 선수를 1명 더 영입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는 장점은 리그 판도까지 뒤흔들 수 있다. 반면 외국인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라건아가 다른 팀의 외국인 에이스들을 상대로 1옵션으로 계속 활약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한 라건아의 신분에 따라 계약 방식과 규모도 달라진다. 라건아가 국내 선수가 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그의 주가는 현재 국내 FA대어들을 뛰어넘어 리그 판도를 뒤흔들 수 있고, 현행 샐러리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가 되면 다시 특별 드래프트 방식으로 입찰을 해야 한다. KBL 구단들이 노쇠한 라건아의 영입을 꺼릴 수도 있고, 혹은 라건아가 국내 구단과의 협상이나 연봉 제한에 불만을 품고 끝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에 라건아가 남는다고 해도 프로에서 외국인 선수 신분이라면, 농구대표팀과의 재계약과 수당 문제 등이 복잡해질 수 있다. 일단 순수하게 농구 국가대표팀에서의 기여도 측면으로 보자면 라건아와의 재계약은 이득에 가깝다. 현재 세계농구에서 귀화선수들이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 데 비하여, 농구협회는 아직 라건아를 대체할 만한 대안도 뚜렷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라건아 역시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대표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여러 표시해왔으며, 실력으로도 아직 향후 2~3년은 더 활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올해 새롭게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안준호 감독은 라건아에게 주장 완장을 맡기며 그의 여전한 기량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라건아의 재계약 문제는 현실적인 비즈니스이기도 하면서, 귀화선수의 대우에 대한 농구계의 공정성 문제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 라건아는 분명히 돈을 받고 그 대가로 뛰었던 프로선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엄연히 한국 국적을 지닌 한국 선수이자 리그에 큰 족적을 남긴 '레전드'이기도 하다.

선수에게 돈만큼 중요한 것이 명예와 존중이다. 한국농구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까지 라건아를 완전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만 남겨둘 것인지 분명한 입장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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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건아 귀화선수 KBL 대한민국농구협회 부산K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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