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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수 노동시민, 모든 노동시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던져야 할 질문과 고민들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학술대회는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려 얘기하고 있다.
▲ 한국산업노동학회 2020 가을 학술대회 자료집 세상의 다수 노동시민, 모든 노동시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던져야 할 질문과 고민들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학술대회는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려 얘기하고 있다.
ⓒ 조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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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산업노동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참가한 첫 세션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적 보호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서는 플랫폼 노동자 개념부터 논란이 되었다. 플랫폼 자본주의나 플랫폼 노동 얘기가 넘쳐나는데 아직 개념이 불분명한가 보다. 현장 노동자들은 학술적 개념으로 살지 않는다. 사는 걸 보고 연구자들이 개념을 만든다.

올 7월 기준으로 완성차 회사에서 14만 5000여 명, 자동차부품사에서 22만 7800여 명이 일한다. '한국자동차부품산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이 발표했다. 산업 전환기와 코로나 재난기가 겹쳐 자동차산업이 고전 중이라는 건 많은 사람이 안다. 부품사 영업 이익율을 보면 모비스 - 현대차그룹사 - 현대차그룹사 제외한 부품사 순이다. 이런 데이터는 재벌 대기업을 꼭대기로 해서 비재벌 기업으로 이어지는 서열을 확인해 주지만 수직피라미드 산업서열이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니 새로울 것 없다.

산업은 통째로 바뀌고 있다

원하청불공정거래니 뭐니 하는 얘기는 족히 30년 들은 식상한 얘기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독일금속노조를 벤치마킹해서 '미래협약'을 만들자고 했다. 이런 논의보다 앞서가고 있는 현장에서 노사합의로 미래차위원회를 만들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사회자인 이문호 박사의 지목을 받고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로 부품사 중 망하는 데는 심각하고, 업종 전환하는 데도 좀 어렵고, 내연차든 미래차든 생산품이 유지되는 곳은 문제 없고, 전기차 투자로 잘 나가는 데는 고용이 늘어난다. 고용문제로 보면 부품사가 단일하지 않다. 둘째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산업이 통째로 바뀌는데 지엽적으로 보면 답 없다. 노조 판도 통으로 바꿔야 한다.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재편당할 것이다."

전기차 시대로 가더라도 이대로면 재벌 대기업 중심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한국노총도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내친 김에 덧붙였다. "원하청불공정거래가 어쩌고 재벌개혁이 저쩌고 그만 얘기하자. 완성차에 대해 부품사 노사 모두가 협상력을 가져야 납품단가 후려치기도 못하지 않겠나. 이대로 미래차 시대가 되면 수직 피라미드가 수평 네트워크로 바뀌겠나. 막말로 한국노총 민주노총 따지기 전에 완성차에 맞짱 뜰 부품사의 힘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이런 대책이 없다면 하나마나한 얘기들이 아닌가" 너무 거칠게 말해서 주최 측을 곤혹스렇게 했나 보다. 사회자는 "뭔가 때려 부숴야 할 거 같은 분위기"라며 웃었다. 화물운송업에 대한 주제로 넘어갈 때 나와서 다른 세션으로 이동했다.

살쪘지만 미숙한 민주노총

옮긴 세션에선 민주노총의 실패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전략적으로 교섭과 타협을 강조한다. 사회적 대화를 비판하는 사람들 일부는 투쟁만 강조한다. 이런 논쟁은 재미없다. 현장조합원들은 간단하게 답하곤 한다.

"노조는 교섭할 땐 교섭하고 싸울 때 싸우는 거지."

투쟁만 하는 것이 전략일 수 없고 타협만 하는 것도 전략일 수 없다. 전술적이든 전략적이든 투타병행이다.

문제는 언제 투쟁하고 언제 교섭하냐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선 매년 거뜬하게 해내는 교섭을 왜 총연맹은 제대로 못할까. 물론 하나의 사업장에 비해 정부와 재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대화는 복잡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와 2018년부터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후퇴한 시기, 2020년 코로나와 총선 후를 구분해야하지 않을까.

민주노총은 노동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 문재인 정부 초기에 정부와 밀착해 적극성을 발휘해야 했다. 당시 경기지역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도 동일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그렇게 못했다. 2018년 들어서 문재인정부와 민주노총은 멀어졌고 보수와 자본의 역공을 받으며 노동정책이 후퇴했다. 사회적 대화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민주노총은 이를 추진하며 논란을 반복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왔다. 경기가 급격히 후퇴하는 재난기에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교섭전술이 필요했다. (2020년 4월 6일, 나는 오마이뉴스에 재난극복과 미래협약에 관한 글을 썼다. 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 각 산업에서 협약을 만들면서 이를 종합해서 완성하는 것이 민주노총 역할이라 생각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때 경기지역에서 설문에 답한 2000명 정도 되는 현장 조합원 중 80%가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를 지지했다. 사회적 대화 결과에 대한 조합원 설문은 없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 격한 충돌과 대의원 대회에서 논란 끝에 부결되면서 조합원에게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민주노총 선거는 직선으로 하면서 왜 그렇게 난리칠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조합원에게 직접 묻지 않을까.

"교섭과 투쟁의 병행은 수사에 불과하다"며 사회적 교섭을 강조한 발표자 박태주 박사는 확실히 '사회적 합의주의자'임을 드러냈다. 다른 발표자인 노중기 교수는 대화 반대파가 아닌 전술적 대화파다. 노교수는 민주노조가 너무 친정부적으로 흐르는 것, 민주노총에 책임을 씌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부결된 것을 옹호했다.

민주노총을 옹호하고 정부를 비판한 노 교수의 취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박태주 박사가 지적한 대로 제1총이 되었지만 교섭력을 보여주지 못한 민주노총의 무능도 감출 수 없다. 민주노총이 살찐 만큼 정신은 성숙하지 못한 것 아닐까. 세션이 끝난 후에 노중기 교수 발표문을 보니 사회적 합의주의와 전투적 경제주의를 넘어 새로운 노선 정립이 필요하다고 썼다. 30년 넘은 민주노조운동을 쇄신할 새로운 노선정립이 절실해 보인다.

눈물의 계곡을 건널 준비됐나

​종합토론에선 배규식 노동연구원장이 PPT로 발제했다. 자본주의 지난 과정, 코로나로 바뀐 상황, 그 옛날 미국의 뉴딜정책의 교훈,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 더 나아가야 할 과제를 얘기했다. 약간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국경을 넘어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노동을 말한 발표자에 비춰보면 토론에 나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정책담당 간부들은 지엽적 얘기를 했다. 한편에서는 시야가 좁다고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조간부인 만큼 익숙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토론자로 나선 노동연구원 조성재는 "코로나를 겪으며 금융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바뀐 것만 해도 큰 변화"라고 했다. 시장에 대해 "국가의 역할이 재조명" 받고 있단다. 그의 토론을 들으며 '시장우선주의가 활개치다가 경제가 망하면 국가가 귀환해서 설거지하고 다시 시장논리가 활개친 것이 자본주의 역사 아닌가. 인류는 계속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왕복운동을 해야 하는 걸까? 시장이냐 국가냐는 식상한 프레임을 넘을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는 기후위기 문제는 노동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면서도 환경문제에 소극적인 노조에 대한 지적을 덧붙였다.

"눈물의 계곡을 건널 준비가 되어 있는가?" 토론에 나선 권현지 교수의 말이 훅 다가왔다. 코로나19 재난기에 무엇을 바꿔야 하고 누가 어떻게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 이것이 분명하지 않다면 우린 눈물의 계곡을 건널 준비가 안된 것이다. 권 교수는 몇 가지 의미있는 질문을 더 던졌다. 산업노동학회의 "이번 학술대회 제목에 노동존중사회라고 썼는데, 노동존중사회가 뭔지 합의가 된 것인가." 그렇다. 노동존중사회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노동시민을 뭉치게 할 통념, 즉 공통이념을 잃어버린 것이야말로 한국 노동운동의 근본 문제가 아닐까. 권 교수는 제조업을 흔드는 직무급제와 다른 직무기반 노동시장을 얘기했다. 고용서비스직에서 근무하면서 노하우를 쌓는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부터 시작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가는 공정성의 기초인 직무에 기반한 노동시장 등을 얘기했다.

피라미드는 무덤이다

배규식 원장은 "노동존중사회란 심각한 상태인 자영업자를 포함해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라면서 "산업시민권"을 얘기했다. 이 개념에 뭔가 느낌이 왔지만 상세한 얘기를 할 시간은 없었다. 배 원장은 노동이 생각하지 않고 있는 지점들에 대해 고조된 표정과 목소리로 일갈했다. 배 원장에게 노동운동을 했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싶었다.

​친환경적 일자리 그린잡, 필수노동, 직무기반 노동시장 등 여러 개념이 맴돌았다. 시민들이 만든 촛불 정부라면서 시민들의 토론을 통해 정책을 만드는 꼴을 보기 어렵다. 청와대로 갈 때는 시민들이 만든 길을 따라 가지만, 거기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전문가나 관료들이 만든 길로 간다. 이러니 말이 요란하고 어렵다. 참가자 토론에서도 나왔지만, 디지털인지 돼지털인지 어려운 단어 가득한 정책이 누구에게 어떻게 효과를 가질 것인지 분명해야 하지 않나. 그린뉴딜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그래서 누구에게 어떤 혜택이 간다는 건가.

​코로나19로 모이기도 부담스런 때에 이런 학술대회를 개최해 여러 가지를 배울 기회를 준 산업노동학회에 감사드린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하나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종합토론에서 김태현씨가 지적했지만, 뉴딜은 노동자와 정치권을 포함한 뉴딜동맹이 있어서 가능했다. 정책을 밀어붙일 주체들이 있어야 한다. 우린 수직피라미드 산업에서 일한다. 피라미드 서열 따라 차별받으며 노동한다. 산업을 바꿀 수 있는가? 산업을 못바꾸는데 노동이 바뀌겠는가. 그렇다면 이 수직 산업피라미드, 이 차별적 노동을 바꿀 주체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없다면, 모든 토론은 헛되고 헛된 공염불이다. 산업을 새롭게 바꿀 주체가 없다면, '디지털 자본주의'는 '돼지털 피라미드'에 불과하다. 21세기에 디지털 기술로 이미 4000년 전에 만들었던 피라미드를 또 만들고 있지 않은가. 자칫 인류는 코로나19로 얻어터지면서도 포장만 녹색인 피라미드를 만들 것이다. 4000년 전에도 지금도 피라미드는 무덤이다.

태그:#산업노동, #산업피라미드, #노동존중, #눈물의계곡, #새로운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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